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할리우드 영화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나라의, 따라잡을 수 없는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그 큰 성벽 안으로 들어가서 중요한 상을 다 휩쓸었다는 게 눈물겹게 고맙지요."
1961년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은 '마부'의 강대진 감독 이후 해외 영화제의 벽을 넘은 첫 한국 영화인인 임권택(84) 감독은 "1955년에 영화에 입문해서 평생 영화를 하면서 살았지만 이런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며 감격했다. 그는 베네치아·몬트리올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씨받이'(1986), '아다다'(1988) 등을 연출했다.
임 감독은 "오래전 '살인의 추억'을 보면서 봉 감독이 언젠가 크게 영화로 이름을 남길 사람이다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란 게 아무리 잘 만들어도 어느 한쪽이 비거나 거슬리게 마련인데 '기생충'에는 그런 게 전혀 없었다.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는 걸 보고 일부러 전화를 걸어 축하를 했었다."
이날 집에서 아카데미상 시상식을 시청한 '국민 배우' 안성기(68)는 "TV로 시상식을 보다 '이게 뭐야!' 하며 소리를 질렀다"며 웃었다. "한국 영화가 살아남기 막막하던 시절, 할리우드를 괴물이자 적으로 여기던 때도 있었잖아요. 그런데 유럽 여러 영화제에 이어 아카데미의 장벽까지 사라졌네요. 이제 한국 영화인들은 더 치열하게 스스로 쌓은 벽을 넘어서는 일만 남은 겁니다."
영화 '마더'에 출연했던 배우 김혜자씨는 "눈물 나게 좋은 소식"이라면서 "너무나 기쁘다. 축하문자라도 얼른 넣어줘야겠다"고 했다.
'기생충'의 미국 아카데미 수상 소식에 한국 영화인들은 "불가능할 줄 알았던 일이 일어났다"며 놀라워했다. 봉준호 감독을 데뷔 때부터 각별히 아꼈던 이장호(75) 감독의 감격도 컸다. 그는 "우리가 미처 못 보고 지나쳤던 한국 영화의 값어치를 세계가 발견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남들과 다른 독특한 시선과 전개의 힘, 거대 자본으로 만들어지는 상업영화가 아니라 봉준호 속에 살아 있는 독립영화의 정신이 이번 영화에서 완벽하게 꽃을 피운 거예요. 앞에 있으면 말해 주고 싶네요. '봉준호 따봉!' 하하하."
기존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한 아시아 영화들은 아시아적인 지역성을 강조한 경우가 많았다. '해운대' '국제시장'의 윤제균 감독은 영화 '기생충'의 보편성에 주목했다. 그는 "빈부격차 같은 자본주의 폐해에 대한 봉 감독의 고찰이 자본주의의 심장인 미국에서 통렬한 비판으로 임팩트 있게 받아들여진 것"이라며 "동서양으로 나뉘지 않는 보편적 소재와 서사를 갖고 오직 이야기의 힘만으로 미국의 심장부에 정확히 한 방 먹인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 영화인도 관객도 한 단계 레벨 업(level up)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플란다스의 개'와 '살인의 추억'의 제작자였던 차승재 대표는 영화계에서 봉준호를 발탁한 은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그는 "봉준호라는 감독을 내 영화 인생에서 만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내가 되게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이번에 '기생충'이 받은 상은 전부 기술이나 노하우에 주는 상이 아니라 크리에이티브, 창의력에 주는 상이예요. 한국 영화 자본력은 할리우드의 100분의 1도 안 되겠지만, 92년 역사의 아카데미에서 창의력을 평가하는 본상을 휩쓸었다는 것이 한국 영화의 저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강우석(60) 감독은 "한국 영화는 아무리 두드려도 열리지 않던 북미라는 더 큰 시장에 도전할 큰 기회를 얻게 된 것"이라고도 기대했다. "감독에게 가장 행복한 얘기가 '감독님 영화를 보고 영화인이 되기로 결심했어요'라는 말입니다. 많은 영화감독 지망생에겐 '제2, 제3의 봉준호'가 되고 싶은 꿈이 생길 거예요. 봉준호와 '기생충'의 경사를 넘어 한국 영화 전체에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점점 진화하는 감독 봉준호, 다음 영화가 더 기대되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