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온라인 개학을 맞아 수업을 녹화하고 있는 교사의 모습. photo 뉴시스

경기도 용인시 한 중학교 교사 A씨의 목소리에는 짙은 피로감이 묻어났다. 중학교 2학년과 3학년에게 국어 과목을 가르치는 A씨는 지난 4월 9일부터 1차 온라인 개학에 맞춰 3학년생들의 국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온라인 개학을 해야 한다는 방침이 내려오고 나서 전체 교사들이 모여 어떻게 할 것인지 갑론을박 토론을 벌이는 데만 한참 시간이 걸렸어요. 학교에 와이파이도 없어서 인터넷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부터, 노트북이나 PC가 없는 학생 수를 파악하고, 강의 방식을 어떻게 할 건지 정하느라 집에서도 하루 종일 일만 했어요.”

교육부의 지침은 몇 줄에 불과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교사들이 직접 만들어내야 했다고 한다.

“첫날에는 학습자료를 올리는 EBS 온라인클래스가 접속이 안 돼서 진땀을 흘렸습니다. 사비(私費)로 촬영장비를 구입한 교사도 많아요.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말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교사들끼리 밤늦게까지 통화하고, 서로의 수업 영상을 모니터링하고, 정말 ‘맨땅에 헤딩’하고 있습니다.”

수업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업무는 너무 많았다.

“PC나 노트북이 없다면 스마트폰이라도 있어야 온라인 수업을 받을 수 있을 텐데요. 담임을 맡은 교사들은 그 수를 파악하는 것도 힘들었다고 합니다. PC가 있긴 한데 대학생 누나와 나눠 써야 한다는 학생도 있었고요.”

누구도 코로나19 사태가 이렇게 확산돼 2020년 1학기가 온라인으로 진행될 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온라인 개학이라는 사상 초유의 일 앞에서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진행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온라인 개학을 지원해야 할 EBS 온라인클래스나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의 ‘e학습터’가 연일 접속장애를 일으키거나, 온라인 개학 방침을 급하게 정해 우왕좌왕했던 교육 당국의 모습 같은 것을 보면 혼란스러움을 감출 수 없다. 그간 우리가 얼마나 ‘디지털 교육’이라는 새로운 흐름에 동떨어져 있었는지 고스란히 느끼게 한다.

IT 강국이 디지털 교육은 OECD 후진국

몇 가지 통계자료를 보자. 한국교육학술정보원에서 3년마다 시행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의 ‘ICT 친숙도 설문’ 부문을 활용해 한국의 교육정보화 수준을 평가한 결과다. ‘OECD PISA 2018을 통해 본 한국의 교육정보화 수준과 시사점’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로 지난 3월 발간되었다.

만약 한국이 IT 강국이라 믿고 있었고, 교육 현장 역시 그 영향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결과가 다소 충격적일 것이다. 당장 학생들의 디지털기기 접근성, 그러니까 컴퓨터나 스마트폰 같은 디지털기기를 얼마나 다양하게 보유하고 사용하는지를 측정한 결과 한국은 조사대상국 중 하위권에 속했다. 특히 가정에서 디지털기기 접근성이 떨어졌다. 조사대상국 31개국 중 28위에 자리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인터넷이 연결되는 휴대폰과 데스크톱 컴퓨터에 대한 접근성은 높았다. 그러나 노트북, 태블릿PC 같은 기기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졌다. 학교에서 접근성은 그나마 나은 편이라 15위를 차지했다. 마찬가지로 태블릿PC같이 휴대성 있는 디지털기기나 전자칠판, 발표를 위한 프로젝터같이 학습을 위한 디지털기기에 대한 접근성은 확연히 낮았다. 그나마 접근성이 높은 PC의 수도 학생 수 대비 비율을 따지자면, OECD 평균에 훨씬 못 미쳐 조사대상국 37개국 중 32위에 그쳤다.

인프라도 제대로 못 갖춘 상황에서 디지털 교육이 제대로 이뤄질 리 없다. 학교에서 학습을 위해 학생이 디지털기기를 활용하는 정도를 따져보면 한국은 아예 마이너스(-)를 기록해 29위를 차지했다. 이메일이나 학습사이트를 사용하는 비율은 OECD 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심지어 학교에서 학습을 위한 인터넷 검색도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OECD 평균 75.26%의 학생이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는 데 반해 한국은 절반이 되지 않는 학생(48.42%)만이 인터넷 검색을 했다.

학교 내에서 디지털기기를 아예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수업시간 중 디지털기기를 사용하는 시간은 조사 대상 31개국 중 9위로 꽤 높은 수준이었다. 그런데 상세히 살펴보면 디지털기기를 주로 사용하는 사람은 교사다. 국어 과목의 경우 교사만 디지털기기를 사용한다는 응답이 56.65%였다. 교사와 학생이 모두 사용하는 경우는 16.67%로, OECD 평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러니까 디지털기기를 사용하되 일방향적인 강의 형식의, 예전부터 이뤄졌던 방식의 수업에 디지털기기만 사용하는 형식으로 바뀐 셈이다.

이상적인 디지털 교육 현장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학생들이 모두 태블릿PC 같은 디지털기기를 하나씩 손에 들고, 디지털교과서를 참고해 수업을 받으면서, 조별과제나 수행평가 같은 활동을 하며 온라인 소통을 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심지어 보안을 이유로 와이파이(wifi)가 지원되는 학교도 손에 꼽는다.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미 2011년 교육 당국은 ‘스마트교육 추진 전략’을 내놓고 구체적인 계획도 세웠었다. 당시 교육과학기술부(현 교육부)가 내놓은 실행계획을 보면 상당히 미래지향적이다. 학습자료가 풍부하고 실시간으로 맞춤형 진단을 할 수 있으며 어디서든 공부를 이어나갈 수 있는 웹 기반의 디지털 교과서를 단계적으로 개발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그리고 다양한 환경의 학생을 지원해주기 위해 온라인 수업을 활성화하고 여러 공교육 기관과 교사들이 모여 콘텐츠를 개발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그러나 이 계획은 계획에 그쳤다. 2020년이 된 지금까지도 디지털교과서는 ‘모든 교과서를 디지털로 전환하겠다’는 선언만 여러 차례 나왔고, 시범학교 몇 군데에서만 선보이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온라인 수업은 더욱 지지부진하게 진행됐다. 당시 스마트 교육과 관련한 전략을 세우고 실행한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천세영 전 원장(충남대 교육학과 교수)은 그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원래 교육 현장은 보수적으로 변화하기 마련이지만 디지털 교육으로의 전환에는 두려움이 컸습니다. 무엇보다 구체적인 실행전략까지 세워놓고 제대로 추진을 못 했던 이유는, 우리 교육 정책이 가지는 한계 때문이었습니다. 정권이 바뀌면 추진하던 교육 정책도 멈추고 바뀌는 일 말이지요. 그 사이 정권이 두 번 바뀌면서 디지털 교육 추진 전략은 거의 없던 일이 돼버렸지요.”

디지털 교육 정책뿐만이 아니다. 한국 교육에서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추진되는 정책은 정말 드물다. 특히 디지털 교육처럼 기존 교육의 틀을 완전히 바꿔야 하는 정책일수록 더 그렇다.

교사들만 ‘맨땅에 헤딩’, 지금이 기회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육공학자의 설명을 들어보면 디지털 교육의 난점(難點)을 이해할 수 있다. 당장 디지털기기에 대한 접근성만 해도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의 ‘디지털 정보격차’ 보고서를 보면 19세 이하 저소득 청소년 중 PC를 보유하지 않은 비율은 9.7%, 스마트폰 같은 모바일기기가 없는 청소년은 5.5%에 달한다. 통계청이 조사한 학령아동(만 8~19세) 수가 약 683만명이니 스마트폰이 없는 아동·청소년만 해도 37만명이 넘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학생들이 모두 사용할 수 있는 디지털기기를 어떤 것으로 정해 배분할 것인지만 해도 막대한 예산과 깊은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교사들의 수업 역량을 기르는 데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중·장년층 교사 중에는 디지털기기를 활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한국 교육 정책의 기반이 되는 법률은 대개 오프라인 교실을 기본으로 제정돼 있기 때문에 디지털 교과서에 대한 법적 근거도, 온라인 수업에 대한 원칙도 쉽게 정하기 어렵다. 디지털 교과서에 대한 저작권 문제, 기존 교수 방법을 고수하는 교원들의 반발 같은 것은 단숨에 바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만약 처음 ‘스마트 교육’이라는 단어가 제시됐던 2011년부터 10여년간 꾸준히 이에 대한 논의를 진행해왔더라면 지금쯤 온라인 개학을 하면서 ‘맨땅에 헤딩’이라는 표현이 등장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교육 현장에서 디지털 교육이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디지털 교육 격차마저 시작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과학고나 영재고 같은 특수목적고등학교에서는 이미 디지털 교육을 자연스럽게 시행하고 있다. 민간 교육 업체의 디지털 교육 인프라는 공교육에 비해 상당히 앞서 있다. 디지털 격차가 교육 격차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코로나19로 인한 온라인 개학은 역설적으로 계속 미뤄지고만 있었던 디지털 교육을 단숨에 시작하게 만든 ‘기회’일지도 모른다. 한국교육행정학회 회장인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엄청난 실험이 시작되고 있다”고 말했다.

“만약 이 실험이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우리는 정말 많은 것을 얻을 겁니다. 사실 지금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교사들의 역량만으로 온라인 개학이라는 일을 해내고 있거든요. 디지털기기를 사용하기 어려워하는 교사들은 다른 교사들이 도와주면서 어떻게든 수업을 만들어가고 있어요.”

문제는 교육 당국이다. ‘무탈하게’ 온라인 개학을 진행하는 데 초점을 맞추다 보니 교사의 자율적인 수업 계획은 계속해서 방해받고 있다. 지침이 계속해서 바뀌는데 교사들과 직접 소통하려는 노력은 부족하다.

천세영 교수는 이번 사태가 한국의 디지털 교육의 발전을 가늠할 수 있는 기회라고 설명한다. 지금 교육 당국이 해야 하는 일은 억지로라도 시작한 디지털 교육의 인프라를 뒤늦게라도 구축하고 오프라인 개학이 시행되더라도 디지털 교육이 이어질 수 있도록 “장기적인 비전을 마련하는 일”이다.

박남기 교수 역시 마찬가지 의견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이 실험에서 얻은 결과물로 무얼 할 것이냐는 겁니다. 전국 모든 교사가 콘텐츠를 만들 만한 역량을 급하게라도 길렀어요. 그렇다면 이걸 이어나갈 수 있게 교육 당국은 다음 계획을 짜야 합니다. 네트워크를 만들고 지원해주고 앞으로 어떤 목표를 세울 것인지 고민하고, 그걸 교육부에서 해야 합니다. 시행착오는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지금은 전시(戰時) 상황이잖아요. 오류가 날 수도 있고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걸 가리는 데에만 신경 쓰면 안 됩니다.”

장기적이고 미래적인 움직임은 아직까지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교육 전문가들의 우려대로 코로나19 사태가 소강 상태로 접어들면 이번 온라인 개학은 없었던 일처럼 지나가버릴지 모른다. 지난 10여년간 그랬듯이 ‘경험’의 차원으로만 머물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이 매우 중요하다. “지금은 위기가 아니라 기회”라는 전문가들의 말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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