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큰 부상을 극복한 이승헌은 올해 잠재력을 터뜨릴 것으로 큰 기대를 모은다. / 롯데 자이언츠

최고 구속 150km를 넘나드는 강속구로 상대 타자를 윽박지르는 키 196cm의 우완 정통파 투수. 야구팬이라면 말만 들어도 설레는 선수 프로필이다. 롯데 팬들은 이승헌(23)을 보며 그런 감정을 느낀다. 작년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그는 올해 이른바 ‘포텐’을 터뜨릴 수 있을까.

“어느덧 프로 4년차가 됐어요. 몸을 착실히 만들고 있습니다. 일단 올해는 안 아픈 게 1번입니다.”

◇ “그 일 덕분에 많이 알려졌어요”

이승헌은 지난 시즌 오랜 시간을 병원에서 보냈다. 투수들에게 흔히 찾아오는 팔꿈치나 어깨 부상 때문이 아니었다. 생애 두 번째이자 지난 시즌 첫 선발 등판이었던 5월 21일 한화전에서 정진호가 친 공에 머리를 맞고 병원으로 후송됐다. 두개골 골절과 뇌출혈 진단을 받은 그는 다행히 후유증 없이 9월 20일 NC전 선발로 그라운드에 돌아왔다.

“머리에 공을 맞은 뒤엔 마운드에 다시 올라가고 싶다는 생각밖에는 없었어요. 다시 공을 던질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죠. 그래도 이것 때문에 많은 분이 알아봐 주시게 됐어요. 그 점은 좋더라고요.”

이승헌은 스스로 자신을 “원래 생각을 많이 하지 않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잘 잊어버리는 성격이 부상 극복에 큰 도움이 됐다. 그래도 머리 보호 장비는 계속해서 쓸 생각이라고 했다. “그래야 마음이 좀 나을 것 같다”는 얘기에 부상의 아픔이 전해졌다.

이승헌은 복귀 이후 들쭉날쭉한 피칭을 선보였다. 스스로 가장 잘 던졌다고 생각하는 경기는 삼성 에이스 뷰캐넌과 맞붙은 10월 10일 경기다. 이승헌이 7이닝 무실점으로 프로 데뷔 후 최고 활약을 펼치며 6이닝 1실점의 뷰캐넌에게 판정승을 거뒀다.

“제가 좋아하는 (김)원중이 형이 1-0 리드를 지켜주는 세이브까지 거뒀잖아요. 완벽한 경기였습니다.”

이승헌은 지난 시즌 마지막 등판이었던 NC전에선 1.2이닝 4실점으로 무너졌다. “선발로 복귀하고 로테이션을 본격적으로 돌다 보니 이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더라고요. 올해는 풀타임 선발로 뛸 수 있도록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습니다.”

◇ 냉면 그릇에 밥 먹으며 키를 키웠다

이승헌은 경남 마산(현재는 창원시로 통합)이 고향이다. 당시 롯데의 제 2홈구장이었던 마산 구장에 드나들며 자연스럽게 ‘롯린이(롯데+어린이)’로 성장했다. 중학 시절엔 작고 말랐던 그는 마산 용마고 입학 당시만 해도 176cm였던 키가 2년 사이에 190cm를 훌쩍 넘기게 됐다.

“키 크려고 점심 저녁으로 냉면 그릇 정도의 큰 그릇에 밥을 가득 채워 담아 매일 먹었어요. 하루도 빠짐 없이요.”

부모님의 큰 키(아버지 184cm, 어머니 167cm)에 각고의 노력이 더해져 지금의 피지컬이 완성됐다. 2018 드래프트 2차 1라운드 전체 3순위로 롯데에 입단했다.

2019시즌엔 딱 한 번 1군 마운드에 올랐다. 프로 데뷔전이었던 KIA전에서 선발로 나와 2이닝 7실점으로 프로의 높은 벽을 실감하고 2군으로 내려갔다.

그에겐 2020시즌 스프링캠프가 전환점이 됐다. 롯데는 호주 애들레이드에서 스프링캠프를 진행했는데 이승헌을 비롯한 투수 4명만 미국 시애틀로 건너가 드라이브라인 캠프에 참가했다. 드라이브라인 캠프는 첨단 장비가 갖춰진 훈련 시설이다.

“그곳에서 여러 무게의 공을 던지는 등 다양한 훈련을 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구속이 오르더라고요. 2019시즌엔 기껏해야 145km였는데 거기서 92마일(148km)이 찍히는 걸 보고 놀랐어요. 미국 스피드건이 후한가 했는데 한국에 와서도 그렇더라고요.”

직구와 체인지업이라는 주무기를 가진 이승헌은 올 시즌 슬라이더와 커브를 가다듬어 다양한 구종을 가진 진정한 선발 투수로 자리 잡길 바라고 있다. 우투수이지만, 좌타자 상대 피안타율이 0.232로 우타자(0.247)보다 좋다. 좌타자 바깥쪽으로 달아나는 체인지업의 위력 덕분이다.

이승헌은 “이닝당 투구 수가 많은 편”이라며 “제구력이 좋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올해 롯데 팬들은 196cm 키의 강속구 투수 이승헌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 롯데 자이언츠

◇ “롯데 팬들의 꿈을 이뤄주고 싶다”

이승헌은 1998년생이다. 롯데의 마지막 우승은 이승헌이 태어나기 6년 전인 1992년, 마지막 한국시리즈는 이승헌이 한 살 때인 1999년이다.

“롯데 팬들의 우승에 대한 갈망은 저도 잘 알고 있어요. 저 역시 롯데 우승을 바라며 성장했지만, 결국 지금까지 못 봤잖아요. 용마고 시절에도 전국 대회에서 준우승만 두 번 했는데 살면서 우승 한 번 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승헌은 오다가다 사직구장 앞 최동원 동상에 눈이 자주 멈춘다고 했다. “최동원 선배님 영상은 찾아봤어요. 한국시리즈에서 혼자 4승이라니 믿을 수가 없어요. 팬들의 로망을 이뤄준 분이라고 할까요? 저도 그런 투수가 되고 싶어요. KBO에서 선발 투수로 탑이 되어보고 싶습니다.”

그는 훗날 어떤 투수로 기억되고 싶을까. “롯데 팬들이 ‘승헌이 점마가 나오면 안심이 되네. 편안하게 본다’ 이렇게 말하는 투수가 되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코로나가 물러나고 언젠가 팬들이 사직구장을 꽉 채우는 날이 오면 멋지게 한 번 던져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