“하나의 성공은 무수한 실패를 딛고 나옵니다.” 제임스 다이슨이 먼지 봉투 없는 청소기를 앞에 두고 말했다. 이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그는 집에 딸린 마구간에서 5년간 프로토타입 5127개를 만들었다. 그 이전 5126개는 실패였단 얘기다. 멈췄다면 오늘의 다이슨은 없었을 것이다.

"이 순간에도 죄책감이 듭니다."

인터뷰를 위해 마주 앉은 제임스 다이슨(72)이 말했다. 뜬금없는 양심 고백인가, 죄책감이라니? "수십 년 동안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기술을 개발했어요. 연구실에 앉아 있지 않으면 불안하고 죄책감이 들어요."

1990년대 초반 청소기 초기 모델을 든 40대 중반의 다이슨.

딴 사람이었다면 황당했을 법하지만 이 사람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성(姓)을 주목하시라. 날개 없는 선풍기, 먼지 봉투 없는 청소기, 속이 뻥 뚫린 헤어드라이기…. 기존 문법을 깬 가전으로 유명한 영국 회사 '다이슨(Dyson)'을 만든 창업자다. 자기 이름을 새긴 제품을 75국에서 1억대 이상(2017년 기준) 판 사나이. 한 대 백만원 넘는 청소기, 40만원 넘는 헤어드라이기에 기꺼이 지갑 여는 한국 소비자도 적잖다.

'가전계의 스티브 잡스'로 통하는 산업계 스타가 지난달 27일 처음 한국을 찾았다. 체류 시간은 딱 열한 시간. 새벽 6시 도착해 오후 5시 출국하는 일정이었다. 분 단위로 짠 촘촘한 일정을 뚫고 서울 역삼동 다이슨코리아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다르게, 틀리게, 이상하게 생각하라

'우리의 임무는 명료하다. 남들이 그냥 지나쳐 버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사무실 벽면에 적힌 자신의 말을 보고 은발의 다이슨이 빙그레 웃었다. 긴 봉이 달린 다이슨 무선 청소기처럼 비쩍 마르고 키가 컸다. "아차, 잠깐만요. 명함 가져올게요." 아시아식 비즈니스 예절이 몸에 밴 듯 다이슨이 먼저 명함을 건넸다. 그는 아시아와 인연이 깊다. 영국에선 거들떠보지도 않던 그의 청소기 아이디어를 처음 제품화한 곳은 일본이었다. 올 초 본사는 아예 싱가포르로 옮겼다. 명함에 적힌 이름 앞 'Sir(경)'라는 호칭이 빛났다. 2007년 영국 산업에 기여한 공로로 왕실이 기사 작위를 수여했다.

―첫 방문인데 무박 1일 일정입니다. 한국 소비자들의 사랑에 비해 관심이 작은 것 아닌가요(웃음)?

"한국만큼 신기술과 디자인에 예민한 나라도 없어요. 뷰티 산업은 세계 최고죠. 다이슨에는 매우 중요한 나라입니다. 다만 제가 출장을 즐기지 않는답니다. 기술 개발하기에만도 너무 바빠요. 출장이 시간 낭비 같습니다." 공식 직함은 수석 엔지니어. 100% 지분을 보유한 오너지만 CEO(최고경영자)는 아니다. 지난 2010년 회장직을 물러나고 전문 경영인을 CEO로 영입했다. 이유는 "기술 개발이 더 좋아서"였다. 스포츠로 치자면 플레잉 코치인 셈.

산업 디자이너, 혁신가, 엔지니어, 기업가…. 다이슨을 수식하는 많은 타이틀 중 그와 제일 잘 어울리는 단어는 '발명가'다. 특허가 수천 건 있다. 첫 발명품은 1974년 만든 정원용 손수레 '볼배로(Ballbar row)'. 손수레가 진흙땅에 푹푹 빠지는 걸 보고 바퀴 대신 플라스틱 공을 단 수레를 만들었다. 매형과 함께 회사(커크―다이슨)까지 차렸지만 불화 끝에 1979년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쫓겨났다.

절치부심하던 어느 날, 다이슨은 집 청소를 하다가 진공청소기 흡입력이 뚝뚝 떨어지는 걸 알아챘다. 먼지 봉투를 뜯어내고, 잘라낸 시리얼 상자에 절연 테이프를 붙여 먼지 흡입을 실험했다. 실험실은 집에 딸린 마구간. 5년간 프로토타입(시제품)을 5127개 만든 끝에 1983년 '먼지 봉투 없는 청소기' 아이디어를 완성했다. 고속 회전을 활용한 원심 분리 기술을 이용해 먼지 봉투 대신 먼지 통에 먼지를 모으는 청소기였다. 다이슨의 시작을 알린 '사이클론 기술'이었다.

―시제품 5127개란 말은 5126번 실패가 있었단 얘기입니다. 포기했을 법한데요.

"일단 은행에서 빌린 돈을 갚아야 했어요(웃음). 학창 시절 육상 선수를 하면서 배운 인내와 결단력이 도움이 됐습니다. 장거리 달리기를 할 때 속력을 낼 타이밍은 남들이 지쳤을 때입니다. 마의 구간, 고통의 극한점을 뛰어넘어야 해요. 제품 개발할 때도 그렇습니다. 아무것도 안 되는 순간을 맞닥뜨릴 때가 있어요. 대부분 포기할 시점입니다. 그 지점에서 정말 열심히 하면 뭔가가 일어날 겁니다."

―'마냐나(mañana·스페인어로 '내일, 곧'이라는 뜻) 정신'으로 버텼다고 한 적이 있죠.

"엔지니어의 삶은 고달픕니다. 한 번 성공하기 전까지 테스트와 실패를 거듭해야 합니다. 내일은 나으리라는 희망, 매일 조금씩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다는 믿음을 놓치지 않으려 했습니다."

지금은 영국에서 내로라하는 부자지만 마흔다섯까지 은행 빚에 시달렸다. 다이슨은 “돈이 없어도 할 수 있는 게 많았다. 빈털터리일 때도 새로운 기술을 개발한다는 그 자체로 행복했다”고 했다.

예술가인 아내가 큰 힘이 됐다. "예술가가 시간을 들여 작품을 완성하듯 엔지니어도 기술 개발을 완수해야 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이해해줬어요." 아내가 미용 클래스까지 열어 세 아이 양육비를 댔다. 마흔다섯에야 은행 빚을 다 갚을 수 있었다. 영국 선데이타임스에 따르면 지난해 그의 순자산은 95억파운드(약 14조500억원). 영국에서 열두 번째 부자다.

1991년 회사를 만들면서 본인 이름을 내걸었어요. 광고에도 직접 등장하지요. 자기애인가요, 무한 책임을 말하는 건가요.

"내가 만든 회사니 내 이름만큼 적당한 게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름이 부끄럽지 않게 지금도 힘닿는 한 회사 일을 합니다. 거의 모든 시간을 쏟아부어 엔지니어들과 일합니다."

결핍, 도전의 원동력

다이슨의 첫 발명품 ‘볼배로(Ballbar row)’. 진흙땅에 빠지지 않게 바퀴 대신 플라스틱 공을 단 수레다.

다이슨은 '공학'을 종교로 삼고 '틀린(wrong)' '이상한(strange)' '다른(different)' 세 단어를 삼위일체로 보는 듯했다.

"남과 다른 길을 가라,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라"고 강조합니다. 당신의 '다르게 생각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건가요.

"아홉 살에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이혼조차 흔하지 않던 1950년대 중반이었습니다. 평범치 않은 환경이었죠. 문제가 생겼을 때 도와줄 아버지가 없었기에 자연스레 또래 친구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아버지는 영국 노퍽에 있는 기숙학교 그레셤스 스쿨의 고전 담당 교사였다.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사정을 딱하게 여긴 이 학교 교장이 형제를 불러 공짜로 학교에 다니게 해줬다.

결핍이 도전의 자양분이 됐다는 얘기인가요?

"네. 영국 총리 90% 이상이 열 살 되기 전 부모 중 한쪽이라도 잃었다는 흥미로운 통계가 있습니다. 부모 도움 없이 혼자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에 독립심이 강했을 겁니다. 2남 1녀 중 막내란 것도 강해질 수 있는 배경이었어요. 나보다 나이 많고 똑똑한 형제들 틈바구니에서 살아나는 법을 본능적으로 깨친 듯해요." 훗날 대기업을 상대로 지루한 특허 소송을 견딜 수 있었던 맷집도 이때 길러진 것 같다고 했다.

왕립예술학교(RCA)에서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어떻게 '기술 지상주의자'가 됐습니까.

"디자인 학도였지만, 차별화를 가져오는 핵심은 공학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대학 친구는 대부분 디자이너나 디자인 컨설턴트가 됐는데 나만 대학졸업 후 엔지니어링 회사(로토크)에 들어가 디자인, 과학, 기술을 접목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다이슨 제품은 기능보다도 예뻐서 샀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람들이 다이슨 제품을 볼 때 디자인부터 보지만, 우리 제품의 핵심은 기술입니다. 예뻐서 샀는데 성능이 안 좋으면 소비자는 다시 지갑을 열지 않습니다. 다른 제품에 없는 탁월한 기능이 있어야 사지요. 디자인은 예뻐 보이려는 과정이 아닙니다. 제품이 제대로 작동하게 만드는 과정, 제품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다이슨 제품이 너무 비싸다는 불만이 많습니다. 성능은 비슷한데 가격은 10분의 1도 안 되는 '차이슨(차이나 다이슨)'이라는 카피 제품까지 나왔습니다.

다이슨에서 조명 부문 수석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 아들 제이크(왼쪽)와 함께.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려면 정말 비용이 많이 들어요. 가격이 비싸질 수밖에 없습니다. 카피는 거저 먹는 거 아닌가요? 학교에서 친구 아이디어를 베끼면 '치팅(속임수)'이라고 혼나지 않나요? 도덕 문제입니다. 소비자들이 다양한 기술을 선택할 수 있는 기쁨을 뺏는 나쁜 행위입니다."

혁신의 아이콘이라는 점에서 스티브 잡스와 비교되곤 합니다. 다이슨의 투명한 플라스틱 청소기 먼지 통이 나왔을 때 안이 들여다보이는 애플의 '아이맥'을 베낀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었죠.

"아주 오래전 우리 청소기를 스티브 잡스에게 보낸 적이 있어요. 속이 보이는 투명 플라스틱을 쓴 첫 제품으로 런던 디자인 뮤지엄에 소장된 모델이죠. 다이슨 청소기는 청소기뿐만 아니라 가전 통틀어서 투명 플라스틱을 쓴 최초 제품입니다." 속이 보이는 가전의 원조는 다이슨이라는 얘기였다.

조언은 금물, 전문가를 믿지 마라

짧은 일정 중 선택한 건 딱 세 가지. 지난해 문 연 다이슨코리아 직원 미팅, 인터뷰, 대학생과 대화(연세대)하는 일이었다. 비즈니스 미팅은 없었다.

비즈니스 관계자 대신 대학생을 만나는 게 특이합니다.

"교육에 관심이 많습니다. 다이슨 재단(2002년 설립)도 있고, 대학에 연구센터(케임브리지대 다이슨 센터 등)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2017년엔 영국 맘스버리 다이슨 건물에 대학(다이슨 기술공과대학)도 만들었습니다."

대학을 만들었다고요?

"영국 정부에서 인가한 정식 대학입니다. 몇 해 전 '대학·과학·연구·혁신부' 부장관이었던 조 존슨(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의 동생)과 만나 교육 관련 얘기를 했습니다. 엔지니어 인력이 부족하다고 했더니 '직접 대학을 만들어 보지 그러느냐'고 하더군요."

다이슨의 이름을 건 대학은 뭐가 다른가요.

"공짜입니다. 등록금이 없어요. 아니, 돈을 벌면서 공부합니다. 입학생과 정식 근로계약을 맺어 봉급(연봉 1만8000파운드·약 2700만원)을 줍니다. 일주일에 사흘은 일합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다이슨 엔지니어, 과학자와 함께 진짜 제품을 개발하고 기술을 연구합니다. 학생들에게 많이 실수하고, 다르게 생각하라고 독려합니다."

당신이 젊은이였던 1960~70년대 영국은 희망이 가득했지만 이후 세대는 동력을 잃었습니다. 지금 한국이 그렇습니다. 고속 성장이 멈추고 젊은이들은 희망을 잃고 있어요.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은가요.

"저는 절대 조언을 하지 않습니다. 전문가인 양 말하는 것도 질색이고요. 조언은 경험에서 나오는 겁니다. 당장 내일은 오늘과 다릅니다. 사람마다 생각도 다르고요. 조언이 무의미하죠. 자기 자신의 최고 전문가는 자신입니다.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길을 찾아나가야 합니다."

전문가의 조언도 신뢰하지 않는다고요.

"직원, 특히 엔지니어를 뽑을 때 경력 사원을 안 뽑습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친구들을 뽑지요. 엔지니어 평균 나이는 26세. 다이슨 대학이 생기면서 '학부생 직원'도 있어요. 제일 어린 직원은 열일곱 살입니다. 우리는 호기심을 신봉하고, 제안을 경청하고, 실수를 존중합니다. 실수에서 성공이 나오고, 틀렸다고 여기는 방식이 맞을 수 있다고 봅니다."

'영국 제조업의 자존심'인 다이슨은 최근 비난에 휩싸였다. 브렉시트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는데 정작 올 초 싱가포르로 본사를 이전하는 바람에 스스로 브렉시트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 또한 남과 다른 길입니까.

"내가 브렉시트를 지지한 이유는 영국을 유럽에 국한하지 말고 전 지구적 관점에서 보자는 겁니다. EU는 유럽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호무역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전 세계를 바라보고 자유무역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본사를 싱가포르로 옮긴 건 아시아 시장이 우리에게 훨씬 크기 때문입니다. 영국엔 여전히 연구 센터가 있고 개발 인력 5000여 명이 있어요. 대학도 지었습니다. 모든 걸 다 영국에서 하라는 얘기인가요?" 1년의 3분의 1은 싱가포르에서, 나머지는 영국에서 보낸다고 했다.

싱가포르 본사를 열면서 신경 쓴 디테일이 있는지요.

"미니 창시자 알렉 이시고니스가 디자인한 오리지널 미니 자동차를 가져다 뒀습니다. 이시고니스는 자동차 엔진을 가로로 배치하는 등 작은 자동차 공간을 획기적으로 바꾼 인물입니다. '적은 것으로 더 많은 것을 한다(Doing more with less)'는 철학을 보여줬죠. '린 엔지니어링(Lean Engineering·낭비 요소를 최소화한 기술)'이라고 부르는 다이슨 철학과 통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배터리 충전식 무선 진공청소기, 초고속 헤어드라이어, 고속 핸드 드라이어까지 가능하게 한 다이슨 디지털 모터를 꼽았다. 크기는 기존 모터의 3분의 1이지만 회전 속도는 분당 12만5000회로 빨라져 제품 크기는 줄이고 성능은 올릴 수 있었다고 했다. 다이슨은 2021년 전기차를 출시하겠다고 최근 선언했다. '다이슨 전기차'는 어떤 모습일지 힌트를 달라고 하자 "다이슨에서 일한다는 건 비밀을 지킨다는 것"이라며 입을 꽁꽁 닫았다.

선풍기 날개, 청소기의 먼지 봉투처럼 그의 인생에서 빼버리고 싶은 것이 있을까. "엔지니어링은 질병 같아요. 하나를 정복하면 등반해야 할 새로운 산이 등장하죠. 그래서 바꾸거나 뜯어내 버리고 싶은 것투성이에요. 그중 이미 우리가 실험하고 있는 것도 많고요. 설명은 여기까지, 더 이상은 영업 비밀!" 싱가포르에 있는 연구실로 돌아간다는 그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발명을 향한 귀소본능이 발동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