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개봉해 높은 작품성으로 전 세계에서 호평을 받았던 일본 오토모 가쓰히로(大友克洋) 감독의 SF애니메이션 영화 ‘아키라(AKIRA)’가 3일 일본에서 아이맥스(IMAX)로 재개봉했다. 4K 초고화질(UHD) 리마스터 세트(블루레이)도 오는 24일 발매된다. 최근 제작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까지 방영되는 등 아키라에 대한 관심이 높다.
애니메이션 아키라는 오토모 감독이 1982년부터 주간 ‘영 매거진’에서 인기리에 연재했던 만화 ‘아키라’를 원작으로 한다. 1988년 3차 세계대전 이후 31년이 지난 2019년 ‘네오 도쿄(東京)’가 배경이다. 반정부 시위대와 공권력이 충돌하고, 폭주족이 설치는 암울한 도시에서 초능력을 가진 아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현지 매체들은 치밀하면서도 생동감 있은 영상, 강력한 사운드 등을 이 작품의 매력으로 꼽는다. 하지만 최근 아키라가 증권사 보고서에 등장할 정도로 일본에서 화제가 된 것은 도쿄올림픽 연기 등 현재 상황을 30여년 전에 정확히 예언했기 때문이다.
아키라에는 ‘30회 도쿄올림픽 개최까지 앞으로 147일’, ‘국민의 힘으로 성공시키자’라는 간판 문구가 나오는 장면이 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중지다, 중지’ ‘분쇄’ 등의 낙서가 보인다. 원래 도쿄올림픽은 올해 7월 24일이 개막 예정이었는데,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내년 7월 23일로 연기됐다. 올해 7월 24일 기준으로 D-147일은 2월28일이다. 당시, 일본 내 코로나 확진자는 크루즈선 탑승자를 포함해 800명을 넘어섰고, IOC(국제올림픽위원회) 딕 파운드 위원이 올림픽 취소 가능성을 언급하는 등 도쿄올림픽 정상 개최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일던 시기였다. 지난달 3일 하시모토 세이코 올림픽 담당상이 일본 정부인사로선 처음으로 올림픽 연기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아키라의 이 장면은 일본 네티즌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됐다.
비슷한 시기 교토 대학 학생들은 교내에 이 장면을 패러디하기도 했다. 다만, 만화와 달리 ‘32회 도쿄올림픽’이라고 돼 있다. 실제 도쿄올림픽은 32회 올림픽이 맞다. 아키라에서 30회 올림픽이라고 한 것은 1988년 3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고 가정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1차 세계대전(1916년), 2차 세계대전(1940·1944년) 때 하계올림픽이 세 차례 취소됐었다.
올림픽 개최를 둘러싼 사회적 분위기도 비슷하다. 아키라에선 3차 세계대전 이후 재건을 통해 부흥한 ‘네오 도쿄’에서 시대 변화를 모색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현 일본 정부도 이번 올림픽을 2011년 발생한 ‘3·11 동북부 대지진’ 복구를 위한 부흥의 계기로 삼으려고 한다.
아키라 후반부에 건설 중인 올림픽 스타디움이 무너지면서 올림픽 개최는 물 건너간다.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에 따르면 한 증권사는 3월 중순 아키라를 언급하며 도쿄 올림픽 연기 시나리오가 진행되고 있다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결국 지난달 24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도쿄올림픽 1년 연기에 합의했다.
아키라에는 올림픽 외에도 여러 예언이 담겨 있다. 애니메이션에는 나오지 않지만, 아키라 만화책에는 ‘WHO(세계보건기구) 가 일본의 전염병 대책을 비난했다’는 내용의 신문 기사도 나온다. 마치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를 예상한 듯하다. 또 애니메이션에서 ‘총리의 세제 개혁으로 실업자가 늘면서 전국 각지에서 폭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TV 뉴스가 나오는데, 실제 아베 내각은 작년에 소비세를 올렸다.
오토모 감독 작품이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공감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1954년에 태어난 오토모 감독은 2차 세계대전 전후 세대로 급격한 경제성장과 도시화에 따른 전염병, 사회적 문제를 겪었다. 1964년 도쿄올림픽도 전후 극복을 위한 부흥 올림픽이었다. 일본 매체 다이아몬드 온라인은 “아키라의 ‘예언’은 작가가 겪은 경험과 거기서 나오는 세계관 때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