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배고프더라도 목적을 가지고 일부러 밥을 먹지 않을 때가 있다. 단식(斷食)이다.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의 특징 중 하나다. 단식을 하는 목적은 다양하다. 뭘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 다이어트, 정치적 투쟁, 종교의식….

1983년 5월 전두환 정권의 정치 탄압에 항거하며 단식에 들어간 김영삼 당시 신민당 전 총재를 부인 손명순 여사가 돌보고 있다.
2014년 8월 단식 40일째 쓰러져 입원 중인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씨를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박원순 서울시장이 문병하고 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달 20일 단식에 돌입했다가 8일 만에 의식을 잃은 채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의 단식은 건강 악화로 그렇게 끝났다. 어떤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이 분투는 꾸준히 존재해 왔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83년 5월 전두환 정권의 정치 탄압에 항거하며 23일간 단식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2014년 8월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 열흘간 단식한 적이 있다. 세월호특별법의 조속한 제정 등을 요구하며 46일간 단식한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씨를 말리기 위한 동조 투쟁이었다. 2004년 지율 스님은 경남 양산 천성산 터널 공사에 반대하며 100일간 단식을 하기도 했다.

여러 정치인, 유명인이 단식을 할 때마다 여론은 묻는다. '이렇게 빨리 쓰러지다니 가짜 단식 아냐?' '어쩌면 오래하는 단식이 정치 쇼 아닐까'…. 누가 가짜고, 누가 쇼인 걸까.

단식이란 무엇인가

단식에 대한 정의부터 내릴 필요가 있겠다. 단식이라고 하면 흔히 식음전폐(食飮全廢)를 생각한다.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2~3일 안에 생명에 심각한 위험을 가져올 수 있다. 의료계에서는 탄수화물을 비롯해 열량을 낼 수 있는 음식 섭취를 제한하는 것을 단식으로 본다. 서울대학병원 의학정보는 단식을 '하루에 200㎉(베이글 반 개) 미만으로 섭취 에너지를 제한하는 방법'으로 정의하고 있다. 흔히 말하듯 '곡기(穀氣)를 끊는 것'이다. 내과 전문의인 대한의사협회 정성균 이사는 "우리 몸이 에너지로 사용할 수 있는 영양소는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이라며 "열량으로 쓸 수 있는 음식물을 먹지 않았을 경우를 단식으로 본다"고 했다.

종교계에서는 금식(禁食)이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쓴다. 단식은 '(자발적으로) 음식을 먹지 않는다'는 뜻이다. 금식에는 자발적인 의사 외에도 '음식을 먹지 못하게 금한다'는 뜻이 더해진다. 대부분의 종교는 가난한 사람의 고통을 느껴보고, 스스로 인내심을 키워 신앙심을 굳건히 하자는 의미에서 금식을 권한다. 비축한 식량과 돈으로 자선을 베풀라는 뜻도 있다. 라마단 기간 모든 이슬람교도는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만 금식한다. 이때 금식은 물, 담배, 껌 등 모든 음식을 다 포함한다. 이슬람교도가 라마단 동안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 갈증이라고 한다. 기독교에서도 광야에서 예수님이 40일간 금식 기도한 것을 본떠 금식 기도를 권한다. 이때는 대부분 물과 소금만 먹으며 기도한다.

물과 소금

김영삼 전 대통령도 물과 소금만 섭취하며 단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식 8일째 되던 날, 전두환 정권이 그를 서울대 병원에 강제로 입원시켰으나 병실에서도 단식을 이어갔다. 지율 스님은 단식 중 물과 소금 말고도 간장과 차와 커피(무설탕)를 마셨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물과 소금, 효소를 섭취하며 단식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황 대표도 물과 소금을 먹은 것으로 전해졌다. 물론 무엇을 먹었는지는 당사자만 정확히 알 수 있지만, 단식자들 대부분은 '두 가지'를 중요하게 여긴다. 물과 소금이다.

곡기를 끊은 상태에서 몸이 최소한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게 이 두 가지다. 물을 마시지 않으면 며칠 안에 탈수로 쇼크 상태에 빠질 수 있다. 탈수가 일어나면 뇌세포 기능이 떨어지고, 결국 의식을 잃는다. 소금은 우리 몸이 '전해질 균형'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전해질 불균형 상태가 오면 심장 부정맥이 생길 뿐 아니라 의식이 혼미해지는 섬망(譫妄) 상태에 빠질 수 있다.

그래서 단식자는 물과 소금으로 버티며 단식하는 것을 정석처럼 여긴다. 보통 단식원에서는 물은 하루 2000㎖ 이상, 소금은 10g 이상 섭취하라고 권한다. 물 대신 감잎차나 효소 등을 더하는 경우도 있다. 감잎차는 비타민C가 풍부하고 효소는 저혈당 예방을 도와준다.

지난 11월 27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단식 8일 만에 의식을 잃고 쓰러져 구급차로 이송되고 있다.

누구는 8일이고 왜 누구는 30일인가

그렇다면 누구는 왜 8일 만에, 누구는 30일 만에 쓰러지는 것일까. 단식 이후 몸에서 생기는 반응을 보면 이해하기 쉽다. 우리 몸은 평소 위장 등에 남아 있는 음식부터 소화한다. 외부에서 음식이 들어오지 않으면 몸에 저장된 에너지원을 쓰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꺼내 쓰는 것이 간에 있는 글리코젠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하루 이틀 안에 글리코젠도 바닥난다.

단식이 길어지면 우리 몸은 새로운 에너지원을 찾는다. 지방을 태워 '케톤체'를 만들고, 근육을 분해해 아미노산을 만들어 에너지로 쓴다. 자기 살과 근육을 활동 연료로 쓰는 셈이다. 뇌는 자체적으로 필요한 포도당량을 크게 줄여 손상을 막는 방어 체제를 가동한다.

사람마다 단식 중 버틸 수 있는 기간이 다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지방과 단백질량이 많은 사람은 상대적으로 더 오래 버틸 수 있다. 한양대 명지병원 가정의학과 신현영 교수는 "평소 지방이나 근육 등 체내에 에너지원이 얼마나 있는지에 따라 단식 기간이 달라질 수 있다"며 "나이나 몸무게 등 개인의 신체 상황에 따라서도 다르다"고 했다.

외부 환경이나 온도도 큰 영향을 미친다. 신 교수는 "사람의 몸은 항상 36.5도 체온을 유지하려고 하고, 이 과정에서 에너지를 쓴다"며 "체온과 비슷한 온도에서 단식하면 더 오래 버틸 수 있고, 추운 곳에서 하면 에너지를 더 많이 쓰기 때문에 그만큼 견디기가 더 어렵다"고 했다. 너무 더운 날에도 탈수가 많이 일어나 단식을 버겁게 한다.

경쟁하는 단식 방법 버려야

세계에서 가장 오래 단식한 사람은 스코틀랜드 출신 앵거스 바비이리다. 그는 1965년 6월 단식을 시작해 이듬해 7월까지 382일간 단식했다. 체중 감량이 목표였다. 이 기간에 그는 물, 홍차, 커피, 소다수, 비타민, 전해질 등을 섭취하며 버텼다. 가끔 우유나 설탕을 섞어 먹기도 했다. 기네스는 '고형식을 먹지 않는 단식' 중 가장 긴 기간으로 이를 인정했다. 214㎏이던 몸무게가 80㎏으로 줄었다고 한다.

최장기 단식 농성으로 사망한 사람은 1920년 영국에 대항한 아일랜드 독립운동가 테런스 맥스위니다. 그는 잉글랜드 브릭스턴 교도소에서 단식 투쟁을 하다 74일 만에 숨졌다. 그의 죽음은 아일랜드 독립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이들이 세운 기록(?)이 그렇게 오래 단식이 가능하다는 증거는 결코 아니다. 신 교수는 "단식 가능한 기간은 사람의 체내 구성에 따라 천차만별이고, 의학 외적으로는 단식의 목표나 정신력도 상당한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 정 이사 역시 "단식이란 정말 죽을 가능성이 있으며, 목숨을 걸고 해야 하는 일"이라며 "경쟁적으로 누가 더 오래 하나 식으로 논하기보다는 어떤 위험성이 있는지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기네스는 2003년 이후 더는 금식과 관련된 기록을 보증하지 않는다. 기네스 기록관인 스튜어트 뉴포트는 그렇게 한 명백한 이유를 이런 질문으로 요약했다. "만약 당신이 기록을 세우고 죽었다면, 그건 성공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