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구단들도 판판이 겪는 일이다. 지금도 속앓이하는 구단이 많다.”

올해 새로 개장하는 프로야구 한화 홈구장을 둔 대전시의 황당한 행보에 야구계가 공분하고 있다. 최근 대전시는 한화에 “새로 사용하게 될 신축 구장 이름을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로 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그런데 한화는 이미 새 구장 이름을 ‘한화생명 볼 파크’로 정하고 외부에도 알린 상태다.

신축 구장은 대전시가 예산을 들여 지은 대전시 소유 건물이다. 사업비는 2074억원. 국비 150억원에 대전시 1438억원, 한화가 486억원을 보탰다. 프로야구 구장들은 전부 연고지 지방자치단체 소유다. 구단들이 임대료를 내고 빌려 쓰는 구조. 하지만 요즘 신축 구장은 건축 과정에서 구단들도 어느 정도 기여한다. 한화는 대전시에 486억원을 내고 25년간 구장 사용권과 구장 명명권, 광고권 등을 받기로 했다.

그래서 한화가 주요 스폰서인 ‘한화생명’을 앞세워 구장 이름을 지었는데, 돌연 대전시가 새로운 이름을 요구했다. 물론 대전시가 구장 이름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2년 전 한화와 구장 사용권 계약 당시가 아닌 신축 구장 개장(3월)을 코앞에 두고 변덕을 부렸다는 점이다. 정상적이라면 계약 당시 원하는 이름을 한화와 상의하고 조율해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오는 3월 개장하는 대전 한화의 신축 홈구장의 공사 모습. /연합뉴스

2014년 개장한 KIA 홈 구장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는 광주시가 KIA와 신축 구장 건설 협약 당시 KIA에 구장 명칭권을 넘겨 주되 새 구장 이름에 ‘광주’와 ‘기아’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는 조항을 넣었다. 대전시는 이런 기본적인 절차를 무시했다. 구단 명명권을 일단 팔면 더 이상 개입할 수 없다는 기본 원칙도 외면한 모습이다. 한 야구계 인사는 “이번 대전시 행태를 보면 그동안 한화에 얼마나 사사건건 간섭했을까 짐작이 간다”고 전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대전시는 “사용권을 내준 거지 구장 이름 결정권까지 내 준 건 아니다”라는 입장을 내놨다. 한화 구단 측은 “협의가 잘 마무리되어 가고 있고 신축 구장 개장 등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대전시와 협조해 나갈 예정”이라고 파문을 애써 가라앉히려 했다. 야구계에선 “한화가 대전시 눈치를 본 것”이라고 해석했다. 대전시를 향한 비판이 거세지자 대전시는 뒤늦게 비공식적으로 “‘한화생명 볼 파크’를 그대로 사용해도 된다”고 통보했다고 한다.

지자체들이 야구장 소유권을 빌미로 구단에게 ‘갑질’을 일삼는 건 사실 특정 지역 문제만은 아니다. 지자체로부터 야구장을 빌려 쓸 수밖에 없는 현행법으로 인해 구단들은 구장 운영이나 광고권 관련 여러 부당한 처사가 있어도 제대로 항변조차 못 한다. 재작년 서울시도 잠실야구장 재건축 계획을 일방적으로 공개하는 바람에 야구 팬들 반발을 사고 대체 구장 좌석 규모를 재조정하는 소동을 겪은 바 있다.

프로야구 구장은 형식적으론 지자체 소유지만 사실 야구 팬들, 말하자면 시민을 위한 공공시설이다. 그들을 위한 인프라이지 지자체의 사유물이 아니다. 지난해 프로야구 관중만 1000만명을 넘는다. 대전시는 남몰래 주인 행세를 하기보단 뭐가 시민들을 위해 최선인지 한 번쯤 고민하는 기회로 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