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위기의 수원 삼성이 결국 칼을 빼들었다.

김병수 감독과 전격적으로 결별하고, 소방로는 '리빙레전드' 염기훈 플레잉코치를 선임했다. 수원은 26일 보도자료를 통해 '김병수 감독을 경질하고, 염기훈 감독 대행체제로 올시즌을 마무리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스포츠조선 9월25일 단독보도> 수원은 이같은 결정에 대해 '절체절명의 위기를 타개하고 희망의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오동석 수원 단장은 "현재 상황을 직시하고 앞으로 남은 7경기동안 과연 반전할 수 있는 지 고민하고 검토한 결과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판단에 이르렀다"며 "구단도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 남은 경기 최선을 다하고 시즌을 마친 후 서포터스의 평가를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수원과 김 감독은 25일 거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김 감독도 구단의 선택을 받아들이고 곧바로 짐을 쌌다. 당초 구단은 김 감독이 사퇴 의사를 전했다고 했지만, 정확히는 '경질'이었다. 수원 역시 '경질'로 공식 발표를 했다. 이로써 지난 5월4일 선임된 김 감독은 다섯달도 되지 않아 불명예 퇴진하게 됐다. 올 시즌 강등권을 전전하고 있는 수원은 올 초 이병근 감독에 이어, 김 감독까지 벌써 두 명의 감독이 짐을 싸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했다. 지난 시즌 가까스로 팀을 잔류시켰던 이 감독은 364일만에 성적 부진으로 물러났다.

수원은 최악의 위기다. 승점 22로 최하위다. 올 시즌 K리그1은 '1+2' 시스템이다. 최하위가 다이렉트로 강등하고, 10위와 11위가 플레이오프를 치른다. 일단 최하위를 피하는게 급선무다. 하지만 최근 상황은 좋지 못하다. 4연패에 빠졌다. 그 사이 11위 강원FC(승점 25)가 조금씩 승점을 더하며, 승점차를 벌리고 있다. 숫적 우위를 갖고도 0대1로 패한 대구FC전, 답답한 경기력으로 1대3으로 쓰러진 대전하나시티즌전까지, 무기력한 경기가 반복되자, 위기감은 더욱 커졌다.

수원의 첫번째 승부수는 '병수볼' 김 감독이었다. 리얼 블루에서 벗어나, 오랜만의 외부 수혈이었다. 김 감독은 강원에서 센세이셔널한 모습을 보이며, 지도력을 인정받은 지도자다. 코칭스태프에 변화를 주는 등 야심차게 출발했다. 5월10일 전북 현대전(0대3 패)을 시작으로 수원 벤치에 앉은 김 감독은 부임 후 도통 반등하지 못했다. 제8대 수원 감독 취임식에서 김병수 감독은 "어려운 상황임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사람이라면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조금씩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팀이 단기간에 변화하는 건 쉽지 않겠지만, 자신감을 갖고 나아지는 모습 보여 드리겠다"라며 수원의 반등을 예고했지만, 부임 후 치른 22번의 경기에서 5승5무12패에 그쳤다. 초반 2승2패로 연착륙하는 듯 했던 김 감독은 이후 9경기 무승(4무5패)의 수렁에 빠졌다. 이후 울산 현대와 강원FC를 연파하며 살아나는 듯 했지만, 이내 다시 부진의 늪에 빠졌다. 7경기에서 1승1무5패에 그쳤다. 최근에는 4연패에 빠졌다.

김 감독은 '병수볼' 대신 실용적인 축구로 전환하며, 결과를 쫓았다. 물론 체질개선도 병행했다. 여름이적시장에서는 카즈키, 웨릭포포, 김주원, 고무열 등을 영입해, 변화를 노렸다. 경기력적으로 나아진 측면도 있었지만 기대했던 결과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부상, 체력저하 등 스쿼드 자체에 문제도 있었지만, 라인업 기용이나 교체, 전략 등 김 감독의 용병술에도 아쉬운 목소리가 나왔다.

강등의 위기가 코 앞으로 다가오자, 더이상 기다려줄 시간이 없었다. 수원이 다시 한번 움직였고, 그 선택은 감독 교체였다.

갈길 바쁜 수원은 당장 지휘봉을 잡을 대행까지 정했다. 놀랍게도 염기훈 코치였다. 염 코치는 설명이 필요없는 수원의 레전드다. 2010년 울산을 떠나 수원으로 이적한 염 코치는 군복무를 제외하고, 13년간 수원에서만 뛰었다. 수원 유니폼을 입고 332경기를 뛰며 49골-87도움을 기록했다. 3번의 FA컵 우승에 견인했다. 수원의 전성시대부터 암흑기를 함께 했다. 올 시즌부터는 플레잉코치로 변신했다. 염 코치는 올해 태국에서 P급 라이선스 교육에 들어갔다. 당장 벤치에 앉는데 문제가 없다.

잔류까지 기적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수원은 경력이 전무한 염 코치를 감독대행으로 내세우는 도박을 단행했다. 지도자 경험이 일천하지만, 누구보다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선수들을 깨울 수 있는 염 코치로 승부수를 띄웠다. 염 코치는 오랜기간 수원의 캡틴으로 활약하며 '리더십'을 인정받은 바 있다.

새롭게 수원의 지휘봉을 잡은 염 대행은 26일 선수단 미팅을 진행하고, 첫 훈련에 돌입했다. 가장 먼저 주장단부터 바꿨다. 주장 김보경, 부주장 고승범, 불투이스, 이종성 등으로 주장단을 교체했고, 코칭스태프와 지원스태프의 역할을 조정하는 등 팀분위기 일신에 나섰다. 기존 주승진 수석코치와 이주표 2군 코치는 수원을 떠나고, 오장은이 염 대행을 벤치에서 돕는다. 염 대행은 "오랫동안 수원삼성과 함께 하면서 무엇을 해야 팀이 좋아질 수 있을지 잘 알고 있는 만큼 강등탈출을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며 "선수들에게 '혼자서는 이룰 수 없다. 다 함께 서로를 도와서 단 하나의 목표를 바라보고 달려가자'고 주문했다. 지난 일은 잊고 오늘부터 앞으로 달리는 일만 생각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팬들에게는 "혼을 내시더라도 시즌을 마치고 내셨으면 좋겠다. 지금처럼 힘든 상황에서는 오로지 힘을 합쳐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변함없는 응원을 보내주시기를 부탁한다"고 덧붙였다.

1983년생인 염 대행은 최근 사령탑 변화가 있었던 FC서울의 김진규 대행(1985년생), 제주 유나이티드의 정조국 대행(1984년생)에 이어 K리그1에서 세 번째로 젊은 지도자가 됐다. 과연 수원의 승부수가 통할 수 있을지, 일단 수원팬들의 반응은 절망 그 자체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