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 보고 달리는 두 열차가 조금도 양보 없이 속도를 내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가 후원하는 LIV 골프 인비테이셔널 시리즈(이하 LIV 골프) 3차 대회를 하루 앞둔 28일, LIV 측은 대회 장소인 뉴욕 베드민스터 트럼프내셔널 골프장에서 “내년 시리즈 대회 수를 올해 8개에서 14개로 늘린다”고 발표했다. 총상금은 올해 2억5500만달러(약 3323억원)에서 1억5000만달러 늘어난 4억500만달러(약 5278억원)로 책정했다. 47개 대회 4억8260만달러 규모로 열리는 올해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 비해 대회 수는 3분의 1이 안 되지만, 상금 규모는 거의 비슷하다. 대회 개최 장소도 올해 미국과 유럽, 아시아에서 열리던 것을 호주와 남미로 확대한다. 이렇게 LIV 골프의 몸집이 불어난다는 것은 PGA투어와 일정이 겹치는 대회가 더 많아진다는 것을 뜻한다. ‘너 죽고 나 살기’의 제로섬게임이 전장을 더 확대한다는 이야기이다.
◇모래바람의 원동력은 상상하지 못했던 돈 바람
LIV 골프는 엄청난 돈 잔치에 어울리는 스타 선수들을 대회 때마다 서너 명씩 늘려 가는 방식으로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1차 런던 대회 간판은 필 미켈슨(미국), 더스틴 존슨(미국), 세르히오 가르시아(스페인)였고, 2차 포틀랜드 대회에선 브라이슨 디섐보(미국), 브룩스 켑카(미국), 패트릭 리드를 영입했다. 이번 3차 베드민스터 대회에선 폴 케이시(잉글랜드), 헨리크 스텐손(스웨덴), 찰스 하월 3세(미국) 등이 새 얼굴로 전면에 나선다.
추가 합류설이 나도는 거물급 선수들이 즐비하다. 최근 메이저대회 디오픈에서 우승한 캐머런 스미스(호주)와 지난해 페덱스컵 우승자 패트릭 캔틀레이(미국), 버바 왓슨(미국), 애덤 스콧(호주), 마쓰야마 히데키(일본) 등 PGA투어의 보석 같은 선수들이다.
지난 2월 핵심 선수인 미켈슨이 연이은 실언을 쏟아내며 여론의 역풍을 맞을 때만 해도 ‘실패한 미켈슨의 쿠데타’ ‘출범 전에 좌초한 사우디 수퍼 골프리그’란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껏 상상하지 못했던 돈 바람이 점점 더 LIV 골프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일본프로골프투어에서 뛰는 한 선수는 “일본에서도 3명 이상 모이면 ‘누구는 얼마 받고 간다더라’며 LIV 골프 이야기만 한다”며 “1억달러 넘는 계약금도 바로 다음 날 통장에 꽂아준다고 들었다”고 했다. LIV 골프의 배후에는 자산 운용 규모 6000억달러(약 781조원)에 이르는 사우디 국부펀드가 버티고 있다. LIV 골프 운영 자금만 4년간 20억달러를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PGA투어와 9·11 유가족의 협공
PGA투어와 9·11 유가족이 LIV골프의 기세를 누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미 스포츠 전문 매체 ESPN은 “3차 대회는 2001년 9·11 테러가 일어난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서 불과 80㎞ 떨어진 곳에서 열린다. 9·11 테러 희생자 가족 단체는 LIV 골프에 반대하는 TV 광고와 함께 이번 주말 기자회견을 계획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9·11 테러 유족 단체 대표인 테리 스트라다는 “테러에 관련이 있는 사우디아라비아가 후원하는 LIV 시리즈에 일부 선수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합류한다”고 비난했다.
사우디 국부펀드는 사우디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이사회 의장으로 있다. 그가 골프를 통해 스포츠 워싱(스포츠를 통한 이미지 세탁) 전략을 편다고 본다. 2018년 사우디 출신의 워싱턴포스트 소속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피살된 사건의 배후로 미국 정보 당국은 빈 살만 왕세자를 배후로 지목한다.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석유 증산을 논의하기 위해 사우디에서 빈 살만 왕세자와 정상회담을 했지만, 미국 언론들은 사우디 오일 머니의 불순한 의도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PGA투어는 LIV 골프와는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제이 모너핸 커미셔너가 이끄는 미 PGA투어는 “LIV 골프로 이적한 선수들을 페덱스컵 순위에서 제외하고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주지 않겠다”고 밝혔다. 페덱스컵 순위에 따라 PGA투어 카드도 주어지기 때문에 사실상 방출 통보다. PGA투어는 지난해부터 선수들에게 “사우디 골프 리그 참가는 곧 PGA 투어 탈퇴”라며 압박했다.
◇PGA투어는 왜 강경책을 고수하나
PGA투어와 LIV 골프는 공생이 불가능한가? 얼마 전 베테랑 어니 엘스(남아공)는 타협안을 내놓았다. PGA투어가 4대 메이저 대회와 페덱스컵 플레이오프를 마친 가을에 3개월 동안 LIV 골프를 집중적으로 여는 방안이다. 하지만 이는 LIV 골프의 야심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LIV 골프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같은 ‘수퍼 골프 리그’를 목표로 한다. LIV 골프를 이끄는 호주의 골프 레전드 그레그 노먼(LIV 골프 인베스트먼트 CEO)은 최근 “우리의 발전 속도가 빨라 얼마 지나지 않으면 PGA투어와 합병 논의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발언까지 했다. 최고 선수들이 뛰는, 최고 리그를 만들어 골프 플랫폼을 장악하면 PGA투어가 누리던 중계권을 비롯한 막대한 수입과 전 세계 골프에 대한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노먼은 현역이던 1990년대 월드 골프 투어를 추진하다 PGA투어의 반대와 선수들의 비협조로 좌절한 전력이 있다. 그 아픈 경험을 바탕으로 치밀하게 선수들에게 접근하고 PGA투어에 대응하고 있다.
세계 골프의 중심이었던 PGA투어는 졸지에 마이너리그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갖고 있다. PGA투어는 2018년 6월 디스커버리와 12년간 20억달러(약 2조6060억원) 규모의 미국 외 중계권, 플랫폼 개발 파트너십을 맺었다. 그리고 2020년에는 CBS, NBC스포츠, ESPN과 2022년부터 9년간 연간 6억8000만달러에 미국 내 TV·디지털 중계권 계약을 체결했다. LIV 골프가 커지면 이런 계약은 더 이상 불가능해진다.
PGA투어는 ‘돈에는 돈’ 전략도 구사한다. 자체 대회의 상금을 늘리고, LIV 골프처럼 스타 선수들만 참가하는 대회를 신설하는 등 전방위적인 대책을 내놓았다. LIV 골프가 “PGA투어 선수들이 투어 수익의 26%밖에 받지 못한다”는 주장을 하자, 올해부터 수익의 55%가 돌아가도록 바꿨다. PGA투어의 올해 예상 수익은 약 15억2000만달러다.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는 “그동안 NBA와 MLB 등에서도 대안 리그의 위협이 있었지만 철저한 왕따 전략과 기존 이익 세력의 결집으로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났다”며 “LIV 골프는 엄청난 자금력에 F1(포뮬러 원)처럼 개인전과 단체전을 병행하는 새로운 포맷을 도입하는 등 기획력이 만만치 않아 양측의 대치가 오래갈 것 같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왜 LIV를 편들까]
메이저개최 놓고 PGA와 소송 악연
PGA와 악연이 있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LIV 3차 대회를 맞아 ‘도랑 치고 가재 잡는’ 행보를 하고 있다. LIV 인비테이셔널 3차 대회가 열리는 미국 뉴저지주 베드민스터의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은 트럼프 소유 골프장 가운데 하나다. 10월에 열리는 LIV 최종전도 마이애미의 트럼프 내셔널 도럴 마이애미에서 열린다. LIV 골프 8개 대회 중 2개가 트럼프 소유 골프장에서 열리는 것이다. ‘골프광’인 트럼프는 28일 전 세계 1위 더스틴 존슨(미국), ‘헐크 장타자’ 브라이슨 디섐보(미국)와 한 조로 프로암에 참가해 골프를 즐겼다.
트럼프는 LIV 골프를 노골적으로 편들고 있다. 그는 26일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세계 스포츠 최고의 화제가 되고 있는 LIV 골프가 사우디의 이미지 개선에 도움이 되고 있다. 수조원 이상의 홍보 효과를 거둔 훌륭한 투자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9·11 테러 사건 유족들이 사우디 자본이 후원하는 골프 대회가 미국 땅에서 열리는 것을 반대하는 것에 대한 입장을 묻자 말을 돌렸다.
“유족들 감정을 이해하지만, 이 대회와의 관계는 잘 모르겠다. 유족들 주장을 정확하게 모르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선 언급할 수 없다”고 둘러댔다.
그는 자신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선수들에게 “지금 LIV 골프에 출전해 돈을 챙기라”고 했다. 그는 “PGA투어에 충성심으로 남아 있는 선수들은 나중에 PGA투어가 LIV 골프에 합병되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단지 PGA투어로부터 감사하다는 인사만 받을 것이다”라고 조롱했다.
트럼프가 PGA투어에 적대적인 입장을 보이는 것은 과거 악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당초 올해 메이저대회 PGA챔피언십은 베드민스터의 트럼프 내셔널골프클럽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1월 트럼프 지지자들이 미국 국회 의사당에 난입하자 미국프로골프협회(PGA 오브 아메리카)가 개최지를 변경했다. 양측은 소송을 벌이다 합의를 맺었지만, 트럼프는 원망을 멈추지 않았다. CNN은 “트럼프는 LIV 골프 개최로 돈을 벌고, 관심을 끌면서 PGA에 상처를 주고 있다”고 했다. 트럼프는 LIV골프를 이끄는 그렉 노먼과 오랫동안 친분을 이어오고 있고, 트럼프의 사위 제라드 쿠슈너는 사우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각별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