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밤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에선 조그만 환송식이 열렸다. 광주FC 팬 120여 명이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엘리트(ACLE) 토너먼트에 나서는 광주 선수단 출국길을 배웅하러 나온 것. FC서울이 K리그 9라운드 일정을 하루 앞당겨 달라는 요청을 들어준 덕분에 광주는 공항 근처에서 하루를 묵고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환호를 받으며 출국장에 나타난 이정효(50) 광주 감독은 “우승 상금이 1000만달러(약 142억원)”라며 “이 돈으로 클럽하우스를 새로 짓고 웨이트 트레이닝 시설도 싹 바꾸고 싶다. 꼭 결승까지 가서 최대한 많은 상금을 벌어 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광주 선발대는 UAE(아랍에미리트), 후발대는 카타르를 경유해 21일 대회가 열리는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 입성했다. ACLE는 8강부터 결승까지 모두 제다에서 단판 승부를 치러 챔피언을 가린다. K리그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광주를 포함, 크리스티아누 호날두(40)의 알 나스르와 알 힐랄, 알 아흘리(이상 사우디), 알 사드(카타르), 요코하마 마리노스와 가와사키 프론탈레(이상 일본), 부리람 유나이티드(태국), 8팀이 우승을 다툰다.
광주는 한국 시각 26일 오전 1시 30분 강호 알 힐랄과 8강에서 맞붙는다. 올 시즌 사우디 프로 리그 2위를 달리는 알 힐랄은 지난 2월 브라질 수퍼스타 네이마르(33·산투스)와 결별하긴 했지만, 맨체스터 시티 전성기를 이끈 포르투갈 국가대표 주앙 칸셀루(31)를 비롯해 후벵 네베스(28·포르투갈), 알렉산다르 미트로비치(31·세르비아), 칼리두 쿨리발리(34·세네갈) 등 유럽 5대 리그에서 맹활약했던 선수들이 즐비하다. 올 시즌 총연봉이 1억7100만유로(약 2800억원)로 시민 구단 광주 연봉 97억원(2024시즌 기준)의 약 30배에 달한다.
이정효는 부산 아이파크에서 뛰던 2005년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5골을 넣으며 팀을 4강으로 끌어올렸지만, 준결승에서 사우디 알 이티하드에 0대2로 패한 경험이 있다. 그는 “감독으로도 늘 꿈꿔 오고 꼭 서고 싶었던 무대”라면서 “‘언더도그’로 불리는 우리 경기를 보고 많은 분이 영감을 얻고 희망을 얻었다고 얘기한다. 선수들에게 어떤 팀과 맞붙더라도 용기 있게 부딪쳐 보라고 한다. 그러다 보면 성장하게 된다”고 말했다.
사우디로 가는 발걸음이 그나마 가벼웠던 건 광주가 K리그에서 대전(승점 20)에 이어 2위(승점 16)를 달리며 선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3시즌 K리그1 12팀 중 팀 연봉(60억원)이 최하위였음에도 3위 돌풍을 일으켰던 광주는 넉넉하지 못한 살림 탓에 매 시즌 팀 주역들이 좋은 대우를 받고 빠져나가는 냉혹한 현실에 직면해야 했다. 올 시즌에도 국가대표 출신 미드필더 정호연(미네소타)을 포함, 허율과 이희균(이상 울산), 이건희(제주) 등 핵심 선수들을 떠나보냈다. 하지만 올 시즌 데뷔한 미드필더 강희수(22)를 과감히 주전으로 내보내고, ‘멀티 플레이어’ 박태준(26)을 중용하는 등 빈자리를 효과적으로 메웠다는 평을 받는다. 제주에서 뛰다 이정효 전화를 받고 3년 만에 친정 팀 광주로 복귀한 브라질 공격수 헤이스(32)가 리그 4골로 아사니(3골·알바니아)와 함께 공격을 이끈다.
이 감독은 배가 부르면 잠이 와 새벽까지 축구 영상을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저녁 식사를 보통 거른다. 그렇게 전술 연구에 매달려 짜낸 맞춤형 전술로 상대를 괴롭힌다. 한두 선수 기량에 의존하지 않고,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유기적 움직임으로 공간을 창출한다. 선수들은 열심히만 하면 주전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훈련장을 누빈다. 이정효는 지난 19일 서울을 2대1로 물리치고 리그 2위로 뛰어오른 뒤 “선수들이 ACLE에 또 나가고 싶다고 얘기한다. 일본이나 중국 팀과 맞붙은 경험을 바탕으로 해외 진출이란 꿈도 꾸게 된다”며 “K리그에서 1~2위를 해야 다음 시즌 ACLE 무대에서 또 뛸 수 있다. 선수들을 위해서라도 내가 더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