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훈현 이후 61년 만에 아홉 살 프로 기사가 탄생할까. 11세 초등학생 때 입단한 이창호 신화를 이어갈 주인공은 누구일까. 올해 12월 첫 ‘해답’이 나온다.
한국기원이 최근 개정한 새 입단 제도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영재(英才) 부문이다. 종전의 15세 이하 규정을 12세 이하(초등생)와 15세 이하(중학생) 대회로 세분해 별도 운영키로 했다.
초등학생 전용 입단 문호가 마련된 것은 세계 바둑 사상 처음이다. 오는 12월 첫 대회를 열어 1명을 뽑고 내년부터 2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올해는 2011년 1월 1일 이후 출생자가 대상이다. 15세 이하 영재 입단 대회는 변함없이 4명을 선발한다.
바둑은 시작 연령이 낮을수록 대성 가능성이 높은 대표적 분야로 꼽힌다. 조·이 사제 외에도 이세돌 신진서 최철한 등이 12세 입단 후 세계를 누볐다. 일본 무대를 장악한 조치훈 이야마, 중국의 대표적 스타 창하오 구리 천야오예 등도 좋은 스타트가 대성으로 이어졌다.
프로행 관문인 입단 대회는 지구상에서 난도(難度)가 가장 높은 자격시험으로 통한다. 뛰어난 기재(棋才)들도 몇 년씩 출전하다 진이 빠져 중도에 포기하기 일쑤였다. 영재 입단 1기인 신진서·신민준도 종전 방식이었다면 몇 년 뒤에나 입단, 평범한 기사에 머물렀을 공산이 크다.
최규병 9단은 “입단 준비가 주입식 훈련이라면 프로에선 창의력 배양에 주안점을 둔다. 아마추어에 너무 오래 머물면 프로로 대성하기 힘들다”고 했다. 목진석 대표팀 감독이 기회 있을 때마다 “15세 영재는 너무 늦다”며 초등학생 입단 시스템 도입 필요성을 역설해온 것도 그런 이유다.
“자칫 설익은 프로가 양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따르지만 영재들의 성장 속도는 놀랄 만큼 빠르다. 이창호는 86년 연구생 1기 입단 직후 아마추어에게 패했고, 2012년 영재 입단 1호인 신진서도 프로 첫해 2승 3패로 출발했지만 순식간에 적응을 완료, 스타의 길로 들어섰다.
일본의 희망 나카무라 스미레(14)도 그랬다. 입단 석 달 전 최정과 대국할 때만 해도 2점 치수로 평가받았지만 4년 만에 타이틀을 따낼 만큼 급성장했다. ‘수퍼 루키’로 불리는 김은지(16)에게 스미레식 입단 특혜가 주어졌다면 지금보다 훨씬 높은 곳에 올랐으리란 분석도 있다.
경쟁국들은 한국보다 연소화 속도가 빠르다. 중국은 2011년생 인청즈(尹成志), 일본은 특별 채용 ‘2호’인 2013년생 후지타(藤田怜央), 대만에선 2012년생 정위하오(鄭予皓) 등이 프로로 활동 중이다. 한국은 2월 초 주현우(13)의 입단으로 2010년대생 시대를 처음 열었다.
현재 초등학생 연구생은 10여 명뿐이지만 이번 결정으로 대폭 증가할 전망. 양재호 사무총장은 “초등생 입단자는 선발보다 육성이 더 중요하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끝나면 대표팀을 영재 위주로 개편, 국제 경쟁력 제고에 주력할 방침”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