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B조 1라운드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기, 4대13 대패를 당한 대표팀 선수들이 관중석에 인사 후 그라운드를 빠져나가고 있다. 2023.3.10/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매년 KBO리그 프리에이전트((FA) 시장이 열릴 때면 ‘100억대’ 몸값을 호가하는 ‘최대어’들의 계약 소식이 줄을 잇는다. 당장 지난해 오프시즌에는 역대 최대인 총액 989억원을 기록했고, 이번 오프시즌도 794억원으로 그 못지 않았다. 양의지는 역대 최고액(4+2년 152억원), 박민우는 최장 계약(5+3년 140억원)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올라가는 몸값과는 다르게 국제대회에서의 성적은 좀처럼 만족스럽지 않다. 한때 올림픽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등 큰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내며 세계를 호령했던 한국야구가 어느 순간 '우물 안 개구리'로 전락해버렸다는 비판이 나온다.

'야구 월드컵'이라 여겨지는 WBC에서의 성적만 봐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한국은 초대 대회인 2006년, 박찬호와 봉중근, 김선우, 최희섭 등 현역 빅리거 7명을 내세운 '드림팀'을 꾸려 4강 신화를 일궜다.

이후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로 야구 인기에 불을 지핀 한국은 2009년 WBC에선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 대회에선 당시 클리블랜드에서 뛰던 추신수가 유일한 빅리거였고 일본에서 뛰던 임창용까지 '해외파'가 둘 뿐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KBO리거들로 채웠지만 한국은 2006년보다 더 높은 결승까지 올라가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2013년과 2017년 네덜란드, 이스라엘 등에 덜미를 잡히며 1라운드 탈락의 쓴 맛을 본 한국은 6년만에 재개된 이번 WBC에서 설욕을 별렀다.

하지만 야심차게 목표로 잡은 '4강'은 신기루였고 세계야구와의 수준 차이만 재확인 했을 뿐이었다.

10일 오후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B조 1라운드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기, 대표팀 정현욱 투수코치가 6회말 무사 만루 상황에서 일본 대표팀 곤도 켄스케에게 밀어내기 볼넷을 허용한 김윤식을 다독이고 있다. 2023.3.10/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한국은 '세미프로' 수준으로 여겨지던 호주에 7-8로 패한 데 이어 일본전에서는 라이벌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끌려다닌 끝에 4-13으로 대패했다. 아직 1라운드 2경기가 더 남아있지만 다 잡는다고 해도 상위 2팀까지 오를 수 있는 2라운드행은 희박하다. 현재까지 보여준 경기력으론 체코, 중국은 잡을 수 있을 지도 의문이다.

정신력, 투지, 근성 등 경기 외적인 부분이 문제라는 말도 들린다. 하지만 그보다는 명백한 실력 차이였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한 진단이다. 설령 정신력과 투지가 약해진 것이 사실이라고 한들, 기본 실력이 받쳐주지 않는 상황에서는 큰 힘을 받기 어렵다.

마운드에 오르는 투수들은 스트라이크 하나를 제대로 꽂지 못하고, 타순 한 바퀴만 돌면 여지없이 수를 읽혀 맞아나간다. 시속 150㎞를 훌쩍 넘어 160㎞대의 '강속구'를 던지는 일본 투수들과 다르게 150㎞만 찍어도 '귀한 몸' 대접을 받는 KBO리그의 현실이다.

타자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 보는 투수들에게 적응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조금만 빠른 공을 던져도 여지없이 방망이를 헛돌린다. 한국은 호주전에서는 첫 13타자가 출루하지 못했고, 일본전에선 마지막 11타자가 삼진, 범타로 물러났다. 활로를 틔우고 분위기를 끌어올릴 선수가 한국에는 없었다.

정체 혹은 퇴보된 기량은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닌지 돌아봐야한다. 박찬호가 빅리그에서 큰 성공을 거둔 이후, 한동안 고교 유망주들이 미국 야구에 도전하는 것이 하나의 흐름이었던 적이 있다.

10일 오후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B조 1라운드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기, 이강철 대표팀 감독(왼쪽부터), 진갑용 코치, 정현욱 코치가 더그아웃에서 굳은 표정으로 8회초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2023.3.10/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하지만 최근에는 '초고교급 선수'들도 곧장 미국에 도전하기보다는 KBO리그를 거치는 쪽을 선호한다. 마이너리그에서 어려운 시절을 보내야하는데다 성공을 담보하기 어렵기에 쉬운 길을 택하는 모양새다. 더구나 KBO리그에서만 성공해도 FA 등을 통해 '돈방석'에 앉을 수도 있고 아주 잘 풀리면 해외리그에도 도전할 수 있다. 소 꼬리 대신 닭 벼슬을 택하는 셈이다.

이번 대회에서 또 다시 '참사'를 빚었지만 얼마 후 개막하는 KBO리그에선 다시 많은 팬들이 야구장을 찾을 터다. 최근 몇 년간 국제무대에서의 부진과 개인 일탈 등 여러 요인이 겹쳤음에도 야구팬들은 변함없는 성원을 보내고 있다. 선수들의 높은 몸값을 뒷받침하는 힘이다.

선수들도 이에 보답하기 위한 길을 모색해야한다. ‘야구로 보답’하는 가장 확실한 길은, 기량을 갈고 닦아 수준 높은 야구를 보여주는 것이다. KBO리그의 최고 선수도, 세계 수준으로 보면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