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시각으로 11일 세계보건기구(WHO)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 대유행) 선언이 도쿄올림픽 취소·연기 논의에 기름을 부었다. 그동안 일본 안팎에서 군불을 때는 정도였다면 이젠 거대한 산불로 커지는 양상이다. 외신과 달리 보도를 자제해 왔던 일본 언론마저 취소·연기 가능성을 말하기 시작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12일에만 '팬데믹, 올림픽에 영향'이라는 제목의 기사 등 3건을 전했다. 신문은 올림픽조직위 고위 임원을 인용해 "대회 참가자 안전이 위협받을 경우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개최를 중지할 수 있는데, WHO 의견이 큰 영향을 미친다"고 우려했다. 도쿄도(都)의 한 간부는 이날 도청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책회의 직후 "(올림픽 취소·연기 논의에 대한) 국면이 크게 바뀌었다"고 말했다.

◇올림픽 개막 전 종식 가능성 없어

최근 일본 정부가 중국·한국인 입국 금지, 전국적 임시 휴교, 이벤트 자제 등의 초강수를 둔 것은 일본 내 감염 확산을 막아 국제적으로 올림픽 취소·연기 여론이 확산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지였다. 그러나 일본 내 감염을 억제한다 해도 전 세계적으로 전염병이 확산한다면 올림픽 성공은 고사하고 개최조차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다른 나라에서 선수와 관중이 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성화 채화식도 무관객 - 성화 채화식이 12일(현지 시각)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는 도쿄올림픽의 첫 공식행사 격이지만 코로나19 우려로 관객 없이 진행됐다. 성화 채화식이 무관객으로 열린 것은 사회주의권이 참가를 거부해 ‘반쪽 올림픽’으로 열렸던 1984년 LA 올림픽 이후 36년 만에 처음이다.

전염병 발생지인 중국은 사태 수습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주장하지만 이탈리아 등 유럽을 비롯해 미국과 중동 등에서 전염병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중국·일본 이외 지역의 누적 감염자 수는 지난 2월 10일 281명에서 3월 10일 2만6153명으로 한 달간 93배 늘었다. 일본은 같은 기간 26명(크루즈선 제외)에서 484명으로 19배 가까이 증가했다. 70명에서 706명으로 10배 증가한 크루즈선 감염에 비해 일본 지역 내 감염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 메르켈 독일 총리는 "독일 국민의 70%가 이 전염병에 감염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스(SARS·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 사례를 볼 때 코로나19가 도쿄올림픽 개막 전에 종식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고 있다. 사스는 2002년 11월 16일 중국에서 시작됐고 WHO 종식 선언은 2003년 7월 5일 나왔다. 종식까지 8개월 걸렸다. 신종 코로나는 중국 우한(武漢)에서 2019년 12월 초에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스 때 소요 기간을 대입해도 종식 선언은 빨라야 7~8월, 사스보다 높은 감염력을 고려한다면 유행이 연내 지속될 우려도 있다. 이와타 겐타로 고베대학병원 감염내과 과장은 일본 언론 인터뷰에서 "종식이 아예 안 되고 계속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다섯 가지 시나리오

도쿄올림픽 개최 결정의 선택지는 5가지가 있다. 일본 정부, 대회조직위원회, 도쿄도청 등 개최 3대 주체는 "강행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6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국회에서 "연기·취소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모리 요시로 대회조직위원장도 11일 "일정 변경은 없다"며 연기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러나 일본 당국이 강행을 고수해도, 코로나19가 대회 임박 때까지 잦아들지 않으면 흥행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취소 가능성도 언급된다. 딕 파운드 IOC 위원은 지난달 26일 "상황이 악화하면 국제올림픽위는 연기나 개최지 변경보다 취소를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3조700억엔(약 35조5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준비한 것이 물거품이 된다. IOC도 방송 중계권 수입을 잃는 등 큰 피해를 입는다. 파운드 위원 발언에 대해 대회조직위원회는 "개인적 의견일 뿐"이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마스조에 요이치 전 후생노동상은 "파운드 의원은 IOC 내 영향력이 막강하기 때문에 IOC 의사를 일부 반영한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하시모토 세이코 도쿄올림픽 담당상은 지난 4일 "연내 개최되지 않는 경우만 IOC가 취소 권한을 가지기 때문에, 연내 연기는 가능한 것으로 본다"고 밝혀 연기론에 불을 지폈다. 그러나 9월부터 미국의 최고 인기 스포츠 미식축구(NFL)가 시작되는 등 올림픽 이후 스포츠 중계 일정이 맞물려 있어 조정이 쉽지 않다.

도쿄올림픽 유치 활동에 관여했던 스즈키 도모유키 스포츠 컨설턴트는 "IOC가 도쿄올림픽을 관중이 없는 대회로 열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일본으로선 대회만 열고 흥행·경제 효과를 못 얻는 격이지만 IOC로선 중계권 수입을 보전할 수 있어 검토 대상이라는 얘기다. 미국 NBC는 도쿄올림픽의 미국 내 중계권료로 11억달러(약 1조3000억원)를 지불했다. IOC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IOC는 전체 수입의 73%를 방송중계권료에서 얻는다. 그러나 다카하시 하루유키 도쿄올림픽 집행위원은 10일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올여름 개최가 어렵다면 1~2년 연기하는 게 가장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관중 없이 진행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경제적 손실이 너무 커 현실성이 높지 않다"고 했다.

◇"5월이 최종 결정 시한"

지난달 26일 딕 파운드 IOC 위원은 AP통신 인터뷰에서 "늦어도 5월 하순까지 강행 여부가 결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 올림픽대회 관계자는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실무적으로는 (강행 여부 결정이) 5월 하순도 사실 매우 빠듯하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일단 이달 19일까지 전국적인 이벤트 자제 등을 요청했다. 국내 확산세를 막겠다는 의지다. 19일로 못 박은 것은 다음 날부터 일본 내의 올림픽 관련 행사가 본격화하기 때문이다. 20일엔 성화 도착식, 26일엔 후쿠시마에서 성화 봉송식이 거행된다. 도착식은 무관중으로 진행할 예정이지만, 성화 봉송식은 의미가 남다르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의 최대 피해지인 후쿠시마에서 일본 부흥을 세계에 알린다는 상징성을 부여해 성대하게 치를 계획이었다.

IOC와 일본 당국 사이에 책임 회피, 눈치 싸움으로 최종 결정이 5월 이후로 연기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2000년대 초 고이즈미 정권에서 경제재정담당상 등을 지낸 다케나카 헤이조 게이오대 교수는 일본 주간지 프레지던트 최근호에서 "도쿄올림픽 조직위 입장에선 보험금 때문에라도 먼저 올림픽 연기 등을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 "조직위가 먼저 결정하면 취소·연기에 따른 보험금을 받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반면 IOC가 먼저 결정하면 보험금 수령 조건을 충족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다케나카 교수는 또 올림픽 강행 여부의 가늠자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일(訪日)과 중국 톈진에서 올림픽 직전 열리는 하계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을 들면서 "이 둘이 취소되면 올림픽 개최는 어렵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4월로 예정됐던 시 주석의 방일은 이미 연기됐다.

[초등생때 '1964 도쿄올림픽' 보고 감명… 日 영광 재현하려던 아베의 꿈 꺾이나]

벚꽃 스캔들 등 정치도 궁지 몰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006년 쓴 책 '새로운 나라로'에서 1964년 도쿄올림픽을 '일본이 가장 빛났던 시기'로 꼽았다. 그는 책에서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어린이 아베의 눈에 비쳤던 일본의 부활을 몇 페이지에 걸쳐 묘사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1964년 도쿄올림픽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그의 꿈이 악몽으로 바뀔 위기에 놓였다.

최근 아베 총리는 '벚꽃을 보는 모임'(이하 벚꽃회)과 관련, 정치적 위기에 몰려 있다. 벚꽃회는 매년 봄 도쿄에서 총리가 여는 행사인데 아베 집권 후 총리를 비롯한 정권 요인이 지역구 후원회원 등을 초청하는 행사로 변질시켰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국민의 불신감이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 불신을 잠재울 승부수가 56년 만에 도쿄에서 다시 열리는 올림픽이었다. 전쟁 피해를 딛고 부활한 일본을 세계에 알린 1964년 올림픽처럼, 3월 26일 후쿠시마에서 열리는 성화 봉송식을 시작으로 동일본 대지진 후 침체했던 일본의 부흥을 홍보할 계획이었다. 4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일본 방문, 아베 총리의 5월 9일 러시아 승전기념식 참석 등으로 외교 성과를 과시할 심산도 있었다. 그러나 시 주석 방문은 이미 무산됐고, 올림픽마저 물거품이 될 경우 아베 총리의 정치적 책임은 물론 정권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

일본은 돈 적게 들이는 올림픽을 지향하는 최근 추세와 달리 엄청난 예산을 쏟아부었다. 일본 회계감사원의 작년 12월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은 올림픽 관련으로 3조700억엔(약 35조5000억원)을 집행했다. 일본은 작년 말 소비세 증세(8%에서 10%로) 등으로 국내 소비가 얼어붙고 있다. 작년 10~12월 경제성장률은 전년 대비 마이너스 6.3%였다. 올림픽 관련 특수마저 날아갈 경우 경제적 타격이 심각하다. SMBC닛코증권의 마키노 준이치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1일 "올림픽이 무산된다면 일본 상장기업의 올해 수익이 전년보다 최대 24% 하락하고, 올해 국내 총생산(GDP)도 1.4%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