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막 한 달이 지난 프로야구 올 시즌은 작년과는 사뭇 다른 흐름이다. 작년엔 타자들이 강세를 보이고 투수들이 고전하는 ‘타고투저’였는데 올 시즌 초반엔 타율은 크게 떨어지고 투수 성적은 상승하는 ‘타저투고’로 바뀌었다. 선발투수들이 강세를 보이고, 올해부터 피치 클록을 정식 도입하니 경기 시간도 크게 줄어 ‘투수 야구’와 ‘빠른 야구’가 자리 잡는 분위기다.

23일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따르면 22일까지 열린 KBO리그 118경기에서 기록된 리그 평균 타율은 0.256, 평균자책점은 4.21이다. 지난 시즌 0.277, 4.91에 비하면 확연히 낮다.

타격 지표도 줄줄이 하락했다. 경기당 홈런은 지난해 2개에서 1.52개, 경기당 안타는 19.3개에서 17.2개로 줄었다. 반면 경기당 삼진은 올해 16.1개로 작년 15개보다 늘었다. 지난해 3할 이상 타자(정규 이닝 이상)는 24명이었는데 올 시즌엔 14명으로 10명이나 줄었다.

그래픽=박상훈

투수 지표는 반대로 상승세다. 선발투수 평균자책점은 지난해 4.77에서 올해 4.04로, 구원투수는 5.16에서 4.49로 내려갔다. 작년 리그에서 평균자책점 2점대 이하 투수는 KIA의 제임스 네일(2.53)과 전 NC 소속 카일 하트(2.69) 단 2명에 불과했는데, 올해는 2점대 이하 투수가 14명에 달하고 모두 선발투수다. “선발이 잘 던지면 이긴다”는 이른바 ‘선발 야구’가 적중하는 경기가 늘었다.

전문가들은 “외인 투수들의 상향 평준화 영향이 크다”고 분석했다. LG 치리노스(4승 평균자책점 1.69), 한화 코디 폰세(4승 2.31)를 비롯, 메이저리그 현역 출신인 두산 콜 어빈(3승1패 2.37) 등 새로운 외인 투수들과 KIA 제임스 네일(2승 0.74), KT 헤이수스(1승1패 1.01) 등 한국 무대에 이미 적응한 기존 외인 투수들이 좋은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장성호 KBS해설위원은 “자동 볼 판독 시스템(ABS)의 스트라이크존을 하향 조정(1%)하고 시행 2년 차로 접어들면서 투수들이 적응한 영향도 있다”고 했다. 지난 시즌 전격 도입한 ABS의 스트라이크 존에 대해 “이전보다 과도하게 높다”는 불만이 컸다. 낮게 던지는 공은 대부분 볼로 판정돼 “낮은 공은 아예 버리고 높은 공만 친다”는 극단적 타격 전략이 대세를 이룰 정도로 타고투저가 뚜렷했다. 낮은 공을 많이 던졌던 KT 고영표 등 언더핸드 투수와 상·하단을 폭넓게 쓰는 제구력 중심 투수들은 고전했다.

지난해에는 선발이 호투해도 불펜이 무너져 역전, 재역전이 빈발했다. 지난해 열린 정규 시즌 720경기에서 역전승 경기는 총 325경기로 45%에 달했다. 짜릿한 재미를 더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프로야구 수준 저하로 볼 수 있다”는 우려도 적잖았다.

지난 시즌 타고투저 현상에 대해 “야구 선진국 미국과 일본에 비하면 사실상 아마추어 리그 수준”이라는 반응도 있었다. 지난해 메이저리그 리그 평균 타율은 0.243에 불과했고 3할 타자는 단 7명에 불과했다. 일본 프로야구도 지난해 리그 타율은 0.267, 3할 타자는 3명밖에 없었다.

그래픽=백형선

이런 지적을 수용해 올해 ABS존을 조정하고 낮은 존 스트라이크가 늘어나자 고전했던 투수들이 되살아나고 있다. 지난해 부진했던 KT 고영표는 지난 20일 키움전에서 3년 만에 완봉승을 올리는 등 현재 2승 무패에 1.65로 상승세다. 롯데 선발 박세웅과 한화 류현진 등도 존을 폭넓게 활용, 작년과 다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롯데 김원중을 비롯해 낮게 떨어지는 포크볼을 많이 구사하던 불펜·마무리 투수들도 작년 고전했지만 올해 반등하는 양상이다.

올해부터 피치 클록을 정식 도입하고 타저투고까지 더해지니 경기 시간도 크게 단축됐다. 올해 평균 경기 시간은 정규 이닝(9이닝) 기준 2시간 58분으로, 작년보다 무려 12분이 줄었다. 경기 시간이 2시간대로 접어들기는 2010년 측정 이래로 올해가 처음이다.

시즌 초반 흐름이 이후 바뀔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장성호 위원은 “날이 서서히 더워지고 투수들 체력이 떨어지면서 타자들이 다시 강세를 보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