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장 후반 10분, 합산 스코어 2-2. 그라운드 선수 22명은 모두 지쳐 있었다. 비셀 고베 선수들은 골문 앞을 싸매고 있었다. 체력이 바닥 났으니 골대 가까이 슛만 허용하지 않으면 된다는 전술이었다. 그때 광주FC의 아사니(30·알바니아)가 페널티 박스 앞 아크에서 공을 잡았다. 아사니는 예상치 못하게 멀리서 왼발 슛을 때렸다. 공은 왼쪽으로 휘면서 골대 왼쪽 위를 맞고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극적인 역전 골이었다.
한국 광주FC는 지난 12일 일본 비셀 고베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엘리트(ACLE) 16강 2차전에서 3대0 승리를 거뒀다. 0대2로 졌던 1차전의 열세를 딛고 합산 스코어 3-2로 8강 진출에 성공했다. 아사니가 동점골, 역전골을 넣으면서 극적인 승리를 이끌었다. 광주FC는 8강 진출로 총 180만달러(약 29억원) 상금을 손에 넣었다. K리그1(1부) 우승 상금(약 5억원)의 5배 이상이다. 아사니는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엘리트에서 9골을 몰아 넣으면서 득점 단독 1위를 달리는 중이다.
아사니는 2023 시즌 광주FC에 합류한 뒤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이정효 광주 감독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아사니는 유럽 알바니아 출신. 빼어난 개인기로 잉글랜드, 이탈리아 등 빅리그 입성을 노리다가 K리그에 왔다. 아사니는 광주에 합류하자마자 4번째 경기에서 해트트릭(3골)을 하는 등 기량을 과시했지만 문제가 생겼다. 시즌 7번째 경기에서 교체 투입된 아사니가 공을 다투다 넘어졌다. 아사니는 심판에게 항의하다가 상대 팀이 돌파하는 걸 두고만 봤다. 이는 곧바로 실점으로 이어졌다. 이정효 감독은 아사니를 벤치로 불러들였다. “선수로서 본분을 잊은 행위”라면서 분노했다.
아사니는 2023 시즌을 마치고 팀을 떠나려 했다. 아사니는 2024년 초에 열렸던 유로 2024에서 알바니아 대표팀 공격을 이끌었다. 3경기 연속 선발 출전하면서 스페인 라 리가, 이탈리아 세리에A 등 유럽 빅리그 관심을 받았다. 이정효 감독은 “(이적하겠다고 하는) 아사니가 건방을 떨어서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라고까지 했다.
이정효 감독은 보란듯이 2024 시즌 초반 아사니를 내보내지 않았다. 부상이 없는데도 그랬다. 스타 선수를 내보내지 않자 안팎에서 아사니를 왜 쓰지 않느냐는 말이 나왔지만, 이정효 감독은 “실력이 없으니 출전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곤경에 처한 아사니에게 이정효 감독은 시즌 중반 잉글랜드 스완지 시티로 떠난 엄지성이 쓰던 등번호 7번을 아사니에게 주겠다고 제안했다. 7번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손흥민 등 골잡이 날개 공격수를 상징한다. 아사니는 “선수 생활 중 한 번도 ‘7번’을 단 적이 없다.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한다.
이 감독은 직후 아사니를 선발로 내보냈다. “아사니의 실력이 확실히 좋아졌다“ ”아사니의 복귀는 새로운 영입과 같다”라고 추켜세웠다. 아사니는 지난해 9월 광주 첫 챔피언스리그 경기였던 요코하마 F. 마리노스전에서 3골을 넣어 7대3 대승을 이끌었다.
이날 16강 2차전에서도 이정효 감독은 아사니를 중심으로 하는 전술을 짜왔다. 아사니 뒤로 수비 미드필더가 위치를 지키게 하면서 수비 부담을 줄이고, 아사니가 공격할 때는 측면뿐 아니라 중앙으로도 파고들 수 있게 했다. 아사니는 기대에 부응했다. 아사니는 합산 스코어 1-2로 뒤지던 후반 40분 팀 동료가 얻어낸 페널티킥을 골로 이끌었다. 당시 페널티킥을 누가 찰지 우왕좌왕하자 이정효 감독은 아사니 7번을 뜻하는 손가락 일곱개를 들면서 아사니에게 차라고 지시했다. 아사니는 “경기를 준비하면서 긴장해 이틀 정도 잠을 못 잤다. 8강에 진출해서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광주FC가 출전하는 ACLE는 8강부터 결승까지 다음 달 25일~5월 4일 일정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진행한다. 8강 대진은 추첨을 통해 동아시아 팀과 서아시아 팀 맞대결로 이뤄지며 단판 승부로 펼쳐진다. 광주가 8강전에서 승리할 경우 약 60만달러(약 8억7000만원)의 추가 상금을 획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