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월드컵 본선에는 나가는 분위기다. 26일(한국 시각) 요르단 암만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B조 8차전에서 이라크가 조 최하위였던 팔레스타인에 1대2로 패하는 이변이 연출됐다. 1-0으로 앞서 있던 이라크는 후반 43분과 추가 시간, 연이어 코너킥 상황에서 헤더 골을 얻어맞으며 팔레스타인에 무릎을 꿇었다. 앞서 25일 경기에서 B조 1위 한국(승점 16)이 2위 요르단(승점 13)과 고전 끝에 1대1로 비기면서 이라크에 추격을 허용할 듯 보였지만, 이라크가 스스로 주저앉으며 3위(승점 12)에 머무른 것이다.
조 1~2위가 월드컵 본선에 직행하는 가운데 한국은 6월 5일 이라크 원정 9차전에서 비기기만 해도 최소 조 2위를 확보해 11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한다. 만약 이라크에 진다고 하더라도 3차 예선 최종 10차전이 현재 조 최하위 쿠웨이트(승점 5)와 홈경기라 유리한 처지다.
아시아 축구 맹주를 자처하는 한국으로선 이런 어부지리가 달갑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해 11월 팔레스타인과 6차전 1대1 무승부를 시작으로, 3차 예선에서 3연속 무승부. 한 수 아래로 본 오만·요르단을 상대로 한 이번 달 홈 2연전을 다 비겨 자존심을 구겼다. 이번 3차 예선 홈 4경기에서 1승 3무. ‘안방 고양이’ 신세다. 홍 감독은 “선수들이 부담을 너무 많이 갖고, 우리가 집중할 수 없는 것들이 있는 것 같기도 한데 정확히 무엇 때문인지는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유럽파들이 즐비한 선수 구성상 오만·요르단에 확실한 우위를 보이지 못한 건 결국 전술 구사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다. 박문성 해설위원은 “3차 예선 내내 4-2-3-1로 똑같은 포메이션을 펼쳤는데 공격하는 과정에서 순간적인 부분 전술 전환이 이뤄지지 않다 보니 상대 수비가 쉽게 막아냈다”고 비판했다.
전력상 열세인 상대가 밀집 수비를 들고나올 게 뻔한 데 이를 어떻게 헤쳐나갈지 별다른 대책도 준비하지 않은 듯 보였다. 사실 홍 감독은 울산 사령탑 시절에도 두꺼운 수비벽 앞에선 공을 빙빙 돌리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박 위원은 “홍 감독은 전술보다는 (선수들) 동기 부여에 강점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면서 “이를 보완하려고 외국인 전술 코치를 영입했는데 아직 그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미드필더나 공격수들이 훈련 과정에서 익힌 약속된 전술로 밀집 수비를 뚫고 나아갈 수 있어야 하는데 지난 2연전에선 수비수가 붙기만 하면 백패스를 반복했다. 전진했다가 다시 원점에서 공격을 시작하는 지루한 패턴이 이어졌다. 요르단전 볼 점유율은 75-25(%)로 압도적이었지만 결정적 장면이 드물었던 이유다. 전술이 마땅치 않다 보니 황희찬이나 손흥민, 이강인 등 특출한 개인 능력에 주로 의존해 경기를 풀어갔는데 이들이 막히면 더 이상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지지부진했다.
한국과 함께 B조에 속한 5국은 이번 3차 예선 참가 팀 중 전력이 가장 약하다고 평가받는 그룹이다. 이런 나라들을 상대로 매 경기 실점하는 것도 문제다. 3차 예선 8경기 중 6경기에서 실점했다. 아시아 예선에서도 이런데 월드컵 본선에 간다면 세계 강호를 상대로 수비력이 감당할 수 있을지 우려가 크다.
한준희 해설위원은 “상대가 공을 가지고 편안하게 우리 진영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잦다”며 “수비 전환 과정에서 적극성과 집중력이 떨어져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번 오만과 요르단전 모두 상대 공격수 드리블 돌파를 중간에 끊어내지 못하며 결국 실점을 허용했다. 요르단은 지난 아시안컵 4강전과 마찬가지로 압박에 취약한 수비형 미드필더 박용우를 공략, 공을 뺏어내 역습에 성공했는데 이번에도 비슷했다. 대비가 부족했다는 방증이다. 필요하다면 경고를 감수하더라도 과감하게 차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처럼 김민재와 이강인 등 핵심 선수들이 빠졌을 때 ‘플랜 B’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도 숙제다. 김대길 해설위원은 “이강인과 김민재가 없는 상황에서 그들이 뛸 때와 큰 차이가 없는 전술을 썼다. 다른 선수들이 그 역할을 대신하기엔 미흡했다”면서 “손흥민마저 (나이 또는) 컨디션 탓인지 기대했던 ‘게임 체인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최악의 조건을 가정해서 전술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