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트위터 (해킹) 수법 너무 유포돼서 망했다며?"(박사)
"방금 올린 피싱 링크로 한 마리 잡았는데?"(갓갓)
지난 1월 20일 오후 9시쯤, 한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조주빈(25·닉네임 박사)과 문모(24·닉네임 갓갓) 사이에 오간 대화 내용이다. 조주빈은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의 성(性)착취물을 제작·판매한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이고, 문씨는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하는 텔레그램 대화방을 통칭하는 'n번방'의 국내 원조로 알려진 인물이다.
이들은 대화방에서 서로 자신의 범죄 수법이 뛰어나다고 과시했다. 조씨는 "내 수법은 한두 개가 아니다"라고 했고, 문씨는 "나는 해킹으로 (다른 사람 아이디를) 쓴다. 난 해커"라며 받아쳤다. 지난해 7월 13일 텔레그램 대화방 운영권을 물려주는 위임식까지 열고 잠적한 것으로 알려졌던 '갓갓'은 올 초 언론에 'n번방'이 잇따라 보도되자 홀연히 등장해 조주빈에게 2시간가량 자신의 범죄 수법을 자랑한 것이다.
이런 과시욕 때문에 갓갓은 덜미를 잡혔다. 경북지방경찰청은 지난 9일 문씨를 '갓갓'으로 특정해 소환 조사하던 중 그의 자백을 받고 긴급 체포했다고 11일 밝혔다.
'갓갓' 문씨는 박사방을 포함한 유사 n번방에서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피해자 계정을 해킹하는 과정을 실시간 방송하며 자신의 범죄 수법을 과시했다. 문씨는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당신의 사진이 도용됐다"며 피해 여성에게 악성 코드가 심긴 해킹 링크를 보내고, 여성이 이 링크를 클릭하면 개인 정보를 빼내는 방식으로 피해자를 협박했다.
이 방송에는 문씨가 자신의 스마트폰 앱을 켜고 끄는 과정과 함께 배경화면도 고스란히 노출됐다. 경찰은 1~2초에 불과한 이 장면에서 갓갓이 당시 어떤 앱을 사용했는지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갓갓의 스마트폰에는 가상 전화번호를 만들어주는 앱과, 스마트폰 화면을 PC에 실시간으로 띄우며 원격 제어·녹화할 수 있는 앱이 깔려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런 앱에 가입된 회원 정보를 조합한 뒤 갓갓을 추적한 것으로 보인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앱 개발사의 협조를 얻어 문씨가 가입한 여러 앱에 공통적으로 가입한 사람을 추리면 용의자가 특정될 수 있다"고 했다.
경찰 체포로 신원이 확인된 'n번방'의 원조 '갓갓'은 경기도 한 대학에 다니는 24세 대학생인 것으로 전해졌다. 경북경찰청은 지난해 7월부터 소셜미디어를 이용한 성착취 영상물 제작·유포 사건을 수사해오다 문씨의 존재를 알고 추적해 10개월 만에 그를 체포하는 데 성공했다. 경찰 소환에 순순히 응한 문씨는 당초 자신이 기소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앞서 구속된 '박사' 조주빈과 달리 n번방 입장료를 문화상품권으로 받았고, 범죄에 사용한 휴대전화도 모두 없애 증거도 남지 않는다고 봤다는 것이다.
경찰은 검찰 송치 과정에서 문씨를 포토라인에 세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문씨는 12일 오전 대구지법 안동지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