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즌보다 전력이 10~20%는 상승됐다고 봤습니다.”
프로 농구 서울 SK의 전희철(52) 감독은 ‘SK가 이번 시즌 좋은 성적을 거둘 줄 알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사실 SK는 올 시즌 중위권에 머물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개막을 앞두고 10구단 감독이 꼽는 우승 후보 투표에서 1표도 받지 못했다. ‘베테랑 트리오’ 허일영(40), 송창용(38), 양우섭(40)이 다른 팀으로 떠난 반면 전력 보충이 없었던 것이 결정적 이유였다. 주축인 김선형(37)과 오세근(38)이 나이가 많아 장기 레이스인 정규 리그에서 불리할 것이라는 분석도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SK는 지난 16일 보란 듯 압도적인 페이스로 정규 리그 우승을 확정했다. 프로 농구 역사상 최소인 46경기 만에 달성했다. 종전 기록은 2011-2012시즌 원주 DB(당시 동부)의 47경기.
시즌을 치르며 9연승과 10연승을 한 차례씩 거뒀고, 2라운드를 제외한 모든 라운드를 가장 높은 승률로 마쳤다. SK 성적은 20일 현재 38승 9패. 2위 창원 LG(28승 17패)와는 9경기 차이가 난다.
전희철 감독에게 ‘전력 상승이 10~20% 정도 됐다는 구체적인 숫자가 어떻게 나왔느냐’고 물었다.
전 감독은 “두 시즌 연속 결승까지 치러야 했던 동아시아 수퍼 리그(EASL)를 이번 시즌에는 (지난 시즌 성적이 못 미쳐) 나가지 못했다. 체력적인 면에선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것이라고 봤다. EASL에 나서지 않던 시절 우리 선수들의 기대 기록에서 팀을 떠난 베테랑 3인방의 기대 기록을 빼는 등 정밀하게 계산한 결과 팀 전력이 10~20% 좋아질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고 했다.
전희철 감독은 숫자를 신뢰하기로 유명하다.
그의 데이터 활용법은 이렇다. 매 시즌 SK를 상대로 평균 14점을 넣는 다른 팀 선수 A가 있다고 가정한다. 그런데 올 시즌엔 SK와 3경기에서 평균 10점에 그쳤다.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4번째 경기에서 점수를 몰아 넣을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 선수를 어떻게 막을 것인지 더 치밀하고 전략적으로 준비한다는 것이다.
전 감독은 “경험상 이렇게 대비하면 십중팔구는 맞아떨어진다. 대신 데이터 한두 개에 의존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최대한 많은 부분을 다채롭게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밤낮으로 숫자를 파고든 결과 전 감독은 승승장구했다. 2021-2022시즌 처음으로 프로 팀 지휘봉을 잡고 SK의 통합 우승을 이뤄냈다.
두 번째 시즌엔 챔피언 결정전 준우승을 거뒀다. 지난해엔 역대 프로 농구 감독 중 최소 경기(147경기) 100승 달성 감독이 됐다.
전 감독은 “선수 생활을 끝내고 쌓은 다양한 경험이 감독으로 성장하는 자양분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고려대 시절 농구 대잔치를 빛낸 스타였다. 2001-2002시즌 동양 유니폼을 입고 우승하는 등 한국 프로 농구를 대표하는 스몰 포워드로 활약했다.
그런데 선수 생활을 마치고 지도자가 되는 대신 SK의 전력 분석원과 운영 팀장을 지냈다. 이후엔 SK 수석 코치로 10년 동안 문경은 감독을 보좌했다. 동년배였던 이상민과 현주엽 등은 일찌감치 사령탑에 올랐던 때였다.
전 감독은 “직원으로 지내며 전반적인 구단 운영에 대해 파악했다. 코치 때는 선수들 사이 갈등이 어떤 식으로 일어나고 마무리되는지 배웠다. 내 몫만 하면 되는 선수 시절엔 알지 못했던 것들이었다”며 “만약 바로 감독이 됐다면 성적이 안 좋았을 것 같다. 전술과 데이터야 공부하면 되지만, 이런 것들은 혼자서 알 수 없다. 10년 넘게 직접 얻어낸 소중한 자산”이라고 했다.
SK는 3년 만의 통합 우승을 노리고 있다. 전 감독은 ‘데이터 신봉자’답게 “SK가 올 시즌 상대 전적으로 밀리는 팀이 없었다. 다치지만 않으면 우승 트로피는 우리의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