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용인 SK체육관에서 포즈를 취한 문경은(왼쪽)과 전희철. 둘의 우정과 의리는 남다르다. 문경은이 말했다. “얼마 전 SK 구단에서 감독 송별회를 열어줬어요. 아마 KBL 최초일 거예요. 코트를 떠나는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일 텐데, 여기서 우승도 해봤고 제가 받았던 혜택을 더 많이 생각하려 합니다.” 전희철이 답했다. “이제 저랑 감독 대 감독으로 맞붙으셔야죠. 우리 둘이서 같이 벌일 수 있는 재밌는 일이 많을 거라 기대가 됩니다.” /장련성 기자

겉보기엔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달라 보이는데, 문경은(50)과 전희철(48)은 30년 넘게 친형제처럼 막역한 사이다. 문경은은 보름달처럼 푸근하고(떡볶이를 아주 좋아한다), 전희철은 눈매마저 매섭다(오후 6시 이후론 물과 술만 마신다). 학교와 직장도 엇갈렸다. 문경은이 광신상고-연세대를 나와 삼성·전자랜드에서 뛸 때 전희철은 경복고-고려대를 나와 오리온·KCC 유니폼을 입었다. 프로농구 한솥밥은 은퇴 직전 SK에서 2시즌 먹은 게 전부. 하지만 지도자가 되고 나선 한 몸처럼 움직였다. 둘은 2011년부터 SK의 감독(문경은)과 수석코치(전희철)를 맡아 정규리그(2012~2013)와 챔피언결정전(2017~2018) 우승을 합작했다. 바늘과 실, 물과 물고기처럼 지냈다.

지난 4월 말 두 남자의 우정이 시험대에 올랐다. 2020~2021시즌을 8위로 마친 SK가 전희철을 신임 감독으로 승격시키고, 문경은에겐 기술 고문을 맡긴 것. 문경은은 감독 계약이 1년 남아있었고, KBL 최초 ‘감독 데뷔한 팀에서 300승’ 달성을 눈앞에(통산 288승) 두고 있었는데, 전희철에게 “네가 맡아서 다행”이라고 축하 인사를 건넸다. 인사 이튿날엔 함께 골프를 치고 술잔을 기울였다. 학연·지연이 거미줄처럼 얽혀있고 밥그릇 앞에선 진흙탕 싸움도 마다 않는 농구계에서 보기 드문 우정(友情). 비결이 궁금해 동반 인터뷰를 요청했다. 전·현직 감독이 나란히 하는 인터뷰는 전례가 없는데, 문경은은 고사 않고 전희철 곁에 앉았다. “전 감독 잘된 일인데 해야죠.”

◇1쿼터: 청춘 시대

낮보다 밤이, 물보다 술이 익숙한 두 남자는 한낮의 체육관에서 진행하는 인터뷰의 어색함을 커피로 달래가면서 운을 뗐다. 인연의 시작이 궁금했다. 문경은의 회상이다. “제가 중3 때, 키가 180㎝ 넘는 중1 농구 천재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희철이 경기를 남몰래 보러갔어요. 얼마나 잘하나 궁금해서.” 전희철이 말했다. “경은 형은 어릴 적부터 전국구 스타였어요. 형이 고교 때 머리를 길렀는데 슛하고 머리 넘기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요.”

1990년대 농구 대잔치 시절부터 카메라 세례를 받아왔던 전희철(왼쪽)과 문경은은 멋진 구도의 포즈를 먼저 제안할 정도로 촬영에 익숙했다. 실제론 둘 다 '꽃중년'인데 카메라 렌즈가 유독 문경은을 가로 방향으로 왜곡시켜 깜짝 놀랐다. 문경은은 "내가 목 짧고 어깨가 넓어서 그렇다"고 웃었다./장련성 기자

본격적인 친분은 1990년 일본 나고야 아시아청소년농구선수권대회 대표팀부터 쌓았다. 당시 문경은 대1, 전희철 고2. “희철이는 처음부터 저를 잘 따랐어요. 스타 대접받으면 거만할 법도 한데 전혀 그런 게 없었죠. 연대로 오라고 권유했는데, 고대를 갔네요.”(문) 그때부터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농구 금메달까지 모든 태극마크 경기를 함께 뛰었다. “팬들은 연·고대 출신끼리 서로 으르렁댈 거라 생각했겠지만, 저희는 학교보다 태릉선수촌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아요. ‘팀 코리아’ 멤버로서 끈끈해졌죠.”(전)

우정은 유부남이 되고 오히려 더욱 진해졌다. 문경은이 경기도 수지에 먼저 터를 잡았고, 5분 거리에 전희철이 신혼집을 마련했다. 사람들 눈을 피해 서로의 집을 아지트 삼아 원없이 술잔을 기울일 수 있게 됐다. “오죽 붙어다녔으면 희철이가 저 때문에 아이 만들 새가 없다는 원성을 들었으니까요. 둘이 맥주 1만㏄는 거뜬했지.”(문) “그 무렵 골프도 같이 배워 연습장에서 거의 매일 얼굴을 봤네요.”(전)

◇2쿼터: SK 시대

둘은 “프로에서 꼭 한번 같이 뛰자”고 다짐했지만, 2006년에야 SK에서 조우했다. 그마저도 2008년 전희철이 먼저 은퇴해 동행이 금방 끝났다. “우승컵 같이 드는 게 꿈이었는데, 나이 들어 만나니 얘랑 나랑 거의 벤치에 있었어요. ‘이게 아닌데’ 싶던 차에 희철이가 먼저 은퇴했죠.”(문) “SK는 개인주의가 강한 모래알 팀이었고, 트레이드가 잦아서 선수들 소속감이 없었어요. 은퇴 후 전력분석원과 운영팀장 등을 해보니 왜 이 팀이 ‘감독들의 무덤’ ‘독이 든 성배’로 불렸는지 잘 알겠더군요.”(전)

지난 10년간 SK 감독과 수석코치로 호흡을 맞췄던 문경은(왼쪽)과 전희철. /김경민 스포츠조선 기자

문경은은 2011년 SK 감독 대행을 맡게 되자 NBA(미 프로농구)에서 코치 연수 중이던 전희철부터 찾았다. “스타 출신 감독의 성공 사례가 드물고, 저는 경험도 없어서 금방 실패할 거라고들 했는데 희철이가 ‘한번 해보자’며 바로 귀국했어요. 제가 선수들과 소통에 힘쓰는 ‘너그러운 아빠’라면, 희철이는 불호령 악역을 서슴지 않는 ‘무서운 엄마’ 역할을 해줬죠.”(문) “서로 성격이 달라서 시너지가 컸어요.”(전)

둘은 리그오브레전드(LoL) 등 온라인 게임까지 섭렵하며 선수들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2020~2021시즌을 8위로 마쳤고, 이게 사령탑 교체의 원인이 됐다. 문경은은 지난 1년을 뼈아프게 복기 중이라고 했다. “나름 감독 10년 하면서 10연패도 당해보고 여러 곡절을 겪었는데, 지난 한 시즌 배운 게 제일 많아요. 선수를 너무 믿고 맡기면 팀이 해이해지더군요. 같은 실수는 절대 반복 안 할 겁니다.” “코치였던 저도 책임이 있죠. 앞으로 SK 선수단 기강만큼은 확실하게 다잡으려 합니다.(전)”

◇3쿼터: 감독 시대

전희철이 코치를 10년 하는 동안 그보다 후배인 현주엽(전 LG)·조동현(전 KT) 등이 앞서 감독직에 올라봤다. 조바심이 나진 않았을까. “문 감독님과 보내는 시간이 좋아서 굳이 다른 팀을 가고 싶지 않았어요.” 문경은이 말을 받았다. “희철이 속내가 복잡했을 텐데, 절대 티를 안 내서 미안했어요.” 이제는 1973년생 전희철이 10개 구단 통틀어 막내 감독이다. 지난달 31일 정식으로 취임한 그는 “SK의 장점인 신장 우위를 활용해 포워드 농구의 조직력과 스피드를 강화하겠다. 6월 재개하는 팀 훈련을 충실히 해서 지난 시즌 8위의 아쉬움을 반드시 털겠다”고 했다.

두 남자는 앞으로 코트에서 서로를 적장(敵將)으로 만날 날을 기다린다./장련성 기자

문경은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전희철이 농구공 스틸하듯 대신 잘라 말했다. “10년 고생했으니까 지금 몰아서 휴가 받는 거예요. 쉬시고, 조만간 코트로 돌아오실 겁니다. 이제 감독 대 감독으로 맞붙어야죠.” 문경은이 웃었다. “얘가 이렇게 날 위로한다니까! 예전에 SK 감독대행에서 정식 감독으로 승격 안 될까 봐 초조할 때도, 얘가 ‘뭘 걱정해. 안 되면 나랑 닭 튀겨’ 했어요. 옆에서 툭툭 해주는 말들이 큰 힘이 돼요.” 전희철은 손사래 쳤다. “아니, 무조건 그렇게 돼요. 저는 위로 같은 거 못하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