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 후 기분 좋은 편안함을 느꼈던 날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예전에는 거뜬했던 식사 한 끼가 점점 무겁게 느껴지고, 더부룩함이 오랫동안 남는다. 먹는 양도 예전만 못하고, 식후 잠이 쏟아진다. 잘 먹었으니 힘이 불끈 솟아야 하는데, 병든 닭마냥 축 처지고 피로가 몰려온다. 우리의 신체가 움직이는 힘은 섭취한 음식물에서 나오는데, 양이 줄어드니 몸의 힘도 떨어진다. 식후의 편안함을 원한다면 고대 곡물 ‘파로’에 주목해 보자.
떠오르는 고대 곡물 ‘파로’ 로마군 힘의 원천
파로는 대표적인 고대 곡물이다. 현대 곡물은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유전자 변형이나 교배가 잦은 반면, 고대 곡물은 유전자 변형이 이뤄지지 않아 고유의 영양 성분을 온전히 가지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주목해야 할 10대 고대 작물’에 파로를 선정한 바 있다. 파로 관련 학술 자료는 약 2만 5000개가 넘으며 SCI급 논문은 100여 건에 이른다.
고대 유럽을 휩쓸던 로마군의 에너지원은 다름 아닌 파로였다. 당시 로마시대 군인은 주로 걸어서 이동하는 보병으로, 먼 길을 빠른 시간 안에 이동하고 치열한 전쟁까지 해야 하니 에너지가 풍부한 식품이 절실했다. 로마 정부는 파로를 군대의 주식으로 보급했다. 포만감은 가득하고 영양은 풍부했기 때문이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로마 군대의 힘은 파로에서 시작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소화와 영양소 흡수 방해하는 피트산 적어 속 편안해
파로는 저당·저탄수화물이자 고단백·고식이섬유 곡물로 유명하다. 이 외에도 60여종의 다양한 영양소가 풍부하게 함유돼 있어 몸 곳곳에서 도움 된다. 필수 아미노산 10종을 비롯해 비타민 10종, 무기질 9종도 담겨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피트산의 함량이 적다는 것이다. 피트산은 각종 영양소의 흡수를 방해하고 영양 결핍을 유발하는 성분인데, 파로 100g에는 피트산이 0.02mg 함유돼 있다. 이는 우리가 주식으로 섭취하는 백미(191.7mg)나 흑미(973.3mg)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치다. 나이가 들면서 소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영양소 흡수가 어려운 것 같다면, 피트산이 낮은 곡물을 섭취하는 것이 좋다.
카무트보다 낮은 당수치, 저항성 전분도 많아
식후 자꾸만 속이 불편하고 몸이 무거운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치솟는 혈당 수치와 관련이 깊다. 파로는 당수치가 낮다. 저당 곡물로 알려진 카무트의 3분의 1 수준으로, 식후 혈당이 급상승하는 혈당 스파이크를 예방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한 연구에 따르면, 6주 동안 당뇨병 환자 식단에 파로 가루를 첨가했더니 공복 혈당이 낮아지고, 중성지방과 LDL 콜레스테롤이 11%씩 감소했다(Journal of Food Science, 2017). 또한 파로는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저항성 전분은 많다. 저항성 전분은 혈당 조절의 핵심 키워드다. 전분은 소화효소에 의해 포도당으로 전환되면서 혈당을 급상승시키지만, 저항성 전분은 소화효소에 저항해 포도당으로 전환되지 않고 장까지 도달해 혈당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또한 저항성 전분이 소장을 지나 대장까지 분해되지 않고 내려가면서 수분을 만나 흡착력이 강해져 장에 남아 있는 지방과 독소를 붙잡아 함께 배출한다.
발효하면 소화돕는 식이섬유 활성화
곡물을 섭취할 때는 발효를 거치는 것이 효과적이다. 파로는 밀의 일종으로, 발효한 파로는 영양 성분은 그대로 남고, 일부 영양소의 함량이나 기능은 상승한다. 특히 소화에 도움을 주는 대표적인 식이섬유인 아라비노자일란의 생물학적 활성이 2.7 배가량 향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라비노자일란은 소화효소의 활성도를 증가시키고 장내 소화 효율을 높이며 영양소의 흡수를 돕는다. 특히 탄수화물 분해를 돕는 데 효과적이라 밥과 면을 주식으로 삼는 한국인에게 잘 맞다.
정부의 철저한 관리하에 재배
파로는 재배부터 수확까지 이탈리아 농림부(CREA)의 재배 가이드에 따라 엄격하게 관리된다. 파로는 화학 살충제나 제초제, 비료 사용을 금지하고 윤작법으로 재배한다. 윤작법이란 한 해 동안 파로를 재배하고, 이어지는 해에는 땅에 영양분을 공급해 주는 작물을 재배한 뒤 다음 해에 다시 파로를 심는 방식이다. 즉, 땅에 휴지기 및 영양 공급기를 가지는 방법이다. 또한 기준에 맞는 종자 선별 후 사용하며, 모든 단계를 농학 박사가 직접 확인한다. 수확 전 품질 테스트가 진행되는데, 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것은 탈락시킨다. 정부의 까다로운 최종 품질 검사를 통과한 뒤 비로소 소비자에게 전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