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예매 앱(응용 프로그램) '아이겟'을 운영하는 스타트업 엔터크라우드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영향으로 10억원 규모의 투자 유치 계획이 물거품이 됐다. 아이겟은 다양한 예매 사이트로 분산된 공연 정보를 한 곳에 모으고, 실시간으로 예매할 수 있도록 해주는 서비스다. 지난해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후 공연 소비량이 늘며 매출도 매달 2배씩 빠르게 늘어났다. 하지만 2월 말 정부가 코로나 사태를 '심각'단계로 격상하자, 90% 이상의 고객이 공연 예매를 취소했다. 매출이 수직으로 하락한 가운데, 관심을 갖던 투자사들마저 코로나 여파로 예정돼 있던 투자 유치 설명회(IR)를 취소하고 나섰다. 정주황 엔터크라우드 대표는 "예정됐던 투자가 차질을 빚으니 자금 상황이 너무 어려워졌고, 직원들의 근무시간은 원래의 3분의 1로 단축했다"며 "이대로 가면 하반기에는 사업을 접어야 할 상황"이라고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국내외 스타트업 업계를 강타하고 있다. 금융시장 침체로 벤처 투자사들의 신규 투자는 ‘올스톱’ 상태고, 소비심리가 얼어붙으며 매출까지 하락해 스타트업의 ‘돈줄’이 메마르고 있는 것이다. 유승운 스톤브릿지캐피털 대표는 “투자를 하기 전에는 비슷한 사업을 하는 다른 기업의 시가총액 등을 참고해 기업 가치를 평가하는데, 주식시장이 크게 침체하면서 투자자들이 ‘이 전에 평가했던 기업 가치가 적당하냐’라는 문제를 고민하게 됐다”며 “전반적으로 코로나가 투자 분위기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도 상황은 비슷하다. CB인사이츠에 따르면 전세계 스타트업의 ‘종잣돈’ 자금은 1월 이후 22% 넘게 줄어들었다. 올 1분기 스타트업이 종잣돈으로 쓰는 펀드 규모는 애초 전망치인 770억 달러(약 94조 2800억원)보다 100억 달러 줄어든 670억 달러(약 82조원)에 그친다.
파산·감원·월급삭감…글로벌 스타트업이 ‘비상’
28일(현지 시각) 미국 CNN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영국 우주 개발 스타트업인 '원웹(OneWeb)'은 전날 미국 뉴욕 남부 법원에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500여명의 직원을 둔 이 업체는 이번 주 안에 전체 인력의 10%를 해고한다고도 밝혔다. 2012년 설립된 원웹은 저궤도 인공위성 600여개를 띄우고, 이를 연결해 전 세계 어디서나 초고속 인터넷을 쓸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운 스타트업이다. 소프트뱅크로부터 누적 20억 달러(약 2조 4500억원)을 투자 받았고, 올 초까지 통신위성 74개를 발사 성공했다. 하지만 올 들어 소프트뱅크와 신규 투자 유치 협상이 어그러지면서 자금난에 빠졌다. 원웹은 파산 보호 신청의 이유에 대해 "코로나 확산과 관련된 재정적 영향과 시장 혼란으로 자금 프로세스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라스트마일(last mile)' 이동 서비스로 빠르게 성장했던 전동킥보드 업체에는 감원 칼바람이 불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급격히 줄면서 매출에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28일 미국 IT매체 테크크런치에 따르면 미국 공유킥보드 스타트업 '버드'는 코로나 영향으로 직원 30%를 감원하기로 결정했다. 전체 1387명의 직원 중 406명이 일자리를 잃게 된 것이다. 트래비스 밴더잰슨 버드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직원들에게 보내는 사내 메일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경영진으로 하여금 극심하게 어렵고 고통스러운 결정을 내리게 했다"며 "글로벌 시장이 멈춰서면서, 자금난으로 지출을 크게 줄여야 하는 상황에 30%의 동료와 작별인사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미국 IT매체 테크크런치에 따르면 버드의 경쟁사인 라임은 미국 샌프란시스코 본사에서 직원 70명을 감축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자체 기업 가치를 이전 투자 유치 때 평가받은 24억달러(약 3조원)에서 4억달러(약 4900억원)로 약 83%를 삭감하고 '굴욕적인' 투자 유치에 나섰다는 소식도 나왔다. 이에 대해 라임측은 "코로나 때문에 업황이 어려운 것은 맞는다"며 "다만 당장 해고 계획은 없으며, 기업 가치 타격은 있으나 저 정도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최대 숙박공유 업체인 에어비앤비도 생존을 위해 임원진 임금삭감에 나섰다. 지난 27일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에어비앤비는 글로벌 마케팅 활동을 전면 중단하고, 임원진의 월급을 6개월 동안 50% 삭감하기에 나섰다. 창업자들은 아예 월급을 받지 않고, 일반 직원들에겐 월급을 보전해주는 대신 연말 보너스를 지급하지 않을 계획이다. CNBC는 "마케팅 중단 등으로 에어비앤비는 약 8억 달러 규모의 예산을 절감하고, 어려운 시기에 생존을 도모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내 스타트업도 ‘죽을 맛’…지원책은 미비
국내 스타트업들도 상황이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코트라(KOTRA)가 최근 국내 스타트업 273개사를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한 결과, 응답한 235개사 중 약 93%가 코로나 영향을 받고 있다고 답변했다. 국내 1000여개의 스타트업을 회원사로 두고 있는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이 최근 회원사 80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복수 선택), 코로나 사태 이후 응답 업체의 41.5%가 ‘매출 감소 및 비용 증가’를 겪었고, 33%가 ‘투자 차질’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당장 스타트업들이 고사(枯死)하게 생겼는데, 알맞은 지원책이 나오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온라인 여행 스타트업 ‘레드테이블’을 창업한 도해용 대표는 “대부분의 피해 지원이 ‘매출이 얼마나 줄었는가’를 지표로 삼는데, 스타트업은 매출이랄 게 없는 경우가 많아 지원을 못 받는 황당한 경우가 많다”며 “우리 업체는 그나마 매출 기록이 있어 서울신용보증에 긴급경영자금을 신청했는데, 그마저도 나오려면 3개월이 걸린다”고 했다. 그는 “코로나 이후 매출이 평소보다 95% 급감한데다, 여행 스타트업에 투자하려는 사람이 없어 지금 수중에 있는 자금으로는 3개월 이상을 버티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스타트업은 소상공인도 아니고, 중소기업도 아니라서 어느 쪽 지원 요건에도 맞추기 어렵다”며 “코로나로 스타트업도 큰 타격을 입었는데, 이들이 고금리 대출 시장으로 빠지기 전에 긴급 자금 수혈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