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청와대 경험이 있는 정치권 인사가 "어느 정권 청와대든 3년쯤 지나면 이상해지는데 왜 그러는지 아느냐"고 기자에게 물었다. "왜 그러냐"고 되물었더니 그가 든 이유는 대강 이랬다.
한 정권이 임기 반환점을 돌면 개각이나 청와대 개편을 포함해 두세 번 정도 공무원 인사를 하게 된다. 정권 입장에서는 '쭉정이'는 거르고 '알곡'만 남긴다. '알곡'이 아닌 공무원들은 "이번 정권에서는 이쪽 길로 가는 게 안전하구나" 하고 감(感)을 잡는다. 청와대를 정점으로 말단 공무원까지 그렇게 세팅되면 청와대로 들어가는 보고(報告)는 자발적으로 왜곡된다. 이 인사는 "이전 정권은 지역 안배 시늉이라도 하면서 쭉정이도 끼워줬는데 이번 정권은 그런 것도 없다"고 했다. 그 결과는? "일방 질주"라고 했다.
3년이 채 안 됐지만, 문재인 정권은 일찌감치 그 단계에 접어들었다. 최근 청와대의 현안 대응을 보면 확실히 이상하다. 정권에 반기를 들었던 '쭉정이' 검사들을 대놓고 털어내는 검찰 '학살' 인사를 시작으로 윤석열 검찰총장을 상대로 벌인 싸움이 그렇다. 추미애 법무장관이 나섰지만 실은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윤 총장의 싸움이란 걸 세상이 다 안다. 피의자가 수사기관을 손보겠다고 하는 기괴한 상황에 진보 진영에서도 등 돌리는 사람이 나왔다.
문 대통령은 '안전'에 대한 국가 책임을 무한대로 확장해 집권했다. 박근혜 정권의 세월호 대처 실패에 대한 추궁과 단죄는 아직도 이뤄지고 있다. 문재인 청와대는 크고 작은 사고가 터질 때마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나섰다.
그랬던 문재인 정부가 우한 코로나 사태에는 이상할 정도로 안일했다. "코로나19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13일 문 대통령)이라는 낙관론은 일주일 만에 파탄 났다. 확진자가 100명을 넘던 날 문 대통령 부부가 봉준호 영화감독과 '대파 짜파구리'를 먹으며 파안대소하는 사진은 잊혔던 6년 전의 또 다른 사진을 소환했다. 박근혜 정부의 교육부 장관이 세월호 사고 실종자 가족이 있던 진도체육관에서 컵라면을 먹던 사진이다. 이 두 사진은 한 묶음으로 인터넷이나 카톡방에 퍼졌다.
'짜파구리 오찬'이 끝난 뒤 청와대가 낸 서면 브리핑에는 코로나의 '코' 자도 등장하지 않았다. 대신 김정숙 여사가 이틀 전 서울의 재래시장을 방문할 때 대동했다는 유명 중식 요리사의 조언으로 느끼한 소고기 안심 대신 돼지고기 목살과 대파를 썼다고 하는 내용만 시시콜콜 전했다.
6년 전 그 교육부 장관은 '황제 라면'을 먹었다고 두들겨 맞다가 사과하고 결국 교체됐다. 그런데 지금 우한 코로나 사태를 책임진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가장 큰 원인은 중국에서 들어온 한국인"이란 말로 성난 민심에 불을 지르고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없다.
지금 청와대에서 '코로나 실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국정상황실장은 의사 출신이라고 한다. 본인이 감염병 전문이 아니더라도 다른 전문가 얘기를 폭넓게 들었으면 코로나의 전파력을 감지했을 그는 문 대통령이 "머지않아 종식" 얘기를 하는 걸 막지 않았다. 최소한 주무 부처에서라도 '경고성' 보고가 청와대로 가야 했는데 담당 장관의 처신을 보면 그랬을 것 같지도 않다.
정말 심각한 것은 청와대가 질주하더라도 과속방지턱이 전무한 지금의 국가 운영 시스템에 대해 이 정권을 만든 사람들은 '뭐가 문제냐'고 한다는 점이다. 요즘 그들 사이에서 "이번 총선은 어차피 50 대 50 구도이고 한 표라도 더 이기면 되는 것 아니냐. 2027년까지 집권해서 미국이 뭐라든 남북이 손잡고 통일을 이루자"는 말이 오가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