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해군 군수지원함 ‘월리 시라’호가 지난 13일 약 6개월에 걸친 함정 정비를 마치고 출항하고 있다. 한국 조선소에서 미 군함이 최초로 함정 유지·보수 및 정비(MRO)를 받고 떠나는 첫 사례다. 한화오션은 시라호에 이어 작년 11월에 수주한 미 해군 7함대 소속 급유함 ‘유콘’호도 수리 중이다. HD현대중공업 등도 MRO 수주를 준비하고 있어 앞으로 수주 사례는 더 이어질 전망이다. /한화오션 제공
미 해군 군수지원함 ‘월리 시라’호가 지난 13일 약 6개월에 걸친 함정 정비를 마치고 출항하고 있다. 한국 조선소에서 미 군함이 최초로 함정 유지·보수 및 정비(MRO)를 받고 떠나는 첫 사례다. 한화오션은 시라호에 이어 작년 11월에 수주한 미 해군 7함대 소속 급유함 ‘유콘’호도 수리 중이다. HD현대중공업 등도 MRO 수주를 준비하고 있어 앞으로 수주 사례는 더 이어질 전망이다. /한화오션 제공

‘방산 4대 강국’이 정부의 공허한 구호로만 느껴지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 및 유럽의 재무장 등 국제 정세가 요동치고 한국 방위산업 경쟁력은 나날이 높아지면서 수출 규모 기준 미국·프랑스·러시아와 함께하는 ‘방산 4대 강국’ 실현이 성큼 다가왔다는 것이 전문가들 평가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빠르게 진행되는 글로벌 군비 경쟁은 한국 방산에는 최대 호재가 됐다.

2006년 연간 약 2.5억달러 수준에서 출발한 방산 수출은 2022년 약 70배 증가한 무려 173억달러 수준으로 성장했다. 2023년(135억달러)과 2024년(95억달러)에는 다소 정체기가 찾아왔지만 올해는 200억달러를 훌쩍 넘길 것이란 전망이 상반기부터 나오고 있다. 방산업계에 따르면 올해 한국 방산 수출은 240억달러도 기대해 볼 수 있다고 한다. 이 예상대로라면 역사상 최고 방산 수출 기록을 세우게 되는 것이다. 정규평 국방기술진흥연구소 연구원은 논문에서 “방산 수출의 선행 지표인 수주량 기준으로 볼 때 한국 방산 수출은 2022~2023년 전 세계 2위 수준으로 분석됐다”고 했다. 방위사업청은 “2027년 방산 4대 강국 달성도 가능한 상황”이라고 했다.

◇‘바다’로 가는 K방산

한국 방산은 9국에 수출된 대표 효자 상품인 K9 자주포를 포함해 육해공 전방위에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그동안 K9자주포와 K2전차 및 지대공 미사일 ‘천궁II’ 등 육상 무기와 FA50 경공격기 등에 의지했던 한국 방산이 본격적으로 ‘해양’을 정조준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 13일 미 해군 함정 ‘월리 시라(Wally Schirra)’호는 약 6개월간의 유지·보수 및 정비(MRO) 작업을 마치고 경남 거제의 한화오션 조선소에서 출항했다. 한국 조선업이 미군 함정을 국내에서 고쳐 출항시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9월 한국 조선소에 MRO를 위해 입항했고, 6개월간 정비를 받고 ‘새 배’처럼 변신해 이날 다시 작전에 투입된 것이다.

한국 양대 조선소인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지난달에는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향후 수상함 수주전에는 HD현대중공업이, 잠수함 수주전에는 한화오션이 각각 ‘한국 대표’로 참여하기로 했다. ‘코리아 원 팀’을 위한 신사 협정을 맺은 것이다. 현재 ‘캐나다 초계 잠수함 사업’과 사우디아라비아 해군력 증강 사업 등을 통해 최대 100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수출 시장 공략에 나선 것이다. 캐나다 잠수함 사업은 최대 12척의 디젤 배터리 추진 잠수함을 도입하는 사업으로 획득 비용에 유지·보수·정비(MRO)까지 합산하면 사업 규모가 최대 60조원으로 추산된다. 현재 우리 해군이 운용 중인 ‘장보고Ⅲ급’(3000t)이 경쟁력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우디아라비아도 호위함과 잠수함을 도입할 계획이다. 올해 초 한국 정부와 조선 업체 임원으로 구성한 사우디 방문단은 모하메드 빈 압둘라만 알 가리비 해군사령관과 만나 호위함과 잠수함 협력을 통한 사우디 해군력 강화 방안을 구체적으로 협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K방산 대표 상품 ‘K9 자주포’. 현재 한국을 포함해 10국가에서 운용 중이다. 베트남 수출도 임박한 것으로 알려져 향후 K9 자주포 운용국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제공

◇1년 이상 지연된 KDDX 사업 조속한 진행 필요

한국형차기구축함(KDDX)도 손꼽히는 방산 기대주다. KDDX는 우리나라의 향후 우리 해군의 주력 전투함으로 다른 방산 물자보다 상대적으로 비싼 함정이다. KDDX는 선체와 이지스 체계를 모두 국내 기술로 건조하는 첫 국산 이지스 구축함으로, 총 6척을 건조하는데 사업비는 7조8000억원에 달한다. 아직 상세 설계 및 선도함 건설 업체도 정해지지 않았지만 KDDX에 대한 외국 국가들의 구매 의사도 상당한 수준으로 알려졌다. 특히 중동 국가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문제는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의 법적 분쟁과 과열 경쟁으로 사업이 1년 이상 지연되고 있다는 점이다. HD현대중공업은 KDDX 기본 설계를 담당한 자사와 관행대로 수의계약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나, 한화오션은 군사 기밀 관련 사고를 일으킨 HD현대중공업의 전력을 감안해 수의계약이 아닌 경쟁 입찰로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통상 함정사업은 개념설계와 기본 설계, 상세 설계 및 선도함 건조, 후속함 건조 순으로 진행된다. KDDX의 개념 설계는 한화오션이, 기본 설계는 HD현대중공업이 수행했는데 실 함정을 건조하는 ‘상세 설계 및 선도함 건조’ 단계에서 의사 결정이 지연되고 있는 것이다.

방위사업청은 지난 17일 사업분과위원회를 열었지만 기대와 달리 KDDX 상세 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 방식에 대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 방사청은 25일 “27일 열리는 사업분과위원회에서 KDDX 사업 방식을 논의하지 않을 것”이라며 “함정 업계 간 상생 협력 방안을 추가로 보완, 논의한 후에 분과위에 상정할 계획”이라고 했다. 빠르면 오는 4월 KDDX 사업 방식이 결정되며 선도함 건조에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왔지만 계속 지연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싱크탱크 헤리티지 재단의 브렌트 새들러 해상 전투·첨단기술 선임연구원은 최근 “새로운 시장에 투자하는 리스크를 줄이는 차원에서라도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같은 한국의 대형 조선 업체들끼리는 협력하는 게 더욱 합리적일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방산 업계 관계자는 “조선 강국인 한국에서 개발한 KDDX에 대한 수출 관심도 높은만큼 신속하게 사업 방식을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수출 국가 다각화는 과제

방산 수출 성과가 특정 국가·지역에 편중된 것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웨덴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2024 국제무기거래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2020~2024년 한국의 주요 무기 수출 대상국은 폴란드(46%), 필리핀(14%), 인도(7%) 등이었다. 폴란드가 K2전차 및 K9 자주포 등 한국산 무기를 대거 구매한 덕분이지만 폴란드 정부의 정책 변화에 따라 방산 수출 성적이 큰 변화를 맞이할 수 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같은 기간 방산 수출 톱10 국가에서 한 나라 수출 의존도가 50%에 가깝거나 뛰어 넘는 나라는 한국과 중국뿐인 것으로 조사됐다. 중국은 파키스탄 수출 비율이 63%이다.

방산 업계 관계자는 “타 방산 수출 경쟁국은 세계 20~40국 수준의 두꺼운 수요층을 형성하고 있는데, 한국은 이에 비해 특정 국가 의존도가 높다”며 “지대공 대공 무기 체계인 천궁Ⅱ도 중동 지역에만 수출됐고, T-50 계열 항공기 역시 수출 물량 대다수가 동남아에 집중돼 있다”고 했다.

방산 업계에서는 ‘유럽 재무장’을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럽연합(EU)은 최근 8000억유로(1261조원)를 투입하는 유럽 재무장 계획을 발표했는데, 역내 방위산업 육성 차원에서 유럽산 무기 구매 기조가 강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 기회를 공략해 한국 방산 수출국을 늘려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방위사업청은 유럽연합(EU) 재무장이 K방산에 기회이자 위협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EU 재무장으로 유럽 국가들의 국방 지출이 늘어나면서 시장 규모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는 것은 기회 요인이다. 하지만 유럽이 유럽 내 방위산업 역량 회복 및 강화를 위해 ‘유럽산 우선 구매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한다면 우리 방산 기업의 수주는 어려워질 수도 있다. 방위사업청은 “K방산이 유럽 내 지속적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도록 EU 및 NATO 국가들과 협력을 확대하고 합작 법인 및 현지 공장 설립 등 현지화 추진을 통한 호혜적 방산 협력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도 폴란드 방산 업체 WB그룹과 유도탄 현지 생산을 위한 합작 법인(JV) 설립을 검토 중이며, 루마니아에서는 이르면 올해 중으로 K9 자주포 생산 공장을 착공할 계획이다. 현대로템도 폴란드에 K2 전차 생산 시설을 두려고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