ㅅ수프로야구 SSG 랜더스 우완투수 노경은은 내년이면 마흔 한 살이다. 대부분 그라운드를 내려와 제2의 인생을 준비할 나이. 하지만 그에게 ‘은퇴’는 아직 먼 얘기다. 노경은은 올해 8승5패 38홀드, 평균자책점 2.90으로 마운드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면서 역대 최고령 홀드왕이 됐다. 시즌이 끝나고 FA자격을 얻어 SSG와 총액 25억원, 2+1년 계약서에 사인했다. 노경은은 지난 26일 KBO리그 정규시즌 시상식에서 생애 최초 타이틀 상을 받은 다음날, 전국을 휩쓴 폭설에도 어김 없이 인천 랜더스필드 클럽하우스를 찾아 몸을 만들었다.
-’22년 만에 처음’이라는 소감 처럼 상 받는 기분이 어땠나.
“내가 프로에 데뷔할 때 태어난 김도영이 MVP상을 받았다. 어린 선수가 큰 상 받는거 보니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되더라. 그래도 좋게 보면 22년만이라도 상 받았으니 대단한 거 아닌가. 상 받으러 단상 올라갔는데 바로 정면에 아버지가 앉아 계셨다. ‘이제서야 인사드리네요’라고 말하는 순간 갑자기 울컥 했다.”
-마흔인데 FA계약을 맺었고, 조건도 나쁘지 않다.
“FA계약이 내겐 두 번째지만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나 마찬가지다. 롯데와 첫 FA계약은 선수생활의 연장에 초점을 뒀다. 당시 1년을 통째로 쉬었기 때문에 야구를 다시 하는 게 중요했다. 이번에는 내가 2년 동안 놀지 않고 옵션을 달성하면 3년째가 자동 보장된다. 많이 배려해 준 구단에 감사한다.”
-이미 주변에서 은퇴했느냐는 소리를 많이 들었을 것 같다.
“가끔 가던 옷 가네나 식당 오랜만에 찾으면 맨 먼저 ‘이제 뭐 해요? 은퇴하셨죠?”라고 묻는다. 아직 뛴다고 하면 깜짝 놀라신다. 그냥 아 정말 야구 잘 안 보시는 분이구나 라고 생각하고 만다. 그런데 난 마흔 다섯까지 던지는 게 목표다.”
-고교땐 메이저리그도 탐내는 유망주였다.
“성남고 시절 메이저리그에 도전해 보겠다는 꿈도 있었다. 그런데 일이 잘 안 풀렸다. 두산에 입단해서도 몇 년간 활약하지 못하고 1,2군을 오가며 자리를 못 잡았다. 차라리 그때 곧바로 미국에 갔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영어도 배우고 더 많은 경험을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송)승준이 형처럼 국내에서 더 좋은 활약을 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은퇴 얘기가 몇 차례 나왔는데.
“두산에선 1,2군을 오가는 생활을 오래 했다. 중·고 때 다른 학교까지 소문이 날 정도로 체력 훈련을 열심히 했는데, 프로 입단 후 외부 유혹을 이겨내지 못했다. 운동을 게을리하니 열정도 없어졌다. 김진욱 감독, 정명원·조계현 당시 코치님을 만나고 나서야 야구에 눈뜨게 됐다. 조 코치님에게 정신력, 자신감 등 멘털적인 부분을, 정 코치님에겐 포크볼을 배웠다.(조계현 코치는 KBO 전력강화위원장 신분으로 26일 노경은에게 홀드왕 상을 직접 시상했다.) 그리고 2012,2013년 연속 두자릿수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2015년 성적이 좋지 않았고, 수술 시기를 놓고 구단과 의견이 맞지 않아 야구를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지금 지나보면 좋은 추억이고 경험이다. 당시 관계자와 지금은 엄청 친하게 지낸다.”
-은퇴 대신 트레이드로 이적한 롯데에서도 마지막이 순탄치 않았다.
“롯데에선 선발·중간 안 가리고 열심히 던지면서 FA 자격을 얻었는데 협상이 결렬됐다. 23억 계약이었는데 보장금액이 적었다. 어쨌든 돈을 많이 모아두지 못한 나로선 구단 조건을 모두 받아들였야 하는 입장이었다. 세 번 양보하고 하나만 들어달라고 했는데 구단이 그 자존심을 지켜주지 않았다. 돈만 생각했다면 내가 거절할 수 없는 계약이었는데 팬들은 나를 돈 욕심 부린다고 했다. 결국 1년 공백이 생겼는데, 은퇴 위기 속에 투구 감각 잃지 않으려고 동의대에서 혼자 훈련했다. 풀타임 선발 뛴다고 생각하고 5일 간격으로 100개씩 던지며 1년을 버텼다. 1년 후 롯데에 복귀했는데 그때는 내가 너무 못 했다. 그리고 팀이 젊은 선수들 육성 기조로 바뀌면서 내가 생각하는 방향과 다르게 갔다. 시즌 후 결국 방출됐다.”
-세 번째 팀 SSG에서 불펜투수로 전성기다. 비결이 있다면
“롯데 마지막 시즌때 2군에서 직구 스피드를 끌어 올리는데 초점을 맞췄다. 상대팀이 회춘했냐고 할 정도였다. 롯데에서 방출당하고 맨 먼저 SSG 로부터 연락이 왔다. 김원형 전 감독님이 날 잘 봐주셨다. 그리고 야구인생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꽃피우고 있다. 롯데시절부터 체력관리를 신경쓰고 있는데 SSG에 오면서 더 철저히 하게 있는게 효과를 보는 것 같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원래 중고교 때 다른 학교에 소문이 날 정도로 체력 훈련을 열심히 했다. 지금 수퍼스타가 된 오타니의 만다라트 계획표 정도는 아니지만, 내가 해야할 운동과 운동량을 노트에 적어넣고 매일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프로에 입단하고 성인이 되다 보니 운동을 게을리 하게 됐다. 그러면서 열정을 잃었다. 그게 아직도 후회스러워 후배들에게 ‘아마추어 시절 운동량 5분의2만 해도 성공할 거다’라고 틈만 나면 말한다.”
-몸을 만드는 자신만의 루틴이 있다고 들었다
“체력 운동을 하는 날과 안 하는 날을 정해 놓고 철저히 지켰다. 운동해야 하는 날이면, 지방 원정 갔다가 새벽에 홈구장 들어와서도 운동을 한 다음에야 집에 간다. 그렇게 하고 집에서 자고 나오면 몸이 가볍다. 공을 던진 날엔 유산소와 간단한 보강운동만 하고 다음 경기를 준비했고, 연투한 날에는 유산소로 땀 뺀 뒤 상체 웨이트만 가볍게 했다. 그 밖에 여러 루틴을 지키는데, 상황에 따른 새로운 시도를 해본 다음 그게 맞으면 루틴에 추가한다. 물론 나만의 영업비밀로 숨기지 않고, 후배들에게 내 경험을 그대로 얘기해 준다. 식단도 채식 위주에 단백질을 적절히 섭취한다. 과거엔 육식으로 벌크업 한 적도 있었다. 몸은 우람해졌는데 공 스피드가 140㎞가 안 나와 곧바로 접었다. 채식은 롯데 시절 시작했는데 지구력이 좋아지고 오히려 몸이 더 좋아졌다.”
-지금까지 아쉬웠던 순간, 힘들었던 순간이 있다면.
“두산에서 2년 연속 10승했을 때가 나의 짧았던 전성기다. 그때 나는 100개가 아니라 115개, 120개까지 던져도 어깨가 하나도 안 아팠다. 돌아가고 싶은 때가 있다면 그때다. 지금처럼 몸 관리를 했더라면 선발투수로 롱런하지 않았을까. 힘들었던 순간은 2015년이었다. 전지훈련때 턱이 부러졌다. 재활해서 좀 나을만 하니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원래 술을 잘 못 마셨는데, 매일 맥주 한 캔이라도 마시지 않으면 잠이 안 올 정도로 힘들었다.”
-제일 기뻤던 순간,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나?
“SSG에서 시즌 처음부터 한국시리즈까지 1위를 내주지 않은 와이어투와이어(wire-to-wire)우승을 했을 때다. 롯데에서 방출을 당하고 팀을 옮겨서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 동안 내가 많은 역할을 했기 때문에 두산에서 첫 우승을 했을 때보다 더욱 각별했다. 우승한 다음 이것 때문에 야구를 그만두지 못했었나 하는 생각이 그때 들었다.”
-앞으로 더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목표는 멀리, 높게 잡아야 동기부여가 된다. 일단 나이로는 마흔 다섯. 올 시즌 마지막 경기 구속이 시속 149㎞가 나왔다. 3년 후 145㎞가 찍히면 2년 더 도전해볼 것이다. 지금 600경기나 100홀드 100승이 다 눈에 보이는 목표다. 내가 컨디션만 잘 유지하고 운이 따라주면 3년안에 이룰 수 있다. 그래서 아직은 멀어 보이는 700경기 출장을 목표로 삼고 싶다.”
-은퇴 후 계획은?
“일단 내가 힘이 있을 때까지 선수생활을 하고, 개인적으로 여기까지다고 생각할 때 미련 없이 옷을 벗겠다. 그리고 코치 연수를 할 계획이다. 코치가 되면 내가 프로생활을 하면서 터득한 노하우와 경험을 아낌 없이 모두 다 선수들에게 전수해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