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광주 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KT-KIA전. 9회말 2사 만루 나성범이 끝내기 적시타를 친 후 환호하고 있다. 광주=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25.4.17

[스포츠조선 김용 기자] 왜 체인지업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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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위즈와 박영현에게 체인지업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구종일 수밖에 없다. 무슨 얘기냐.

17일 광주 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KT-KIA전. 9회말 박영현이 투구하고 있다. 광주=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25.4.17

2023 시즌 한국시리즈. KT는 플레이오프 죽다 살아났다. NC 다이노스에 첫 2경기를 내줬다 리버스 스윕으로 겨우 올라왔다. 하지만 체력은 바닥. 그래서 한국시리즈에 선착한 LG 트윈스의 쉬운 우승이 예상됐다.

16일 광주 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KT-KIA전. KT가 3대0으로 승리했다. 마무리 박영현이 장성우 포수와 악수하고 있다. 광주=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25.4.16

하지만 반전이 일어났다. 1차전 KT가 고영표의 호투와 손동현, 박영현 철벽 불펜을 앞세워 3대2로 이겨버렸다.

17일 광주 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KT-KIA전. 9회말 2사 만루 나성범의 끝내기 적시타로 KIA가 5대4 역전승을 거뒀다. 나성범이 위즈덤, 네일 등 동료들과 함께 환호하고 있다. 광주=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25.4.17

2차전 LG는 벼랑끝에 몰렸다. 선발 최원태가 긴장한 듯 스트라이크존에 공을 넣지 못하며 흔들렸고, KT가 1회에만 4점을 내며 승기를 잡았다. 아무리 KT가 힘들어도 2차전까지 잡았다고 생각해보자. 3차전 홈으로 가고, 선발이 'LG 킬러' 벤자민이었다. LG가 포기하는 흐름으로 갔을 뻔 했다.

하지만 이 승부는 공 하나에 향방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LG가 3-4로 추격한 8회. 1사 2루 상황서 타석에는 박동원. 박영현은 초구로 체인지업을 선택했다. 박영현의 주무기는 직구인 걸 모든 사람들이 다 안다. 박영현-장성우 배터리는 이를 역으로 이용하려는 듯 보였다. 초구 카운트를 잡고 가겠다는 것. 하지만 체인지업이 너무 밋밋하게 밀려 들어갔다. 그것도 한가운데로. 체인지업을 노리지는 않았을 듯. 하지만 너무 밋밋한 실투가 박동원 스윙 궤적에 완벽히 맞아들어갔다. 역전 투런. 이 홈런으로 LG가 기사회생했고, 그 해 한국시리즈는 LG가 가져갔다. 29년 만의 감격이었다.

KT는 17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KIA 타이거즈에 4대5로 패했다. 4-3으로 앞서던 경기, 9회말 마무리 박영현이 통한의 역전 끝내기 패를 허용했다. 2사 만뤼 위기서 나성범에게 끝내기 2타점 2루타를 얻어맞고 말았다.

만루 위기를 내준 건 그렇다 치더라도, 마지막 나성범과의 승부 구종 선택이 두고두고 아쉬웠을 듯. 그래서 2023 시즌 한국시리즈 얘기를 한 것이다.

박영현은 나성범을 맞이해 연속 5개의 직구를 던졌다. 나성범이 제대로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지만, 그래도 집념으로 커트 커트를 해내 풀카운트까지 갔다.

나성범은 이 타석에 들어서기 전, KT와의 주중 시리즈 10타수 무안타를 기록중이었다. 전문 야구인이 아니어도, 나성범의 타격감이 바닥인 건 그냥 알 수 있었다. 어떤 구종에도 반응이 늦었다. 특히 빠른 직구에 전혀 대처가 되지 않았다.

산전수전 다 겪은 포수 장성우가 이를 모를리 없었다. 그러니 나성범을 상대로 계속 직구 승부를 끌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풀카운트 부담 때문이었을까. 그래도 나성범이니 직구를 던졌다 장타를 맞을 걸 걱정했을까. 체인지업은 맞더라도 희생플라이라는 생각을 했을까. 아니면 힘이 들어간 박영현이 직구를 던진다면 밀어내기 볼넷이 될 것임을 직감하고 있었던 것일까. 또 아니면 나성범이 직구를 노릴 거라는 100% 확신에 역으로 들어갔더 것일까. 절체절명의 상황에 너무 머리를 쓰려했던 것일까. 마지막 승부구는 체인지업이었다. 그런데 한국시리즈 박동원 때와 똑같았다. 밋밋한 체인지업이 한가운데로 밀려들어갔다. 나성범의 방망이에 완벽히 얻어걸렸다.

나성범이 체인지업을 노려 친거라면 덜 억울했겠지만, 나성범은 경기 후 박영현은 직구가 상징이기에, 직구를 생각하다 실투가 들어와 대처가 가능했던 상황이라고 솔직하게 밝혔다. 차라리 150km 한가운데 직구 승부를 했다면, 미련은 남지 않았을 것 같은 순간. 결과론이다. 박영현, 장성우, 이강철 감독은 잠을 쉽게 이루지 못할 밤이 됐을 것이다.

김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