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만큼 한·중 양국이 천하를 양분 중인 분야도 드물다. 지난해까지는 중국세가 앞서가고 한국이 추격하는 흐름이었으나 새해 들어 분위기가 한국 환호, 중국은 침울 모드로 바뀌고 있다. 신민준의 LG배 획득에 이어 농심배서도 신진서의 질주로 한국이 3년 만에 패권을 되찾는 등 연속 ‘홈런’이 터진 덕분이다.

한국 바둑을 ‘봄날’로 이끈 힘은 무엇일까. 여러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우선 치밀한 국가대표팀 운영이 꼽힌다. 신민준·신진서·박정환은 결전을 앞두고 개막 1~2주 전부터 제한시간, 덤, 대국 시각 등을 실제와 똑같이 맞춰놓고 현장에서 반복 훈련을 했다. 국가대표 최상위급 멤버들이 훈련 파트너를 자청했다.

새해 들어 한국 바둑계가 국제 대회 호성적에 힘입어 좋은 분위기를 타고 있다. 사진은 한국기원 국가대표실에서 합동 훈련 중인 대표 선수들. /한국기원

대국장 환경도 일신했다. 코로나 사태로 온라인 방식이 되면서 요즘 국제 대국장은 ‘홈 선수’만 머무는 공간이다. 한국기원은 실내 조명과 습도 조절을 위해 전기 스탠드, 가습기를 비치했다. “정신 집중을 위해 창문을 가려달라”는 신진서의 요청에 맞춰 가림막 커튼도 설치했다. 대국 시작 전 실내엔 은은한 클래식 선율도 흐른다. 지난 1월 잉씨배 준결승 때부터 생긴 변화다.

코칭스태프 활용 방식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목진석 감독을 비롯한 코치 5명은 지난해 봄부터 기전에 출전하지 않는다. TV 해설도 포기했다. 국제대회 성적 제고를 위한 비장한 결단이었다. 대신 우승 점유율에 비례해 성과급을 받기로 했다. 선수들과 코치진이 완벽한 운명 공동체가 되면서 훈련 효과가 눈에 띄게 향상됐다.

2014년부터 정부가 지원해온 국가대표팀 강화 사업이 본격 결실을 맺기 시작한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7년간 대표팀에 지급된 지원 총액은 약 30억원. 그 기간 한국은 70개 세계 개인전 중 30개 대회를 우승하며 중국에 맞서왔다. 한국기원 김윤식 보급팀장은 “신진서·신민준도 입단 직후 대표팀에 들어와 오늘에 이르렀다”며 정부 도움이 컸다고 증언했다.

반면 중국 쪽의 분위기는 정반대다. 우울함을 넘어 일부 온라인상에는 한동안 ‘음모설’이 등장하기까지 했다. “한국 측 대국장에 스탠드가 등장한 시기와 한국 기사들의 연승 행진 기간이 일치한다. 스탠드가 특수 제작된 부정 수단일지 모른다는 의심이 든다”는 식이다.

이런 황당한 주장은 사라졌지만 바둑계 민심(?)은 여전히 흉흉하다. 랭킹 1·2위 커제와 양딩신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비난의 화살이 쏠린다. 중국 바둑협회도 난타당하고 있다. 개막 직전까지 치밀하게 훈련한 한국과 달리 중국은 코로나 핑계로 자율 훈련에 맡겼다가 참패했다는 비판이다. 중국 협회는 서둘러 집단 훈련 재개를 결정했다.

국내 기전 감소를 못 막아 대국 수가 크게 줄었고, 그것이 기사들의 국제 경쟁력 약화를 초래했다는 지적도 쏟아지면서 바둑협회 린젠차오 주석을 향한 사퇴 요구까지 등장했다. 실제로 작년 양국 기사들 대국 수는 차이가 컸다. 30판을 넘긴 중국 기사 수가 11명(체단주보)에 그친 반면 한국은 177명에 달했다. 신진서가 86국, 커제는 49국이었다.

하지만 아직 샴페인을 터뜨리기엔 이르다는 신중론이 나온다. 승부 세계의 명암은 언제건 바뀔 수 있기 때문. 올해 벌어질 3개 국제 메이저대회 결승전이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신진서와 셰커가 잉씨배를, 신진서와 탕웨이싱이 춘란배를 다툴 예정. 몽백합배(셰커 대 미위팅)에선 중국이 이미 우승 한 자리를 확보했다. 한·중 ‘바둑 전쟁’이 새로운 국면에 진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