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프로농구 한국농구연맹(KBL) 리그 개막 전 10개 구단 감독 중 올 시즌 우승 후보를 서울 SK로 지목한 팀은 없었다. 예상 성적은 5~6위 정도. 노련미를 앞세워 쏠쏠한 활약을 펼쳐주던 ‘베테랑 트리오’ 허일영(40), 송창용(38), 양우섭(40)이 전부 다른 팀으로 떠났지만 전력 보충이 없었다. 주축인 김선형(37), 오세근(38)이 나이가 많아 장기전인 정규 리그에서 불리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아무런 기대를 받지 못했던 서울 SK는 이번 시즌 반전을 일으켰다. 16일 원주 DB와 원정 경기에서 75대63으로 승리하면서 정규 리그 우승을 확정했다. 역대 최소인 46경기 만에 달성한 정규 리그 우승이다. 종전 기록은 2011-2012시즌 DB(당시 동부)의 47경기였다. 시즌 중 9연승과 10연승을 한 차례씩 거뒀고, 2라운드를 제외한 모든 라운드를 가장 높은 승률로 마쳤다.

압도적 우승 비결은 ‘SK표’ 스틸과 속공으로 요약된다. SK의 경기당 평균 스틸은 8.0개, 속공 득점은 15.8점. 두 기록 다 리그 1위다. 상대 가드가 하프 라인을 넘어오자마자 탄탄한 수비 조직력을 앞세워 강하게 압박한다. 공을 뺏어내면 가드 김선형과 오재현이 치고 나가고, 뒤를 안영준과 외국인 선수 자밀 워니가 뒤따라간다. 4명 전부 포지션 대비 최상위 속도를 자랑하는 선수들이다.

빠른 농구를 위해서 희생해야 할 게 있었다. 오세근의 자존심이었다. 한국을 대표하던 센터 오세근은 지난 시즌 SK에 합류했다. 오세근은 골밑에서 공을 받고 경기를 풀어나가는 본인 위주 전술에 익숙했다. 하지만 느린 오세근에게 공을 많이 투입할수록 팀 공격은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지난 시즌 SK는 정규 리그를 기대 이하인 4위로 마쳤고,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오세근과 SK 특유의 빠른 농구가 조화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세근은 올 시즌을 앞두고 3점슛을 연습했다. 몸무게도 약 5kg 감량했다. 좋아하던 골밑을 포기하고 외곽으로 빠져 팀을 돕기로 결심했다. 올 시즌 3점슛 평균 성공은 지난 시즌(0.5개)에 비해 2배로 늘어 1.0개가 됐다. 오세근은 “(전성기 때와 다른 방식이) 안 힘들다면 거짓말이다. 감독님과 계속 미팅했고, 선형이나 선수들과도 계속 얘기를 하고 있다”며 “주어진 역할에 충실히 하자는 생각이다”라고 했다.

SK의 최종 목표는 물론 플레이오프까지 석권해 통합 우승을 차지하는 것이다.

수원 KT는 이날 홈 경기에서 창원 LG에 90대62 완승을 거뒀다. 최근 7경기에서 6승을 거둔 KT는 4위에서 공동 3위(27승 18패)로 반 계단 올라섰다. 공동 3위 울산 현대모비스는 같은 날 부산 KCC에 76대102로 크게 지면서 KT에 추격을 허락했다. 두 팀과 2위 LG(28승 17패)의 승차가 1경기로 좁혀졌다. KBL 정규리그 1·2위는 6강 플레이오프를 치르지 않고 4강으로 직행한다는 이점이 있다. KCC는 12연패를 끊어내는 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