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상은 일생에 한 번밖에 기회가 없다는 걸 잘 알잖아요. 희망 사항이었지, 목표는 아니었어요. 제가 잘해서 받았다기보다는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다른 나라 선수들도 정말 잘 쳐요.”

유해란(왼쪽)이 17일 미국 플로리다주 네이플스의 티뷰론 골프클럽에서 열린 2023 LPGA 시상식에서 안니카 소렌스탐에게 신인상 트로피를 전달받고 있다./AFP 연합뉴스

한국 선수로는 4년 만에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신인상을 수상한 유해란(22)은 시즌을 마치고 귀국 비행기를 타러 가기 직전에 전화를 받았다. 그는 지난 17일 시상식에서 안니카 소렌스탐(53·스웨덴)에게 트로피를 전달 받았다. 1998년 박세리(46)를 시작으로 김미현(46·1999), 신지애(35·2009), 유소연(33·2012), 박성현(30·2017), 고진영(28·2018) 등에 이어 역대 14번째 한국인 수상자가 됐다. 2021·2022년 2년 연속으로 신흥 골프 강국 태국 선수들에게 돌아갔던 상을 올해 되찾아왔다.

지난해 말 Q시리즈를 수석 통과한 유해란은 기대만큼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보냈다. 신인상 랭킹 2위 그레이스 김(23·호주)을 신인상 포인트로 300점 가까이 앞서는 등 꾸준한 경기력으로 경쟁자들을 압도했다. 지난달 월마트 NW 아칸소 챔피언십에서 첫 우승을 거둔 것은 물론 올 시즌 버디 수 3위(314개), 그린 적중률 4위(75.4%), 상금 랭킹 15위(155만5010달러·약 20억3000만원)에 올랐다. 세계 랭킹은 29위. 한국 선수 중 다섯째로 높다.

그래픽=정다운

코로나 사태 전후로 선수들이 해외 진출을 꺼리면서 침체에 빠진 한국 여자 골프에 유해란의 성장은 단비 같은 소식이다. 그는 “시즌 초반엔 한국에서 뛸 때보다 경비도 많이 들고 언어, 동선, 음식 등 모든 것이 새로워서 다 힘들었다”고 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시절 가장 자신 있었던 아이언샷이 미국에서도 통했다. 그는 KLPGA 투어에서 2019~2022년 통산 5승을 올렸고 신인상도 받았으며 그린 적중률은 매년 최상위권이었다. “비거리를 늘리려고 노력은 했는데 드라마틱하게 늘진 않았어요. 늘 강점이었던 아이언샷 덕에 좋은 성적이 나온 것 같아요.” 올 시즌 평균 드라이브샷 거리는 259.95야드로 LPGA 투어 57위. 영어로 연설하고 기자회견 나설 때마다 긴장됐지만, 꾸준히 화상 수업하고 통역 없이 스스로 시도해보면서 적응해 나갔다고 한다.

미국서 일궈낸 한국 여자 골프 계보… 이제 제가 잇고 싶어요 - 유해란이 지난달 2일 LPGA 투어 월마트 NW 아칸소 챔피언십에서 데뷔 첫 우승을 확정하는 퍼트를 성공시킨 뒤 환호하고 있다. 그는 올해 한국 선수로는 4년 만에 LPGA 투어 신인상을 받았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작년 LPGA 투어 Q시리즈 땐 유해란이 유일한 KLPGA 투어 선수였다. 올해 Q시리즈에는 임진희(25·KLPGA 투어 6승)와 이소미(24·5승), 성유진(23·3승), 홍정민(21·1승) 등 KLPGA 투어 선수 4명이 도전장을 냈다. 다음 달 1~6일 미국 앨라배마주 매그놀리아 그로브 코스에서 내년 시즌 LPGA 투어에 데뷔할 선수들이 가려진다. 유해란은 “한국 선수들에게 미국 진출은 충분히 추천할 만하다”며 “진출 시기가 중요하겠지만 자신에게 적당한 시기는 누구보다 스스로가 잘 안다. 나는 적당한 때 잘 온 것 같다”고 했다. “미국은 골프 연습 환경이 한국보다 좋고, 다양한 상황을 광범위하게 겪으면서 경험치가 많이 쌓인다”며 “골프 실력이 좀 더 좋아지고, 보는 눈도 넓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유해란은 당분간 국내에서 훈련하다가 내년 1월 LPGA 투어 개막전 등 두 대회를 치른 뒤 베트남에서 동계 훈련을 이어갈 계획이다. “여자 골프 수준이 상향 평준화되어 한국 선수들도, 다른 나라 선수들도 정말 좋은 플레이를 많이 한다”며 “겨울 동안 샷 정확도를 좀 더 높이고, 퍼터부터 드라이버까지 모든 걸 다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유해란이 지난 18일 미국 플로리다주 네이플스의 티뷰론 골프클럽에서 열린 LPGA 투어 2023 시즌 최종전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 2라운드 2번홀에서 어프로치샷을 하고 있다./AFP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