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바비큐, 뉴욕 베이글, 나가사키 짬뽕, 나폴리 피자처럼 음식 앞에 지명이 붙는 경우가 있다. 보통은 처음 탄생했던 장소거나 그 지역에서 많이 먹고 유행하면서 대표 음식이 된 예들이다. 캘리포니아 롤(California Roll)은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캐나다에서 시작됐다. 북미 대륙에서 날생선이나 김을 먹지 않던 시절 밴쿠버로 이민을 간 오사카 출신의 셰프 히데카즈 도조(Hidekazu Tojo)는 자신의 식당에서 김밥을 팔았다. 그런데 식당 운영 중 그는 현지인들이 김의 냄새를 참지 못하고 밥에서 김을 벗겨 내는 장면을 자주 목격했다. “손님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는 간단하면서 명료했다. 고민 끝에 김을 안으로 넣고 밥을 겉으로 싸서 김 냄새를 없앴다. 거기에다 게를 좋아하는 캐나다인의 취향에 맞추어 게살에 오이, 아보카도를 소로 넣은 누드 김밥을 고안했다. 1974년 탄생한 이 메뉴는 당시 밴쿠버를 자주 오가던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비즈니스맨들에게 인기를 얻으며 알려지기 시작, ‘캘리포니아 롤’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 곧바로 로스앤젤레스와 캘리포니아 지역의 일식당에 이 메뉴가 등장했다. 캘리포니아 롤은 알래스카 롤, 필라델피아 롤, 드래건 롤, 맨해튼 롤 등의 다양한 변형을 만들어 내면서 오늘날까지 퓨전 캐주얼 일식의 아이콘이 되었다. 손님을 생각한 소박한 마음에서 시작된 하나의 레시피가 미 대륙에 일식을 유행시킨 기폭제가 된 것이다.
‘캘리포니아 롤’은 셰프의 메뉴 개발 벤처 중에서 가장 성공적이고 세계적인 사례 중 하나다. 그의 식당에선 이 메뉴를 ‘도조 롤’이라고 부른다. 그의 레스토랑은 소박하다. 우아한 인테리어나 청담동 일식집에서 흔히 보이는 편백나무 카운터도 없다. 하지만 다른 대부분의 셰프가 유행을 좇아 모방할 때 그는 ‘창조’를 했다. 70세인 도조는 현재도 매일 식당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손님을 맞이한다〈사진〉. 맛살이 아닌 진짜 게살을 넣은 도조 셰프의 롤은 찬 바람 부는 겨울날 더욱 인기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