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 작가가 그린 ‘크라잉(Crying)’. 피노키오가 우는 모습과 웃는 모습이 동시에 보인다.

"깊은 잠에 빠져 있던 백설공주는 백마 탄 왕자의 키스를 받고, 깊은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왕자와 공주는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 "저주가 풀린 왕자와 벨은 시골에 집을 짓고 장미로 가득한 정원을 가꾸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술탄이 된 재스민 공주는 왕족끼리만 결혼해야 하는 법을 폐지하고 알라딘과 결혼하여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고 합니다."

동화책을 의심하지 않던 시절, '행복하게 오래오래'는 독자까지 행복해지는 마법의 주문이었다. 경기 파주시의 피노키오 박물관 '피노지움'에서 열리는 '동화 속 거짓말(Fairy tale lies)' 기획전은 관객에게 질문한다.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 그들은 아직 행복할까?' 젊은 현대미술 작가 10명이 전시에 참여해 설치미술·조각·회화 등 다양한 형태로 각자의 동화를 그려낸다.

신데렐라가 드레스 단을 붙잡고 계단을 내려오고 조그마한 팅커벨이 가뿐하게 날아다니는 이용제 작가의 그림엔 비눗방울이 빠지지 않는다. 언젠가 터질 비눗방울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주인공들의 행복했던 순간이 담겨 있다. 주홍 작가의 '사랑, 그 눈물의 씨앗'이라는 작품은 화장대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갈 때 비춰보는 거울이 있어야 할 자리엔 눈물이 흐르는 붉은 눈과 빨간 하트가 새겨져 있다. "내가 선택한 사랑이 아니라 선택당한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 된다"는 설명이다. 환하게 웃는 피노키오가 관객의 시선에 따라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보이는 김민기 작가의 작품은 발길을 잡아 둔다.

'동화 속 거짓말'전은 피노지움에서 9월 27일까지 진행된다. 6월 말까지 표 값은 20% 할인한 8000원. 월·화요일은 휴관, 평일은 방문 2시간 전 전화로 예약해야 한다. 주말·공휴일은 예약 없이 입장 가능. 김정철 피노지움 관장은 "피노키오는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진다. 피노키오의 일차원적 거짓말을 넘어 내가 기억하던 동화엔 어떤 거짓이 있었을까 관객들이 상상해보길 추천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