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DC 갤러데트대 근처엔 특별한 스타벅스 매장이 있다. 스타벅스(Starbucks) 알파벳을 수화(手話)로 장식한 문을 열고 들어가면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대형 수화 벽화와 마주한다. 들리는 건 작은 대화 소리나 음료 만드는 기계 소리뿐이다. 보통 매장과는 다른 고요함에 낯선 느낌마저 들었다. 이곳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이어 2018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문을 연 스타벅스 사이닝 스토어(Signing Store·수화 매장)다. 바리스타 20명과 직원은 대부분 청각장애인이다. 장애가 없는 직원이라도 원칙적으론 수화로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
나처럼 수화에 미숙한 사람은 어떻게 주문할까. 계산대에 올려진 태블릿PC가 눈에 들어왔다. 고객들은 익숙한 듯 음료와 이름을 적어 직원에게 건넸다. 매장 단골인 존 워다치는 "주문을 글로 적는 것 외엔 다른 매장과 다르지 않다"며 "직원들도 고객을 편안하게 해줘 마음에 든다"고 했다. 미국은 청각장애인 고용률(53%)이 한국(27%)보다 훨씬 높다. 그 이유를 알아보려고 미국으로 향했다.
2011년 샌프란시스코에 문을 연 '모체리아(Mozzeria)'는 사장을 포함해 요리사 등 직원 14명 모두가 청각장애인이다. 나폴리식 피자 맛집으로 이름을 알린 이곳은 올봄 워싱턴DC에 2호점을 열고 25명 이상을 채용할 계획이다. 직원이 모두 청각장애인임에도 전화로 피자 주문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은 놀라웠다. 미국에선 널리 보급된 VRS(Video Relay Service·비디오 중계 서비스) 덕분이다. 고객이 매장으로 전화를 걸면 그 전화를 콜센터에서 근무하는 수화 통역사가 받는다. 통역사는 매장 직원과 영상통화로 연결돼 있다. 매장 직원은 수화로 통역사를 통해 주문하는 고객과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요리사 페니 프리먼은 "일반 통화보다는 약간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이를 불평하는 고객은 별로 없다"고 했다.
미국 청각장애인은 법조계나 교육계 등에서도 활약하고 있다. 국립청각장애인협회에서 일하는 변호사 자이나브 알케비시는 "미국에선 청각장애인 변호사가 200여명 활동하고 있다. 미국장애인법(ADA)의 역할이 컸다"고 했다. 한국엔 청각장애인 변호사가 없다. 1990년 통과된 ADA는 고용·공공시설·교육·교통·통신 등 분야에서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한국도 2007년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제정했지만 강제력이 약하다는 비판이 많다. ADA를 통해 장애인은 대학에 통역 등을 제공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 갤러데트대 경력개발센터 코조 아미사 교수는 "청각장애인 중에도 능력이 뛰어난 이가 많지만 의사소통이 안 되면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없지 않은가. ADA가 이들을 강의실에 데려와 학습할 수 있도록 돕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