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여자 쇼트트랙 선수 엘리스 크리스티(31)가 빙판을 떠난다. 2017 세계선수권 개인종합 챔피언이었던 스코틀랜드 태생의 레이서는 15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다른 길을 따라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겠다”며 은퇴를 선언했다.
어렸을 때 피겨를 하다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전향한 크리스티는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세계선수권 통산 메달 12개(금 3·은 4·동 5개), 유럽선수권 금메달 10개를 딴 강자였다. 그런데 세 차례 도전한 올림픽에선 메달을 한 번도 걸지 못했다. 2010 밴쿠버(캐나다) 대회 때는 3종목에 출전해 모두 10위권 밖으로 처졌다.
2014년 소치(러시아)에선 박승희(은퇴)의 레이스를 망친 장본인으로 한국 팬들의 기억에 남았다. 당시 크리스티는 500m 결선에서 이탈리아의 아리아나 폰타나와 함께 넘어졌다. 이 과정에서 선두를 달리던 박승희도 쓰러졌다. 중국의 리젠러우가 어부지리 1위를 했다. 3위로 골인했던 크리스티는 경기 후 실격됐고, 폰타나(은메달)와 박승희(동메달)가 입상했다. 크리스티는 박승희에게 사과하는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렸으나, 한국 팬들의 ‘온라인 공격’ 때문에 계정을 폐쇄했다. 이후 1500m 예선에선 너무 안쪽으로 골인했다는 이유로 1위를 하고도 떨어졌다. 1000m 준결선에선 중국의 리젠러우와 엉켜 넘어지더니 나란히 실격됐다.
크리스티는 2018 평창 올림픽에서도 기대했던 메달을 놓쳤다. 500m는 4위, 1500m와 1000m는 각각 준결선과 예선에서 반칙을 저질러 실격됐다. 특유의 체력과 스피드만 믿고 무리하게 레이스를 펼친 것이 화근이었다.
크리스티는 평창 이후까지 시련을 겪었다. 연인이었던 중국계 헝가리 대표선수 산도르 류 사오린(26)에게 ‘문자’로 이별을 통보받았다. 10년 넘게 호흡을 맞췄던 코치는 일을 그만두고 떠났다. 쇼트트랙이 싫어지고, 삶의 의미를 찾지 못했던 크리스티는 극심한 우울증에 빠져 한동안 치료제에 의존했다고 한다.
크리스티는 2019년 유럽선수권 1500m 은메달을 따면서 재기하는 듯했지만 이후 고질적인 발목 부상 등에 시달린 탓에 예전 수준 경기력을 되찾지 못했다. 2022 베이징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2021-2022 월드컵시리즈 역시 부진했다.
크리스티는 “나는 올림피언으로는 메달이 없지만, 선수로는 많은 메달을 땄다”면서 “당분간 대표팀을 돕는 데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앞으로 지도자로 올림픽 메달에 도전할 수 있다는 뜻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