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테니스 무대와 작별했을 때 내 일부도 떠났다.”

지난 9월 레이버컵에서 라파엘 나달(왼쪽)과 로저 페더러가 복식 조를 이뤄 경기를 치르며 웃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흙신’ 라파엘 나달(36·스페인·세계 2위)이 최근 은퇴한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41·스위스)에 대한 경의와 애정을 드러냈다.

로이터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27일 현재 시범 경기 차 남아메리카에 머물고 있는 나달은 최근 경기 전 가진 기자회견에서 “페더러와 나는 코트 안팎에서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만들었다”면서 “그는 내 라이벌이기도 했지만, 내가 가장 존경하는 선수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페더러와 마지막 경기에 나서는 순간 그와 그동안 맞붙었던 그랜드 슬램 대회 결승 때도 느끼지 못했던 전율을 경험했다”면서 “다시는 그와 테니스 코트에서 함께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 내 자신의 일부도 페더러와 함께 떠난 듯 했다”고 고백했다.

나달은 지난 9월 페더러의 은퇴 무대였던 레이버컵(유럽팀과 월드팀 간의 테니스 대항전)에 참가해 황제의 마지막 순간을 끝까지 지켰다.

당시 나달은 아내 마리아 프란시스카 페레요씨가 출산을 앞두고 있어 스페인에 머물며 모든 외부 일정을 사실상 취소했지만, 페더러의 은퇴 소식이 같은 달 15일 갑자기 전해지자 계획을 바꿨다. 나달은 영국 런던으로 이동해 페더러와 복식조를 이뤄 대회 첫날인 24일 복식 첫 번째 경기에 출전했다. 당시 ‘페나(페더러·나달)조’는 1대2로 졌지만, 나달은 페더러와 공식 경기를 치른 마지막 선수로 이름을 남겼다. 경기가 끝나고 페더러가 작별사를 전하자 나달은 눈물을 글썽거리기도 했다.

지난 9월 레이버컵에서 라파엘 나달(아랫줄 오른쪽)이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다. /AP연합뉴스

나달과 페더러는 남자 테니스 역사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전설적인 인물들이다. 나달은 메이저 대회(호주오픈·프랑스오픈·윔블던·US오픈) 최다 우승 역대 1위(22회)로 빛나고, 페더러는 세르비아의 노바크 조코비치(21회)에 이은 3위(20회)다.

선수 시절 둘은 세기의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며 통산 40번 맞붙었고, 나달이 24승16패로 우세하다. 메이저 대회 결승에서는 총 9번 격돌했고, 여기서도 나달이 6승3패로 우위를 점했다. 특히 둘이 4시간 48분 동안 혈투를 벌였던 2008년 윔블던 남자 단식 결승 대회는 테니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승부 중 하나로 꼽힌다. 당시 나달이 3대2(6-4 6-4 6-7<5-7> 6-7<8-10> 9-7)로 이겼다.

둘은 코트 밖에서도 각종 자선 행사와 비공식 모임에서 만나는 등 진한 우정을 이어오며 팬들로부터는 ‘페달(Fedal)’ 듀오로 불리곤 했다. 2017년 9월 US오픈 기자회견에서 한 취재진이 나달에게 “선수와 남자로서 페더러의 어떤 부분을 존경하느냐”는 질문에 “마치 그의 남자친구가 되고 싶은 것처럼 비칠까봐 조심스럽다”고 답변의 포문을 열어 폭소를 자아낸 건 유명한 일화다.

올해 호주오픈과 프랑스오픈에서 정상에 오르며 건재를 과시했지만 시즌 막판 부상 때문에 주춤한 나달은 자신의 은퇴 계획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는 “내 시간도 언젠가 올 것”이라며 구체적인 시기는 정하지 않으면서도 “테니스 다음에 어떤 인생을 살지 꽤 준비해놓았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