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독자권익보호위원회(위원장 김도연 태재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가 지난 14일 정례 회의를 열고 지난 한 달 조선일보 지면과 온라인 기사에 대해 토론했다. 김 위원장을 비롯해 김경희(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 김별아(소설가), 김태수(변호사), 박원호(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이성주(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장부승(일본 관서외국어대 교수), 정윤혁(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위원, 조중식 편집국 부국장이 참석했다. 고산(에이팀벤처스 대표), 김재련(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 민세진(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한준(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위원은 따로 의견을 보냈다.
▨ 탄핵
-지난해 12월 3일 계엄 발동 직후와 이후 중간 과정, 지난 4일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이 인용되고 난 후 조선일보의 톤에 변화가 있었다. 계엄에 대해 처음에는 굉장히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다가 중간에 바뀌었다. 헌법재판소에 대한 ‘공격’이 있었고, 기각설과 관련해 ‘5대3’ ‘4대4’ 등 이야기들이 나왔다. 탄핵 인용 이후에는 차분하게 받아들인 것 같다. 조선일보가 탄핵 과정에 열정적으로 ‘참전’했기 때문에 이런 변화에 대해 나름의 설명이나 반성이 있어야 한다. 특히 어느 순간부터는 광장에 끌려다녔다. 조선일보의 무게감에 비해 혼란스러운 보도 행태도 있었다. 재·보선에서 여당이 완패하면서 지지층을 잃고 상황 파악도 하지 못하게 된 데는 정치권의 책임과 별개로 보수 정론지의 오락가락하는 보도도 영향이 있지 않나 싶다.
-4·2 재·보선 결과에 대한 <국힘도 민주도 텃밭 빼앗겼다>(4월 3일 자 A1·4면)는 제목을 보고 황당했다. 이번 선거의 메인 포인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계엄과 탄핵 국면에서 치러진 이번 선거는 자치단체장이 큰 표 차이로 민주당에 넘어가 여당에 대한 심판, 경고 메시지를 주는 선거였다. 내용도 양비론적이다. 기사 도입부터 “더불어민주당이 2일 치러진 전남 담양군수 재선거에서 조국혁신당에 패했다”고 했는데, 이런 내용은 맨 뒤로 가야 했다.
-계엄과 탄핵이라는 한국 정치사의 비극을 만든 윤 전 대통령이 반성이나 사죄 없이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옳지 않다. <尹 “새로운 인생 또 시작”… 사저 정치 시동 거나>(4월 7일 자 A6면)처럼 언론이 마이크를 주고 스피커를 내주는 것은 갈등을 더욱 조장할 뿐이다. 광장에서 극단의 마이크를 잡았던 전한길 강사 인터뷰(A8면)는 헌재 결정에 승복했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겠지만, 전면을 할애할 필요까지 있었을까 싶다.
-<文 정부 말기 ‘알박기’ 29명, 3개 정권 기적의 연명>(4월 9일 자 A10면)은 결과적으로 나타난 상황을 과도하게 알박기 인사들의 문제처럼 보이도록 하는 것은 아닌가 우려된다. 임명권자와 임기를 연동하도록 하는 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기사 끝에서 언급하고 있지만, 이들이 살아남은 것은 윤 전 대통령의 무리한 계엄과 탄핵 때문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는 게 상식적인 생각일 것이다.
▨ 헌재
-<헌법재판관 회의서 월급 3% ‘셀프 인상’>(3월 19일 자 A4면)에서 월급 인상을 결정한 것이 문제인 것처럼 ‘셀프 인상’이라고 제목을 달아 강조했는데 이는 인사혁신처에서 2025년 공무원 보수 인상률을 3%로 발표한 내용에 따른 것으로, 인상 비율이나 회의 방식 모두 문제 될 것이 없어 보인다. 뭐든 꼬투리 잡아 헌재를 깎아내리려는 의도로 쓴 것이 아닌가 싶다. <헌법재판관 이미선 재산 75억, 김복형 7억>(3월 27일 자 A12면)이 이념 성향에서 차이를 보이는 재판관들의 재산 내역을 대비하듯 제목으로 삼은 것도 적절치 않아 보인다.
-<한강 등 문인 414명 ‘尹 탄핵 인용’ 성명서… 96개大 학생 모임은 “탄핵 반대”>(3월 26일 자 A8면)는 ‘탄핵 무효 전국 대학 연합’의 성격이나 정체성에 대한 설명 없이, 이들의 입장만을 단편적으로 전달했다. 제목에서 간략히 소개했지만, 이 조직이 어떻게 결성됐고 구성원들이 어떤 주체를 대표하는지 최소한의 정보조차 없다. 언론이 특정 프레임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끝없는 내리사랑… “자녀 성패는 부모 책임”>(4월 10일 자 A1·12면)은 가뜩이나 저출생 문제가 심각한 한국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보다 부담을 키우는 기사 같다. 청년층이 경제적 자립을 할 때까지 부모가 생계를 지원하는 것을 당연한 것처럼 응답했지만 대부분의 부모는 경제적 지원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장관 인사 청문회 등에서 ‘식민 시대’ 조상의 국적에 대한 소모적 논쟁이 있었는데, <[박종인 기자의 흔적] 조국을 위해서 그들은 중국 국적을 택했다>(3월 15일 자 B5면)에서 당시 조선인의 국적과 민족 정체성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상해 임시정부 요인들이 중국 국적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이유 등을 잘 정리했다. 반일 감정에 기반을 둔 해묵은 논쟁이 종식될 수 있도록 심층 기획 기사로 다뤄주면 좋겠다.
▨ 의정 갈등
-<“내가 알던 제자 맞나… 내 몸 아플 때 맡기기 두려울 정도”>(3월 18일 자 A8면)는 서울대 의대 교수 4명이 발표한 성명문을 소개했다. 급격한 의대 정원 증가로 교육의 질이 급격히 악화한 것은 일차적으로 정부의 잘못된 일방적 정책 탓이지만, 현장에서 교육을 책임지는 이 4명의 교수도 최소한의 미안함 정도는 표시했어야 한다. 교육자로서의 책임감이나 고민이 잘 보이지 않는데, 이에 대해 교수들에게 질문했어야 한다.
-<‘족보’ 관리하는 의대 학생회, 후배들 복귀 가로막는다>(3월 20일 자 A10면)에서 의대 내 ‘족보(기출 문제 및 요약 자료)’가 복귀 학생에 대한 통제 수단으로 악용되고, 의대생 복귀를 저해하는 구조적 장애 요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학내 권력 구조와 교육 환경 현실을 드러낸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족보가 복귀를 막는 핵심 도구라는 것은 다소 과장의 소지가 있다. 교수진의 시험 자료 공개나 교육 행정의 투명성 부족은 없었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도 빠져 있다. ‘족보 센터 설치’라는 정부 대책도 실효성 검토가 부족하다.
-<울주의 두 산… 임도(林道) 있는 산은 하루 만에 진화, 없는 산은 엿새 탔다>(3월 31일 자 A5면)에서 산불 피해를 키운 3가지 원인과 대책을 제시했다. 산불을 안타까운 사고의 하나로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산불 피해를 키운 원인과 대책을 충분히 논의하고, 특히 방화림을 심는다는 일본 사례를 제시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산불이 났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제시한 점도 유익했다.
-<[‘마음의 병’ 편견을 깨자] 국민 절반이 우울감 겪지만 90%가 그냥 참고 넘어간다>(3월 28일 자 A1·12면)는 고용 불안, 경제적 스트레스 등 우울증의 다양한 원인을 언급했는데, 최근 몇 년간 우울감 경험자가 급증한 직접적 요인이나 맥락에 대한 분석이 빠져 있다. 특히 팬데믹 이후의 사회 구조 변화, 조사 방식의 차이 등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탐색이 이뤄지지 않은 점은 아쉽다.
▨ 그리드플레이션
-<혼란 속 슬그머니… 10개 품목은 원료값 떨어졌는데도 가격 올렸다>(3월 15일 자 A5면)는 ‘그리드플레이션(기업 탐욕에 따른 물가 상승)’을 비판했다. 기사의 접근대로라면 기업은 어떤 때에도 가격을 올리지 못한다. 이런 기사는 기업이 시장에서 가격을 통해 경쟁한다는 기본적인 논리를 부정하는 인상을 준다. 조선일보가 자유 시장 경제를 지지하는 입장을 가졌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정치적으로는 자유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데, 자유 시장 경제에 대해서는 모순된 입장을 갖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했으면 한다.
-<50만원 더 받겠다고… 적자만 남긴 현대제철 노사 갈등>(4월 11일 자 B3면)은 제목이 유감이다. 결과적으로 성과급 50만원을 더 받게 된 것인데, 애초에 노조 파업의 목적이 성과급 50만원 더 받으려는 것이었다고 오해할 소지가 있다. 조선일보의 기업 관련 기사는 노사 문제에 대해 일관되게 사 측 입장이고, 가격이나 수수료 인상 같은 이슈에서는 소비자(대부분의 독자) 편을 든다는 느낌이다.
-<45㎞ 송전선 개통에 22년 걸렸다>(4월 3일 자 B1면)에서 보듯 우리 사회가 지닌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님비’다. AI 시대를 대비해 원활한 전력 확보는 국가적 이슈다. 님비 극복은 쉽지 않은데, 우선은 <“8차선 중 4차선만 쓰도록 허용하는 송전망 규정 손봐야”>(3월 20일 자 A5면)에서 언급한 규제를 손보는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듯싶다. 전문가들의 깊이 있는 토론을 다뤄주기 바란다.
▨ 트럼프 관세
-지난 한 달 트럼프 관세 관련 기사가 많았다. 조선일보 기사들도 다소 경주마 보도처럼 뒤쫓아 가는 식이 아니었나 싶었다. 한 발짝 물러서서 판세를 읽어 주고 대안을 모색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에서의 논의는 여전히 기존 한미 관계 중심의 양자적 틀에 갇혀 있다. 트럼프가 한국 공산품에 부과하는 관세가 얼마인지에 일희일비하고, 빨리 워싱턴에 달려가 협상해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조건을 받아내야 한다는 논의가 주류인 것 같다. 반면 일본·싱가포르·독일 언론은 국제 다자 무역 규범이 받게 될 타격에 대한 우려를 다뤘다. 한미 동맹과 미국 시장이 주는 달콤함에만 젖어 있어서는 트럼프 충격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의 구상 자체가 불가능할지 모른다. 앞으로 어떻게 다자 질서를 지켜낼지, 구체적으로 어떤 나라들과 어떻게 협력할지, 우리의 역할과 위상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조선일보가 좀 더 적극적으로 다뤄주길 바란다.
-미국 에너지부의 ‘민감 국가 리스트(SCL)’도 큰 이슈였다. <“민감 국가 지정, 美에너지부 연구소 보안 문제 때문”>(3월 18일 자 A3면), <민감 국가 1주일 소동… 美 대사 대리 “별일 아냐, 보안 문제일 뿐”>(3월 19일 자 A1·8면) 등 다른 언론사보다 탄탄한 취재에 근거해 정확한 정보를 많이 전달했다. 그럼에도 사안의 미묘함이나 복잡성, 정치적·행정적 성격 등을 나눠 설명했더라면 좀 더 나은 기사가 됐을 것이다. 이 문제를 “별것 아닌 문제”라든가 “심각한 문제”라는 식으로 일도양단하긴 어렵다. 한국의 여야 정당들이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해 정치적 유불리만 따지는 것도 한심하다.
-<“미얀마 강진, 원자폭탄 334개 터진 충격 맞먹어”… 1만명 사망설도>(3월 31일 자 A14면)에서 규모 7.7의 미얀마 강진이 원자폭탄 334개가 동시에 터지는 에너지를 지닌 것이라고 소개했다. CNN 보도를 인용했다고 밝혔는데, 일반 독자들이 지진의 파괴력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계산에 들어간 여러 가지 가정을 생략했기에 대단히 비과학적인 기사가 됐다. 지진은 지하에서 폭발하는 탄성에너지이고, 원자폭탄은 지표면에서 폭발하는 열에너지다. 원폭과 지진의 파괴력은 근본적으로 달라서 비교할 수 없는데 그냥 묶어서 얘기했다. /정리=김정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