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 사람들이 한국어와 한국학에 관심을 갖는다고 기뻐할 일이 아니에요. 일본학·중국학처럼 배우는 게 특별해 보이지 않는 학문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최근 한국을 찾은 김영기(78·사진) 미국 조지워싱턴대 동아시아어문학과 명예교수다. 소설가 한무숙(1918~1993)씨의 장녀인 그는 1963년 석사과정을 밟기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오른 뒤 50년 가까이 미국에서 한국어와 한국학을 가르치며 한국학 전파에 힘써온 인물이다. 미국 명문으로 꼽히는 조지워싱턴대의 한국학연구소 설립을 주도했고, 지금은 한국과 미국 지식인들의 학술 교류를 위한 '한미워싱턴포럼' 회장을 지내고 있다.

김 교수가 교수 신분으로 우리말을 가르치기 시작한 건 1983년 조지워싱턴대가 미국 대학 최초로 한국어를 정식 과목으로 지정했을 때였지만, 그는 그보다 20여 년 전 한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미국 생활을 시작했던 버클리대 석사 시절 한국학을 전공하는 미국인 교수 밑에서 조교를 했는데, 한국어를 하지 못하는 교수를 대신해서 학부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고 한다. "그때는 저도 완성된 학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어요. 한국과 아무 이해관계가 얽혀 있지 않은 외국 젊은이들이 우리나라와 우리말을 공부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만으로 엄청난 흥분을 느꼈죠."

그러나 김 교수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흥분은 열등감에 불과한 것이었다"고 했다. 그가 강의를 시작한 1960년대에 한국은 국제사회에 전쟁과 독재 등 어두운 이미지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한국을 배우려는 학생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웠지만 이젠 한국학을 배운다는 것을 놀랍지 않은 일로 인식해야 한다는 뜻이다. 김 교수는 "지금 한국은 영화와 K팝 등 문화적으로 내로라하는 나라가 됐다"며 "덕분에 세계 곳곳에 한국어 교육원이 생겼지만 더 많은 대학교에서 정식 과목으로 채택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그 방법으로 '한국 문화를 자랑하지 않는 것'을 꼽았다. 한국에 대해 아는 것 없는 외국 사람들에게 한국이 잘났다고 아무리 떠들어봐야 자화자찬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학이 발전하려면 '특별한' 과목이 아니라 '평범한' 과목이 돼야 해요. 그게 제가 일생을 바쳐 미국 대학교에 한국학 연구소를 세우고 연구를 해온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