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멜버른(호주), 이상학 기자] “형이 동생 공을 받아주네.”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의 2025시즌 스프링캠프가 차려진 28일(이하 한국시간) 호주 멜버른 볼파크. 한화 투수들이 이번 캠프 첫 피칭에 나선 가운데 새 등번호로 44번을 새긴 김서현(21)이 불펜에 모습을 드러냈다. 불같은 강속구 던지는 김서현의 투구가 이날 더욱 이목을 끈 것은 그의 공을 받는 게 친형 김지현(27)이기 때문이었다.
6살 차이가 나는 두 사람은 형제 관계다. 형 김지현이 야구하는 모습을 보고 반한 동생 김서현도 따라서 공을 잡았다. 형은 포수를 했지만 동생은 투수가 됐다. 언젠가 프로에서 형제 배터리를 이루는 게 꿈이었다.
자양중 때부터 유망주로 이름을 날린 동생 김서현은 서울고에서 초고교급 유망주로 성장하며 2023년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1순위로 한화 지명돼 먼저 프로에 발을 디뎠다. 형 김지현은 소래고-인하대를 졸업한 뒤 독립야구단 고양 위너스를 거쳐 지난해 육성선수로 SSG에 입단했다.
하지만 김지현은 퓨처스리그에서 1경기만 뛰고, 1년 만에 보류선수명단에서 제외됐다. 늘 SSG 퓨처스 경기 결과를 체크하던 김서현도 아쉬웠다. 형의 못 다 이룬 꿈을 대신하기 위해 등번호도 바꿨다. 지난해 프리미어12 때 형이 쓰던 등번호 44번을 달고 4경기 4이닝 무실점 행진을 펼쳤고, 한화에서도 2년간 쓰던 54번 대신 44번으로 바꿨다. 김서현은 “형도 44번이 잘 어울린다고 했다. 앞으로도 웬만하면 44번으로 쭉 갈 것이다”고 남다른 형제애를 드러냈다.
프로팀에서 함께하고 싶었던 형제의 꿈도 이뤄졌다. 때마침 불펜 포수가 필요했던 한화가 김지현에게 연락을 취했고, 올해부터 1군 선수단 지원 스태프로 합류했다. 같은 선수는 아니지만 형제가 한 팀에서 공을 던지고 받게 된 것이다.
28일 멜버른에서 첫 불펜 피칭은 김서현-김지현 배터리가 함께한 첫 날이었다. 김서현은 어느 때보다 집중해 30개의 공을 던진 뒤 1개를 더 자청해서 던졌다. 불펜 피칭을 마친 뒤 김지현이 김서현에게 공을 받은 느낌을 알려주며 조언했다. 형제 관계이지만 모르는 사람이 보면 영락 없는 투수와 불펜 포수의 모습이었다.
김지현은 “운동할 때만큼은 형동생이 아니라 투수랑 포수 사이라 생각한다. 야구장에선 진지하게 (불펜 포수로서) 선수에 맞춰야 한다”며 “서현이에겐 항상 컨트롤 이야기가 나온다. 그 부분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동생 공을 받는 게 거의 처음이다. 캐치볼은 해봤지만 나이 차이가 있어서 같이 학교를 다닌 것도 아니고, 이렇게 포수로 앉아서 받는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면서 “원래 무뚝뚝하고, 말 없는 동생이었는데 성인이 되고 나서 저랑 말을 많이 한다. 뭔가 잘 안 될 때는 고민도 털어놓고 한다. 요즘 많이 가까워졌고, 서로 많이 의존하는 사이가 됐다”며 웃었다.
김서현도 형이 포수로 받아주는 느낌이 좋았던 모양. 그는 “형을 포수로 앉혀두고 피칭한 적이 거의 없다. 중학교 때까지는 받아줬는데 형이 대학교 가서 기숙사를 쓰면서 같이 할 시간이 아예 없었다”며 “형이 저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 제 공을 받아주는 게 편하다. 오늘도 피칭이 끝난 뒤 팔이 벌어지는 것과 변화구에 대한 느낌을 형이 이야기해줘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시속 160km 강속구를 뿌리는 파이어볼러 김서현은 2년차였던 지난해 37경기(38⅓이닝) 1승2패10홀드 평균자책점 3.76 탈삼진 43개로 잠재력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시즌 초반에는 잦은 투구폼 변화 속에 제구를 잡기 위해 구속을 낮추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2군에 내려가는 등 극심한 성장통을 겪었지만 김경문 감독과 양상문 투수코치가 온 뒤 멘탈을 잡았다. 한 가지 폼으로 고정하며 단기간 필승조로 무섭게 성장했다. 올해는 풀타임 필승맨으로 큰 기대를 받고 있는데 친형까지 곁에서 함께하게 됐다.
한화는 친형 김지현을 불펜 포수로 데려오면서 김서현의 심리적 안정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평소 생각이 많고 섬세한 편인 김서현이라 형이 곁에 있으면 힘든 시기가 와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동생과 불펜에서 한 시즌을 함께하게 될 김지현은 “이제 캠프 4일차인데 재미있게 하고 있다. 동생과 함께할 올 시즌이 재미있을 것 같다”고 기대했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