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의 영광입니다. 대견하고 기특합니다. 선물요? 사 줄 필요가 있을까요? 이미 다 가진 애들인데요."
최근 '예능 대세'로 맹활약 중인 허재(55) 전 농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아들의 수상 소식을 전해 듣자 "허허허" 웃었다.
허재 전 감독의 차남 허훈(25·KT)은 20일 서울 강남구 KBL센터에서 열린 2019~2020프로농구 정규리그 시상식에서 국내 선수 MVP(최우수선수)의 영광을 안았다. 장남 허웅(27·DB)은 팬 투표를 통해 '게토레이 인기상'의 주인공이 됐다. 동생은 실력, 형은 인기에서 최고로 인정받은 것이다. 바야흐로 KBL에 '허씨(許氏) 천하'가 열렸다.
◇허씨 가문의 첫 정규리그 MVP
허훈은 프로 3년 차에 생애 첫 정규리그 MVP의 감격을 맛봤다. 기자단 투표에서 63표를 받아 DB의 김종규(47표)를 제쳤다. 정규리그 MVP는 아버지인 '농구 대통령' 허재 전 감독도, 형 허웅도 아직 받아보지 못한 상이다. 농구대잔치 시절 두 차례 시즌 MVP를 수상한 허재 전 감독은 프로농구 무대에선 정규리그 MVP와 인연이 없었다. 허훈은 "아버지는 플레이오프 MVP(1998년)를 받은 적이 있다. '부자(父子) MVP'가 되어 뜻깊고 기분 좋다"고 말했다.
허훈은 올 시즌 35경기에 나와 평균 14.9점(전체 8위, 국내 선수 2위), 7.2어시스트(전체 1위)를 기록했다. 임팩트 있는 활약이 돋보였다. 그는 작년 10월 DB전에서 KBL 역대 최초로 3점슛 9개를 연속해서 집어넣었다. 이 플레이는 이날 KBL '올 시즌 최고 플레이(Play of the season)'상을 받았다. 베스트5까지 포함하면 3관왕이다. 그는 지난 2월엔 KGC인삼공사를 상대로 24점 21어시스트를 기록, 리그 사상 처음으로 한 경기에 20점 20어시스트를 동시에 넘어섰다.
허훈은 사상 처음으로 승률 5할 미만의 팀 소속으로 MVP를 받은 선수가 됐다. KT는 이번 시즌을 6위(21승22패)로 마쳤다. 허훈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컸다. KT는 허훈이 뛴 경기에서 20승15패, 부상으로 빠진 경기에선 1승7패로 부진했다.
◇인기는 동생보다는 내가!
동생이 집안 첫 정규리그 MVP의 영광을 가져간 가운데 형 허웅은 인기상으로 자존심을 살렸다. KBL 홈페이지를 통해 진행된 팬 투표에서 허웅은 8239표를 얻어 동생 허훈(7347표)을 제치고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이상범 DB 감독은 2018년에 이어 두 번째로 감독상을 받았다. 28승15패를 기록한 DB는 SK와 함께 공동으로 정규리그 1위 타이틀을 차지했다.
농구를 그만두고 막노동을 하는 등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가 다시 코트로 돌아온 '늦깎이 루키' 김훈(24·DB)이 신인상의 주인공이 됐다. MVP 허훈과 함께 '훈이 전성시대'를 연 김훈은 "농구에 다시 도전해 받은 상이라 뿌듯하다"고 말했다. 외국 선수 MVP는 자밀 워니(SK)가 받았다. 워니는 평균 20.4점 10.4리바운드로 SK의 공동 1위를 이끌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시즌을 조기에 종료한 KBL은 이날 팬과 취재진 없이 수상자만 초대해 행사를 진행했다. 팬들은 유튜브를 통해 시상식을 지켜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