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 드래프트에서 꼴찌로 호명된 선수가 주전으로 자리를 잡는다. 역대 최고 선수가 이끄는 팀을 상대로 승리를 이끌더니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꾸준히 저력을 과시한다. 그리고 모두가 주목하는 스타가 된다.

하나하나 영화에나 나올 법한 ‘신데렐라 스토리’가 NFL(미 프로풋볼)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주인공은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의 쿼터백 브록 퍼디(23)다.

퍼디는 올해 4월 NFL 신인 드래프트에서 7라운드, 전체 262번째로 가장 마지막에 포티나이너스(49ers)에 의해 지명돼 ‘미스터 무관심(Mr. Irrelevant)’이 됐다. NFL 신인 드래프트에선 1순위 지명선수와 함께 맨 끝에 지명된 선수도 잠시 조명을 받는다. 즉시 전력감도 아니고 대부분 별 다른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NFL 무대에서 곧바로 사라지기 때문에 미스터 무관심이라는, 장난스럽지만 명예롭지 못한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퍼디는 고교 1학년 때까진 야구를 하다가 2학년 때 미식축구로 종목을 바꾸며 비교적 늦게 입문했다. 그는 대학 신입생 때 팀의 3번째 쿼터백으로 주로 벤치를 지키다가 주전 쿼터백이 부상당하고, 두 번째 쿼터백마저 실력 부족으로 전력에서 제외되자 출전 기회를 얻었다. 그 뒤 4년 내내 주전 자리를 지키며 패싱 시도(1461개), 패싱 성공(993개), 터치다운 패스(81개) 등 각종 부문에서 소속 대학팀 기록을 갈아치웠다. 그는 프로에 도전했지만, 결국 맨 마지막에 이름이 불렸다. 들쑥날쑥한 경기력과 쿼터백으로선 상대적으로 작은 체구(184cm, 99kg) 때문에 대부분 구단이 그를 외면했다.

올해 NFL(미 프로풋볼) 신인 드래프트에서 꼴찌로 호명된 브록 퍼디가 소속팀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의 주전 쿼터백으로 우뚝 섰다. 드래프트에서 전체 262번째로 지명된 퍼디는 특별한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주전 선수가 부상당하며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사진은 퍼디(오른쪽)가 25일 워싱턴 커맨더스전에서 패스를 던지는 모습. /AP 연합뉴스

◇이젠 모두의 ‘미스터 관심’

올해 퍼디는 시즌 중반까지는 거의 그라운드에 나설 기회를 잡지 못했다. 주전 쿼터백 지미 개로폴로가 큰 실수 없이 팀을 잘 이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치 대학 신입생 때처럼 기회는 생각지도 않던 순간 찾아왔다.

개로폴로가 5일 마이애미 돌핀스전 초반 큰 부상을 입은 것이다. 팀 두 번째 쿼터백이던 트레이 랜스는 9월에 발목 부상으로 시즌을 일찍 마감한 상태. 포티나이너스로선 다른 대안이 없었다. 10월 말 캔자스시티 칩스와의 경기 맨 마지막에 출전해 미스터 무관심으로선 사상 처음으로 패스를 성공했던 퍼디는 개로폴로 대신 그라운드에 나서 깜짝 놀랄 만한 활약을 펼쳤다. 37차례 패스를 시도해 25개를 성공시켰고, 그중 2개는 터치다운(6점)을 이끌어냈다. 그는 미스터 무관심 사상 첫 터치다운 패스를 성공하는 기록을 쓰면서 팀의 33대17 대승을 이끌었다. 당시 경기장을 찾아던 퍼디의 아버지가 관중석에서 아들의 플레이를 지켜보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퍼디는 대학 때처럼 한 번 붙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지난 12일엔 자신이 우상으로 삼았던 톰 브래디(45)가 이끄는 탬파베이 버커니어스를 35대7로 완파했다. 이날 패스를 21번 시도해 16차례(성공률 76.2%) 연결시키는 정교함을 보였다. 터치다운 패스도 2개를 보탰다. 그는 브래디를 상대로 데뷔전을 치른 쿼터백 중 처음으로 승리를 거둔 쿼터백이 됐다. 브래디는 경기 후 퍼디에게 “훌륭한 경기를 했다. 계속 활약을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그때부터 포티나이너스는 소셜미디어에 퍼디를 ‘Mr. Relevant’(미스터 관심)로 규정하기 시작했다. 퍼디는 이후 열린 두 경기에서도 각각 터치다운 패스 2개 등으로 팀 승리를 이끌었다. 그러면서 데뷔 후 치른 세 차례 선발 출전 경기에서 2개 이상의 멀티 터치다운 패스를 성공시킨 역대 4번째 쿼터백이라는 역사도 썼다.

미국 현지 시각으로 27일 23번째 생일을 보낸 퍼디는 “미스터 무관심으로 불렸지만, 난 항상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나는 여전히 배고프다. 경기장에서 매 순간 최선을 다해 내 자신을 증명하고 동료들로부터 존중을 받고자 한다. 이 열정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포티나이너스는 퍼디의 활약 속에 11승4패로, 내셔널콘퍼런스 서부지구 1위를 일찌감치 확정지었다. 퍼디의 신데렐라 스토리는 포스트시즌에도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