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에서 변호사로 근무하던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弑害) 소식을 운전하다 듣고 크게 놀랐어요. ‘한국이 이제는 달라지겠구나’는 직감이 들면서 한국 가서 일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이렇게 시작된 한국 생활이 올해로 40년을 꽉 채웠습니다.”
제프리 존스(68)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암참) 이사장은 이달 10일 오후 서울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민주화되는 나라에서 한국이 가진 잠재력이 터질 것이라 생각하며 1980년 김&장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가 됐다”고 말했다.
한국과의 인연은 그가 19세때인 1971년으로 거슬러 간다. 모르몬교(敎) 파송 선교사로 마산에서 1년, 수원과 서울에 6개월씩 모두 2년 살며 한국말을 배우고 전도에 전념했다고 한다. 그는 “50여년 전 인연을 맺은 몇몇 분과는 지금도 연락하고 지낸다”고 했다. 존스 이사장은 인터뷰 내내 유창하면서도 푸근한 한국어로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을 “우리나라”라고 했다.
- 2000년에 낸 책 '나는 한국이 두렵다'에서 문제점들을 지적했는데. "놀라울 정도로 그 때 문제들이 지금 거의 다 해결됐다. 20년 전만해도 한국이 오늘날처럼 잘 되리라곤 상상 못했다. 한 예로 한국은 반도체, TV, 세탁기, 조선, K팝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 1위가 되지 않았나."
-그래도 꼭 고쳤으면 하는 게 있다면? "두 가지다. '(남 잘 되면) 배 아파 하는 문화'와 '눈치 보기'이다. 배 아파하는 문화 때문에 많은 손해가 생긴다. 이제는 연줄, 배경이 아닌 공정한 경쟁과 실력으로 부(富)를 이루는 사람이 많다. 이들의 깨끗한 성공에 박수치는 사회가 돼야 한다. 또 지나치게 눈치를 많이 본다. 타인에게 좀더 너그럽고 개성을 존중했으면 한다."
"DJ, 매월 암참 만나…'기업 사랑 캠페인'지금 또 벌여야"
존스 이사장은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부터 2002년까지 만 4년 넘게 암참 회장을 맡아 한국의 경제 위기 극복에 한몫했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과의 일화를 털어놓았다. "김대중 대통령은 당시 '기업 사랑 캠페인'을 벌였어요. 투자와 고용의 주체이며, 나라에 세금도 가장 많이 내는 기업을 아끼고 키워야 경제 위기를 이겨낼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습니다. '코로나 19' 위기가 앞으로 본격화될테데, 우리나라에서 기업 사랑 캠페인을 지금 또 벌였으면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외국기업들도 중시하지 않았나? "김 대통령은 암참과 한달에 한번씩 만났다. IMF 외환 위기후 암참 산하 조직으로 실직자(失職者) 가정 지원을 위해 '미래의 동반자재단'을 세웠는데, 출범 기념 저녁 행사장에 직접 오셨다. 전엔 없던 일이었다. 그는 대통령 퇴임 1주일 전에 청와대로 우리 부부를 초청해 부부 송별 만찬을 했다. 지금 정부에서도 그런 기업 사랑, 기업 살리기 노력이 좀더 있으면 좋겠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을 만났더니 참 따뜻한 분이더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고 나를 정부 규제개혁위원으로 발탁했다”고 했다. 존스 이사장은 명예직으로 지금 충청북도 명예 도지사와 서울시 명예시민관 등을 맡고 있다.
-다시 20년전이 지났는데 한국이 이젠 어떤가? "나는 아직도 한국이 두렵다. 두가지 이유에서다. 먼저 높은 교육 수준을 갖춘 우리나라 국민들은 참 열정적이고 노력을 쏟는다. 그러니 다른 나라들이 아무리 해도 우리를 따라잡지 못한다. 둘째는 위기 때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더 모범적으로 잘 이겨낸다. IMF 경제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이번 코로나 19 위기에서도 우리 국민 만큼 정책에 잘 협조하며 성공적으로 이겨낸 나라는 없다. 그런 점에서 아직 한국이 두렵다."
"노동·환경·세금 등 규제 너무 복잡하고 비용 많이 들어"
-한국에 대해 '헬조선'이란 비판이 많았다. "1년여전 부터 '헬조선' 얘기가 많이 줄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집값, 교육비, 음식값이 너무 비싸 국민들이 느끼는 부담이 너무 크다. 10~20년 장기적 시각에서 이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위원회라도 만들어야 한다. 만약 못한다면 저출산과 인구 감소로 100~200년 내 우리나라는 존망의 기로에 놓일 수 있다."
-기업인들이 체감하는 규제는 어떤가. "시장 규모와 비교할 때, 우리나라의 규제는 어느 나라 보다 많다. 특히 노동, 환경, 세금, 관세 등과 관련한 규정과 조사가 너무 많고 복잡해 준수(遵守) 비용이 많이 든다. 이런 게 고쳐진다면 다국적 기업들의 불만이 줄어들고 기업하기 더 좋은 곳이 될 것이다."
-요즘 한미(韓美) 관계에 대한 견해는? "한국에 40년 있는 동안 한미 관계는 좋을 때와 힘들 때가 있었지만 지금 같이 어려운 상황은 없었던 것 같다. 미·중 관계가 악화일로의 상황에서 올해 미국 대통령 선거까지 앞두고 있어 그야말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다. 양국 사이에서 우리나라는 그 어느 때보다 전략적이고 균형잡힌 외교 정책이 필요한 때라고 본다. 아울러 지연되고 있는 주한미군 지원금 분담금 문제도 한미 관계 개선을 위해 서둘러 매듭을 지어야 한다."
"삼남(三男)은 주한미국대사관 북한경제 담당관으로 근무"
-중국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까. "중국을 상대로 한국은 경제 이슈만 집중해 대화하고, 협력하자는 메시지를 일관되게 전하라고 권하고 싶다. 중국 지도자들은 실리(實利)를 중시하는 현실주의자들이다. '미국과는 알아서 하겠다. 걱정 말라'고 하면서 한·중 FTA 업그레이드와 양국 경제가 서로 도움되는 방향으로 집중해 노력하면, 중국도 한국을 이해할 걸로 본다."
그가 2000년 초 세워 21년째 이사장으로 있는 '미래의동반자재단'은 암참 회원사들의 기부 성금을 모아 3000여명의 실직(失職)가정 자녀들에게 150억원의 장학금을 지원했다. 존스 이사장은 또 소아암(小兒癌) 환자들이 가족과 함께 머무는 '하우스' 건립 사업을 벌이는 로널드맥도날드하우스재단 한국법인의 이사장을 2015년부터 맡고 있다.
“돈만 전달하는 게 아니라 한달에 2~3번은 어린이 환자들과 어머니들이 같이 있는 방을 찾아가 애로사항을 듣고 반영하려 해요. 기부를 하면 남 보다 나 자신이 더 행복해져요.”
존스 이사장의 자녀 8명 가운데 셋째 아들은 현재 서울의 주한미국대사관에서 북한 경제 담당관으로 일하고 있다. 부자(父子)가 남북한 경제에 직간접으로 관여하고 있는 것이다.
- ‘파란 눈의 한국인’ ‘한국 어린이들의 대부(代父)’ 같은 애칭을 갖고 있는데,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는가? “묘비명에 ‘그는 유용한 사람이었다(He was useful)’는 글귀가 쓰여졌으면 한다. 변호사로서, 아버지로서, 친구로서, 나라 시민으로서 모든 면에서 필요한 사람이었다는 말을 들었으면 한다. 나는 고객이나 친구의 부탁을 받고 해결 못하면 쉬지도 못하는 성격이다. 지금까지 ‘해결사’로 살아왔다. 앞으로도 우리나라에 살면서 각 분야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