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 다리 네 개, 새 다리 두 개, 합해서 여섯 개!”

지난달 24일 오후 1시, 영등포 노인종합복지관 5층 강의실에서는 20여명의 어르신들이 ‘손가락 운동’을 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어르신들은 저마다 “두 개, 네 개…”를 외치며 손가락을 바꾸는 데 열중했다. 10주 과정의 ‘스마트폰으로 체험하는 키오스크 교육’에서 수업 전 하는 일종의 ‘두뇌풀기’ 게임이다.

최호권 구청장이 영등포 노인종합복지관에서 한 어르신에 키오스크 이용 방법을 교육하고 있다. 최 구청장은 "AI(인공지능)를 포함해 과학기술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만큼 어르신들도 적응하고 배우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영등포구

교육을 맡은 강진희 강사는 어르신들에게 병원과 카페 키오스크 이용법 등을 가르쳤다. 이어 복지관 1층에 있는 키오스크를 직접 사용해보는 실습도 진행됐다. 수강생 김희경(75)씨는 “키오스크를 이용할 때마다 심장이 떨렸는데, 교육을 여러 번 받으면서 실력이 늘었다”고 만족감을 표했다.

최호권 영등포구청장은 이날 교육을 참관하며 어르신들에게 키오스크 사용법 등을 설명했다. ‘키오스크 교육’은 영등포구가 추진하는 어르신 디지털 격차 해소 정책의 일환이다. 최 구청장은 “어르신들이 경로당에서 차려주는 밥만 먹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배달 주문까지 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디지털 문턱 낮추는 ‘디지털동행플라자’

영등포구 서울디지털동행플라자 서남센터에 마련된 AI바둑 로봇. /영등포구

영등포구는 키오스크 교육 외에도 다양한 디지털 격차 해소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영등포구 대림동에 있는 ‘서울디지털동행플라자 서남센터’는 어르신들에게 ‘디지털 문턱’을 낮춰주는 중요한 공간이다. 서울시가 자치구 대상 공모를 통해 조성한 이 시설은 2023년 12월 문을 연 뒤 약 1년 만에 이용자 수 8만여명을 기록했다. 이중 60대 이상 어르신이 약 80%에 달하며, 재방문율도 70% 수준이다.

어르신들은 이곳에서 스마트폰 기초 사용법부터 키오스크 및 스마트폰 앱 활용법, 디지털 드로잉 등 다양한 교육을 받을 수 있다. AI바둑, 로봇카페, 스크린 파크골프, 해피테이블(스마트 놀이기기) 등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체험 시설도 곳곳에 마련했다.

영등포구는 은평구에 이어 서울에서 두 번째로 서울디지털동행플라자를 유치했다. 여러 자치구가 경합했지만, 최 구청장이 시설 활성화 방안에 대해 제안하는 등 적극적으로 유치를 추진한 결과 선정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지난 2월 5일에는 서울디지털동행플라자 서남센터 1주년을 맞아 ‘성과공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최호권 구청장을 비롯해 김병민 서울시 정무부시장과 시민 등 100여명이 함께했다.

◇‘디지털 실전 밥상’부터 ‘스마트 경로당’까지

영등포구에 조성된 스마트 경로당에서 어르신들이 스마트 보행기기를 활용해 운동을 하고 있다. /영등포구

일상 속에서 디지털 기기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돕는 정책들도 눈에 띈다. 먼저 ‘디지털 실전 밥상’은 경로당에서 기초 디지털 교육을 받은 어르신들이 인근 식당에서 키오스크로 주문·결제를 직접 해보는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패스트푸드점에서 교육을 받은 한 어르신은 “햄버거를 먹고 싶어도 키오스크만 보면 겁이 나서 사 먹을 엄두가 안 났는데, 이제는 어렵지 않다”고 했다. 올해는 130여개 사립 경로당을 돌며 모바일 음식 배달, 택시 호출, 중고마켓 이용, 기차 예매, 은행 업무 등 실생활에 필요한 교육을 진행한다.

영등포구는 사물인터넷(IoT)과 정보통신기술(ICT)이 적용된 ‘스마트 경로당’도 10개소 조성했다. 공기 센서, 디지털 도어락, 로봇청소기 등을 들여 청결·편의성을 높였으며, 학습·인지훈련 콘텐츠를 제공하는 스마트 테이블과 실내운동·게임이 가능한 스마트 보행기기도 마련했다. 키오스크 및 스마트폰 등 디지털 활용 교육도 열린다.

독거 어르신을 위한 돌봄 서비스에도 디지털 기술을 적용했다. 300명의 독거 어르신에게 보급된 AI 스피커는 ‘약 먹을 시간’ 등을 알려줄 뿐 아니라 말벗 역할까지 한다. 위급 상황이나 우울·부정적인 단어가 감지되면 담당 기관에 즉시 알리는 기능도 탑재했다. 아울러 AI가 주 1회 안부 전화를 해주는 ‘AI 영심이’ 서비스도 도입했다.

◇‘디지털 동행’ 선도하는 자치구로

어르신들의 디지털 활용 능력을 향상시킨 영등포구의 성과는 대외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지난해에는 ‘국민행복 정보통신(IT) 경진대회’ 장년층 부문에서 영등포구민이 대상과 금상을 수상했다. 금상 수상자 고정희(58)씨는 “구청의 적극적인 지원 덕분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영등포구는 2015년부터 현재까지 매년 수상자를 배출하며 ‘디지털 동행’을 선도하는 자치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최 구청장은 “인공지능과 과학기술이 구민 일상 속으로 깊게 스며드는 디지털 시대에 디지털 활용 능력은 남녀노소 모두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