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78억원. 엄상백(29)은 올해 FA(자유계약선수) 투수 중 가장 많은 돈을 받고 한화로 옮겼다. 2015년 신인 선발 1차 지명으로 KT 유니폼을 입은 지 10년 만. 데뷔 시즌부터 시속 150km를 뿌리는 강속구 유망주로 주목받은 그는 9시즌을 뛰며 정상급 선발 자원으로 성장했다. 한화는 이번 시즌을 새 구장에서 맞이하면서 각오가 새롭다. 2018년 이후 7년 만에 다시 포스트시즌 진출을 노린다.
그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책임감이 그에게 있다. 고액 계약자라 부담이 크지 않을까. 그는 “긴장이나 부담은 없다”며 160이닝 이상을 책임지고 가을 야구 무대를 꼭 밟겠다”고 목표를 밝혔다. 160이닝은 그가 지난해 던진 개인 통산 최다 투구(156과 3분의2이닝)를 넘어서는 수치. 혼신을 기울이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담은 표현이다.
엄상백에게 한화는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팀이다. 아버지 고향이 충주라 어렸을 때부터 한화 경기를 자주 봤다. 그런데 프로에 와선 한화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2023년 2경기 나와 평균자책점이 8.18. 작년엔 4경기 3패 9.35라는 처참한 기록을 남겼다. 그는 “솔직히 왜 그렇게 약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며 “노시환, 채은성 등 중심 타선에게 많이 맞았는데, 스프링캠프 기간 동안 어떻게 그렇게 잘 쳤냐 물어보기도 했다”고 웃었다.
그는 “밖에서 보면 한화는 젊고 재능이 있는 선수들이 많아 매력적인 팀”이라며 “마침 신구장이 마련됐을 때 오게 돼서 더 설렌다. 아버지나 친척분들이 거의 모두 한화 팬들이셔서 정말 기뻐하셨다”고 했다. 9시즌간 뛰었던 친정팀 KT를 떠난 아쉬움도 물론 컸다. “(한화와 FA) 계약서에 사인하러 새벽에 대전으로 내려가는데, 그 순간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착잡함이 있었어요. ‘나 돈 벌었다’ 이런 게 아니라 ‘나 진짜 떠나는구나’ 생각이 들면서 만감이 교차했죠.”
엄상백은 2021년 군 전역 후 어엿한 선발 자원으로 성장한 경우다. 데뷔 초반에는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뛰었지만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첫 풀타임 선발을 맡았던 2022년 11승 2패 평균자책점 2.95로 ‘깜짝 활약’을 보여줬다. 엄상백은 “어릴 때는 컨디션 관리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매 경기 다른 밸런스에서 공을 던졌다”며 “상무에 입대하면서 여기(2군)서도 성적을 못 내면 더 이상 야구를 못 하겠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그때부터 훈련 루틴도 체계적으로 정립하는 등 프로 선수다운 운동을 했다. 군대를 갔다 온 뒤로 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작년에는 프로 경력 최다 승인 13승을 올렸다. 29경기 13승 10패 평균자책점 4.88. 엄상백은 “사실 승수만 커리어 하이지 아쉬웠던 시즌이었다”고 돌아봤다. 그는 “작년은 아무래도 FA를 앞뒀던 시즌이라 초반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의욕이 과했다”며 “원래 하루 못 던져도 훌훌 털어버리는 성격인데 작년엔 계속 생각하며 힘들어했다. 시즌 후반에는 체력적으로 힘에 부쳤다”고 했다. 작년 시즌이 끝나고 프리미어 12 국가대표 예비 명단에 들었지만 역시 체력 문제로 최종 명단에 오르지 못했다. 프로 경력 첫 태극 문양을 눈앞에서 놓쳤다. 그는 “공을 던지면서도 (내 공에) 힘이 없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후반기까지 강력한 공을 던지려면 체계적인 체력 훈련이 필수라는 걸 깨달았다”며 “야구를 하면서 태극 마크는 꼭 달아보고 싶다. 내년에는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도 있는 만큼 동기 부여는 확실하다”고 했다.
‘한화맨’ 엄상백은 이번 시즌 외인 코디 폰세(31), 라이언 와이스(29), 에이스 류현진(38)에 이은 4선발 중책을 맡았다. 올해 리그 상위권으로 꼽히는 한화 선발진 중요한 축이다. 스프링캠프 기간 대선배 류현진에게 평소 잘 던지지 않는 구종인 ‘커브’ 과외도 받으며 공력을 다듬었다.
지난달 26일 한화 유니폼을 입고 리그 첫 등판에 나섰지만 4와 3분의 2이닝 2실점으로 기대에 다소 못 미쳤다. 6일 다시 실력 발휘에 나선다. “지금은 가을 야구에 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는 것 같아요. 군 전역 후 매년 가을 야구를 갔는데 저는 그 웅장한 분위기에 ‘중독’된 것 같아요. 새 구장에서도 꼭 느껴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