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었어도 주연(主演)은 그대로다. 2020년을 화려하게 장식한 신진서가 새해 벽두 제9회 잉씨배 준결승 3번기에 출전한다. 상대는 중국 자오천위(趙晨宇) 8단. 10일부터 14일까지 한·중 온라인상에서 펼쳐진다.

이 대결은 신진서 자신은 물론 한국 바둑의 새해 운세를 점칠 중요한 일전으로 꼽힌다. 신진서는 지난해 LG배 우승으로 2000년생 세계 챔피언 1호에 올랐지만 11월 삼성화재배서 커제(柯潔)에게 패권을 내주었다. 기기(器機) 결함 등 악재가 겹친 통한의 결승전이었다.

제9회 잉씨배 준결승이 10일 시작된다. 신진서(왼쪽)와 중국 자오천위가 3번기로 자웅을 겨룬다. /한국기원

신진서는 연간 최고 승률(88.37%), 기록 부문 3관왕, 역대 3위 연간 상금(10억3800만원) 등 지난해 작성한 경이적 숫자 지표들을 성적으로 증명해 보여야 할 입장. 이번 대회에선 셰얼하오⋅판팅위⋅구쯔하오 등 세계 챔프 출신 중국 톱스타 셋을 연파하고 올라왔다.

결승행을 다툴 자오천위는 신진서보다 한 살 많은 99년생. 그간 국제 무대서 잠잠하다가 우승 후보 박정환을 16강전서 돌려세우며 생애 처음 4강 진입에 성공했다. 2015년 첫 대결 이후 자오천위에게 3승 1패로 앞서 있는 신진서는 “모든 준비를 잉씨배에 맞춰왔다”며 결전을 기다리고 있다.

반대쪽 준결승전은 중국 셰커(謝科)와 일본 이치리키 료(一力遼)가 벌인다. 셰커는 제4회 몽백합배 결승에 올라있다. 메이저 결승 고지를 밟은 중국 최초의 2000년생 기사다. 이치리키는 일본 메이저 2관왕이다. 신진서는 동갑내기 셰커에게 1패, 3세 많은 이치리키에겐 2승을 기록 중이다.

잉씨배는 그 권위 때문에라도 양보할 수 없는 대회다. 대만 재벌 고 잉창치(應昌期)씨가 1988년 만든 잉씨배는 4년 주기로 열려 ‘바둑 올림픽’으로 불린다. 우승 상금 40만달러(약 4억4000만원)도 세계 최대 규모다. 1인당 3시간을 다 쓰면 20분 초과에 벌점 2점을 부과하는 등 독특한 규칙(전만법)을 적용한다.

잉씨배는 한국과 각별한 인연을 이어왔다. 여덟 차례 대회 중 5번을 우승, 1990년대 이후 한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데 텃밭 역할을 했다. 1~4회 때는 조훈현⋅서봉수⋅유창혁⋅이창호의 연속 석권 기록도 남겼다. 첫 출전인 신진서가 우승할 경우 한국은 2009년 최철한에 이어 12년 만에 잉씨배를 되찾아오게 된다. 결승 장소 및 일자는 추후 발표 예정.

잉씨배 준결승에 이어 18일과 20일엔 제13회 춘란배 8강 및 준결승전이 열린다. 8강엔 신진서⋅박영훈⋅변상일 등 한국 기사 3명이 대기 중이다. 중국 쉬자양(許嘉陽)을 꺾고 올라온 신진서의 8강전 상대는 판팅위(范廷鈺). 신진서가 1패 후 3연승 중이다.

한국 4위 변상일(97년생)은 롄샤오(連笑), 14위 박영훈(85년생)은 탕웨이싱(唐韋星)과 4강 길목에서 격돌한다. 상대 전적은 각각 2승 1패와 2패. 박영훈은 일본 위정치를, 변상일은 미위팅⋅양딩신 등 중국 거목들을 연파하고 8강까지 왔다. 소띠 해를 맞아 한국의 두 소띠 기사가 뭔가를 보여줄지 주목된다.

잉씨배와 춘란배 8·4강전이 끝나면 4개 메이저 국제대회 결승 대진표가 모두 확정된다. 연말부터 지난 2일까지 벌어졌던 제4회 몽백합배에선 미위팅과 셰커 등 두 중국 기사가 결승에 올랐다. 2월 1일 시작될 제25회 LG배 조선일보기왕전(신민준 대 커제) 3번기가 올해 메이저 국제대회 첫 결승전 테이프를 끊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