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 집에서 신문을 읽는 사람은 나와 아내뿐이다. 학교에 가도 신문 읽는다는 학생은 없다. 세상이 다 디지털과 인터넷으로 바뀌었지만 나는 여전히 신문으로 세상을 보고 수작업으로 만화를 쓰고 그린다.

나는 손과 연필 사이에도 영혼이 있다고 느낀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내 작업 과정은 동일한데, 사인펜으로 스토리를 쓰고 콘티를 잡고 연필로 스케치하고 나무펜대에 날카로운 펜촉을 끼워서 선 작업을 하고 나면, 마지막에야 디지털로 수정하고 편집하고 채색한다. 내 만화 그리기는 이렇게 막노동이다.

내가 만화를 시작한 건 1973년 겨울, 이정민 선생님 문하에서다. 이때 내가 매일 먼저 하는 일은 선배들이 깨기 전에 일어나 그날 화실에서 사용할 먹물을 갈고 한 다스 연필을 깎아놓는 일이었다. 추운 겨울 찬 벼루에 물을 붓고 검은 돌덩이 같은 먹을 갈아 먹물 서너 병을 채운다는 것은 힘들고 지루한 중노동이었다. 선배들 먹물은 선 테크닉을 위한 것이므로 조금 묽어야 하고 내가 쓸 먹물은 명암의 검은 빈 공간을 채워야 하는 먹물이라 진하게 갈아서 반짝반짝 윤이 나야 했다. 먹물 갈기 싫어 만화를 그만두는 친구까지 있을 정도로 지루하고 서러운 시간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언제나 우연으로 가득 차 있다. 라디오만 있던 작업실에 어느 날 조간신문이 들어왔다. 누구의 의지고 누구의 돈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이 조선일보가 배달된 그날부터 새벽의 내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

잉크 냄새 가득한 신문을 펼치고 정치 사회 문화면을 거쳐 마침내 광고까지 읽고 나면 거짓말처럼 아침은 오고 어느새 먹물은 다 갈아져 있었다. 저주스럽던 그 시간은 새로운 세상과 시간을 내게 선물했다. 사실 선배들의 질책과 신경질을 한 공간에서 내내 견뎌내야 하는 작업 시간은 공포 그 자체여서 새벽에 신문을 보며 먹을 가는 시간은 더없이 행복한 나만의 시간이 되었다.

지금도 나는 세 가지 냄새를 좋아한다. 연필 깎을 때 나는 향긋한 향나무 냄새가 그 첫째고, 그다음이 먹을 갈 때 은은히 풍기는 묵향이고, 셋째가 아침 신문을 펼쳤을 때 코끝으로 날아오는 자극적인 인쇄 잉크 냄새다. 고약한 세상살이에 불면으로 다 죽어가다가도 그 잉크 냄새를 맡으면 정신이 번쩍 든다. 아직은 살아 있으라고 달려들어 오는 그 날 선 냄새가 나는 정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