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의 꿈을 못 이룬 한을 안고 한국을 떠났던 ‘이무기’가 콧대 높은 일본 바둑계에서 최고의 프로 육성 전문가로 전설을 쌓아가고 있다. 2005년 도쿄에 홍도장(洪道場) 간판을 건 뒤 20년도 채 안 돼 29명, 총단위 91단의 초호화 엘리트 프로 기사들을 배출한 홍맑은샘(42·일본명 洪淸泉) 4단이다. 코로나 사태 탓에 4년 만에 귀국한 그를 만났다.
“기성(棋聖) 이치리키와 도전자 시바노 모두 제 제자예요. 도전기 시작 전 그들에게 ‘차마 관전하지 못할 것 같다’고 했더니 둘 다 ‘선생님 마음 잘 알아요’ 하더군요. 대국 결과만 확인하고 있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일본 최고 타이틀 기성전 7번기 이야기다. 아함동산배 보유자 히라타, 여자 최강 후지사와도 홍도장 출신이다.
국내 시절 그는 불운의 대명사였다. 아마추어 대회 우승이 18번에 이르렀는데도 6번에 걸친 입단 도전은 번번이 실패로 끝났다. 결국 연구생 자퇴와 함께 프로행을 포기했지만 바둑계를 떠날 수는 없었다.
2002년 세계아마선수권대회서 준우승할 때 일본의 노장 조련사 기쿠치(菊池康郞)를 만난 것이 전환점이 됐다. 어린이 육성과 관련된 조언을 듣고 감동, 2004년 도일(渡日)을 결행했다.
하지만 한국의 무명 아마추어 청년에게 눈길을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우선 프로 단증(段證)이 필요했으나 일본기원 이사회는 외국인의 입단 대회 출전을 불허했다. 2009년 프로와 아마가 함께 겨루는 토너먼트서 준우승하자 관서기원이 시험기를 거쳐 연수 기사 자격을 주었다. 2012년 마침내 정기사(正棋士)로 승격했다.
관서기원은 오사카, 홍도장은 도쿄에 있다. 두 곳을 옮겨 다니다 보니 시간 손실이 너무 컸다. 홍맑은샘은 제자 육성에 전념키로 하고 2019년 관서기원에 휴직계를 제출했다. 자기 대국을 포기한 것이다.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무명의 외국 아마추어가 어떻게 일본 최고 도장을 일궈낼 수 있었을까. 야마시타, 장쉬, 하네 등 레전드들이 앞다퉈 2세를 자신에게 맡기게 만든 비결은 무엇일까. “마주치는 모든 사람에게 진심을 담아 다가갔지요. 신뢰가 쌓이니까 길이 보였습니다.” 남다른 친화력으로 2년간 프로기사회 부회장까지 지냈다.
“승부 스트레스에 억눌린 원생들에겐 소통이 더욱 절실합니다.” 그는 제자들과 7~8명씩 팀을 짜 도쿄~요코하마 40여km를 함께 걷곤 한다. “어떤 이야기건 진지하게 들어주면 쌓였던 응어리가 풀리고 표정이 활짝 펴집니다.” 사활 문제 풀기도 팀을 만들어 놀이처럼 한다. 험산 극기 훈련, 연 2회 합숙 등도 홍도장만의 전통이다.
그는 매년 한·일 두 곳에서 자기 이름을 건 어린이 대회를 연다. 2011년 부친 홍시범씨와 절반씩 출연, ‘맑은샘 어린이 최강전’을 시작한 지 10년이 지났다. “대회를 통해 성장한 빚을 갚는 심정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번 방한도 올해 대회 점검차 이뤄졌다. 일본에선 2020년부터 ‘슈사이 어린이 최강전’을 열고 있다.
“일본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는 정말 막막했어요. 바둑 배운 걸 후회하기도 했고…. 하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사귀고 꿈을 향해 전진할 수 있게 만들어준 것이 또한 바둑이지요.” 그는 프로 기사 제자 100명을 채우는 것, 그리고 전 세계가 바둑으로 연결돼 행복감을 공유하는 플랫폼을 마련하는 것이 앞으로 도전할 꿈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