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신의 투구, 100점을 줘도 모자람이 없는 피칭이었다. KT 위즈 ‘5선발’ 엄상백이 데뷔 이래 최고의 투구를 펼치고도 승리를 따내지 못했다.
엄상백은 1일 수원 케이티 위즈파크에서 열린 2022 신한은행 SOL KBO리그 LG 트윈스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 7이닝동안 100구를 던지며 3피안타 2사사구 13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엄상백은 7회말 황재균의 솔로홈런으로 1-0으로 앞선 상황에서 승리투수 요건을 갖추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KT가 1-0으로 이기고, 엄상백이 승리투수가 됐다면 최상의 시나리오가 됐겠지만, 마지막 '점'하나가 부족했다. 9회 등판한 마무리 김재윤이 9회 2아웃까지 잡은 상황에서 문성주에게 동점타를 허용하면서 엄상백의 승리가 날아갔다.
하지만 이날 엄상백의 투구가 완벽했다는 것에 토를 달 수는 없었다.
순위 다툼을 벌이는 2위 LG와의 맞대결, 팀 타율 1위, 팀 홈런 2위에 빛나는 LG의 강타선, 다승 1위의 에이스 케이시 켈리와의 선발 맞대결까지. 결코 녹록하지 않은 조건이었음에도 그는 전혀 주눅들지 않았다. 시속 150㎞에 육박하는 묵직한 공을 중심으로 체인지업과 슬라이더를 곁들이며 많은 삼진을 솎아냈다.
첫 이닝부터 심상치 않았다. 엄상백은 홍창기, 박해민, 김현수로 이어지는 LG 상위 타선을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단 13구를 던지면서 삼진 3개를 뽑아냈다.
2회에는 1사 후 오지환에게 2루타를 맞으면서 단숨에 득점권 위기를 맞았지만 문보경을 3구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로벨 가르시아에겐 잘 맞은 타구를 허용했지만 1루수 박병호의 호수비로 위기를 넘겼다.
3회도 삼진 행진이 계속됐다. 문성주를 1루 땅볼로 잡은 엄상백은 유강남을 3구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2사 후 홍창기를 몸 맞는 공으로 내보냈지만 박해민을 풀카운트 끝에 삼진으로 잡았다.
4회엔 선두 타자 김현수를 삼진으로 잡은 뒤 채은성에게 좌중간 펜스를 직격 당하는 3루타를 맞으며 실점 위기를 맞았는데, 엄상백은 또 다시 삼진으로 고비를 넘었다. 오지환에게 3볼 1스트라이크까지 몰렸지만 150㎞ 직구로 스트라이크를 잡은 뒤 다시 직구를 던져 헛스윙을 유도했다. 문보경은 내야 뜬공으로 처리하면서 무실점 행진이 이어졌다.
엄상백은 5회에도 가르시아와 유강남에게 삼진을 뽑아내며 일찌감치 10개의 탈삼진을 채웠다.
6회에는 홍창기와 박해민을 뜬공으로 허용한 뒤 김현수에게 9구 접전 끝에 볼넷을 내줬다. 하지만 앞선 타석에서 3루타를 맞았던 채은성을 삼진으로 잡아냈다.
타선이 상대 투수 켈리에게 막혀 0-0의 균형이 계속됐지만 엄상백은 흔들림이 없었다. 7회에도 마운드에 오른 그는 오지환을 삼진으로 잡은 뒤 문보경에게 2루타를 맞았다.
이강철 감독이 이날 경기 처음으로 마운드를 방문하며 엄상백을 격려했고, 그는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가르시아를 상대로 이날 경기 13번째 탈삼진을 잡아낸 엄상백은 문성주를 유격수 땅볼로 처리하며 이닝을 마무리했다. 7회를 마쳤을 때 던진 공을 정확히 100개. 이날 엄상백의 피칭이 '100점 짜리'였음을 의미하는 듯한 투구수였다.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지 못한 탓에 짙은 아쉬움이 남았지만, 이날 엄상백의 피칭은 그가 더이상 불펜과 선발을 오가는 ‘마당쇠’가 아닌 KT의 확고한 선발투수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있음을 보여준 경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