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지사,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 인용되면 임기 채울수도
'시간끌기 꼼수' 지적에… 李 "불법적 상태서 더 오래 안한다"
작년 389건 중 인용은 3.2%뿐..."정치인들의 흔한 재판 전략"
최경환, 유해용 등은 기각… 法 "재판 지연 의도 있으면 기각"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은 재판 당사자가 사건에 적용된 법률이 헌법에 위반됐는지를 헌법재판소에서 판단받고 싶다고 법원에 요구하는 제도다.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제청을 하면 헌재 결론이 나올 때까지 재판은 중단된다. 그래서 임기가 있는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 등 정치인들 사이에선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신청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일종의 ‘재판 지연 전략'인 셈이다.
최근 이재명 경기지사가 논란을 키웠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항소심에서 당선무효형(벌금 300만원)을 받은 그는 지난 1일 대법원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다. 이 지사 측 신청 취지는 두 가지다. 공직선거법상 ‘행위’와 ‘공표’라는 용어 정의가 모호하다는 것과 징역 10년 이하의 형에 대해 ‘양형 부당’을 이유로 상고할 수 없다는 형사소송법을 문제삼았다. 선거법 조항은 헌법상 명확성의 원칙에 반하고, 양형부당을 다툴 수 없는 형소법 조항은 벌금 100만원 이상만 선고되면 당선 무효와 5년간 피선거권을 박탈당하는 정치인에게는 과잉금지 및 최소침해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 법 조항 모두 이미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결정이 내려진 바 있다.
예정대로라면 이 지사는 다음달 5일 이전에 자신의 대법원 판결이 내려지고, 원심대로 당선무효형이 확정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이번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이 받아들여질 경우 오는 2022년 6월 13일 만료되는 도지사 임기를 다 채울 가능성도 있다. 이 때문에 "재판을 지연시키기 위한 꼼수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이 지사는 "단언하건대 불법적인 상태에서 (도지사직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하려고 꼼수 쓰는 일은 없다"라고 했다.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은 선거사범이 시간 끄는 흔한 전략
법조계와 여의도 정가(政街)에서는 정치인들에게 '위헌법률심판 제청'은 이른바 '신의 한 수'라는 말도 나온다. 정치인에게 치명적인 선거법 위반 사건은 시간을 끌어 최대한 임기를 채울 수 있는 수단으로까지 쓰이기 때문이다. 집행유예 기간 중 같은 범죄를 저질러 가중처벌이 예상되면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이용해 집행유예기간이 끝나기를 노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김삼호 광주 광산구청장은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이 받아들여졌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당선무효형인 징역 1년 2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김 구청장은 올 초 2심 과정에서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다. 지자체 소속 시설관리공단 직원에게 당내 경선 선거운동을 금지한 공직선거법 조항은 위헌이라는 주장이었다. 광주고법은 이를 받아들였고, 김 구청장 항소심은 중단됐다. 헌재 결정이 나오는데 보통 1~2년, 이후 항소심과 상고심까지 마무리되려면 오는 2022년 6월까지가 임기인 김 구청장은 사실상 ‘임기 채우기'에 성공할 수도 있다.
하유정 충북도의원도 지난달 대법원 상고 이후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다. 공직선거법으로 1‧2심 모두 당선무효형인 벌금 100만원을 선고 받자, "선거 출마 전 오랫동안 활동해 온 산악회에서 인사한 것을 사전 선거운동으로 본 것은 과도하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아직 대법원이 인용 여부를 결정하기 전이지만 재판은 중단됐고, 그의 지방의원 임기는 이어지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1·2심이 아닌 상고심 단계에서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한 것은 위법성을 따지기보다 시간 끌기에 나선 것으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고 지적한다. 물론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 의도를 알 수는 없지만 정황을 보면 ‘재판 지연’ 의도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대형로펌 소속 한 변호사는 "위헌 요소를 문제삼으려면 1심에서부터 문제삼아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정치인들의 비슷한 사례가 빈번한 것을 보면 임기를 늘리기 위한 꽤 오래된 ‘재판 전략’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재판 지연 의도 있다고 볼 경우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법원에 접수된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 389건 가운데 법원이 인용한 비율은 3.2%에 그쳤다. 특히 대법원이 직접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해 결정까지 나온 사례는 1989년부터 12건에 불과하다.
법원에 따르면, 위헌법률심판 제청은 보통 판사가 위헌 소지가 있다고 판단해 직권으로 헌재에 제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도권 한 부장판사는 "현행법은 합헌이라는 전제가 있기 때문에 판사들이 위헌법률심판에 대해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재판 지연 전략이라는 것을 알고 거부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은 지난 4월 검찰 신문조서 증거능력과 피의자 출석요구권을 규정한 형사소송법에 대해 위헌 소지가 있다면서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다가 기각됐다. 당시 검찰은 유 전 수석재판연구관이 공판 절차 지연 의도가 있다면서 반발했다.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를 뇌물로 받은 혐의로 기소된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당시 자유한국당 의원)도 지난 3월 대법원 단계에서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최 전 의원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 2조 1항의 ‘수뢰액’ 산정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대법원은 지난 7월 징역 5년 실형을 확정했다. 의원직은 박탈됐다.
한 형사 전문 변호사는 "피고인들보다는 로펌이나 변호인들이 정치인들에게 맞는 재판 전략 중 하나로 이런 방법을 쓰는 경우가 있다"면서 "법 절차대로 시간 끌기를 하는 것을 두고 뭐라고 할 수 없지만, 제도적으로 보완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