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위크는 다음 시즌을 미리 내다보는 통로다. 즉, 이번 1월에 열린 밀라노·파리 남성패션위크는 올가을과 내년 초까지 이어지는 겨울 의상을 선보인다. 쇼 무대 위 ‘바로 그’ 의상이야 출시 기간에 맞춰서 구할 수 있겠지만, 이와 비슷한 스타일의 의상은 없는지 옷장을 뒤져볼 수도 있다. 이러한 일들이 반복된다면 아마 소비자들은 ‘내일의 옷’ 대신에 ‘어제 그 옷’으로 동어반복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더더군다나 요즘 같은 ‘예측 불가’ 시장이 지속된다면 생존 자체를 위협받을지 모른다. 이러한 상황에 살펴볼 수 있는 건 패션계 100년 기업들. 각자 기업 내부의 부침과 전쟁 등 외부적인 요소에도 본질에 충실하고 ‘자신만의 기법’으로 ‘생존’한 이들이다.
대표적인 것이 이탈리아 고급 패션 브랜드 살바토레 페라가모. 굽이 있으면서도 편하게 신는 웨지(wedges)가 바로 페라가모가 1937년 획득한 특허다. 2차 대전 중 경제적 제재로 쇠를 비롯한 원료와 자원이 부족해졌고, 그를 대신이 장심(掌心·손바닥이나 발바닥 한 가운데)에 튼튼한 코르크를 넣어 가벼우면서도 내구성 있는 제품을 선보였다.
그에 앞서 페라가모가 신발의 역사를 바꾼 건 발의 아치(arch·구부러진 부분) 안정성을 위해 고안한 지지대(cambrione)다. 1920년대 페라가모가 특허받은 기술이다. 캄브리오네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완성된 트라메짜 슈즈 역시 페라가모의 상징 중 하나. 신발의 핵심 요소인 ‘트라메짜(Tramezza·사이에 있는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안창과 밑창 사이에 두꺼우면서도 유연한 가죽 층을 이중 스티치(바느질)로 삽입해 신발을 좀 더 견고하면서도 오래 신을 수 있게 한다. 신발 하나 완성하는데 160개 단계를 거친다.
가죽 제품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탄생한 구찌는 1921년 창립 초기부터 이탈리아 장인들의 실력을 내보일 수 있는 고급 가죽 제품으로 포지셔닝했다. 가죽 등 소재 개발을 위해 각종 내구성 테스트를 100년 넘게 꾸준히 거치고 있다. 국내에서도 각종 커뮤니티 후기를 보면 가죽의 질감과 내구성에서 특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패션계에 ‘로고 플레이’(로고를 드러내는 것)가 거의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구찌는 자신의 정체성은 간직하되, 이를 은은하게 살리는 기법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가죽과 로고, 브랜드의 두 가지 핵심 요소를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변화시켜 탄생한 남성용 점보 GG 디자인 가죽 가방은 영국 GQ 등 해외 남성지에서 ‘베스트 제품’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국내에서 이번 설을 앞두고 선보인 블랙 및 그레이-블랙 색상의 크로스바디백과 백팩, 지갑, 카드 케이스 등은 로고를 살리면서도 전체적으로 두드러지지 않게 부드러운 가죽의 장점을 살렸다는 점에서 최근 소비 심리를 잘 반영했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