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보>(29~40)=변상일의 바둑은 강인한 전투력과 전광석화 같은 수읽기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지만 모든 물체엔 그림자가 존재하듯, 그의 이런 장점들은 때로 약점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지나친 전투 지향적 성향 탓에 오버런을 범하고, 자신감 넘치는 속기(速棋)가 경솔로 이어지곤 한다. 물론 변상일의 경우는 긍정 요소 절댓값이 부정 요소의 그것보다 훨씬 크긴 하지만.

29가 변상일의 과감성과 자신감을 한눈에 보여주는 수. 보통 기사들이라면 두 동강 나는 게 두려워 참고 1도의 수순을 떠올렸을 것이다. 29의 도발(挑發)에 백 30은 강력한 반발(反撥)의 한 수. 흑은 참고 2도를 선택할 수는 없다고 보고 31로 끼웠는데 이 수가 비판대에 올랐다. 38까지 누가 봐도 백의 만족이다.

인공지능(AI)이 지적한 맥점은 35 자리 껴붙임이었다. 참고 3도 수순을 따라가 보면 빵때림 한 흑의 자세가 실전보보다 깔끔한 데다 선수까지 차지한다. 실전은 38 때 상변 전개를 생략할 수 없다. 39는 유혹의 한 수. ‘가’가 적당하지만 백 40을 불러 계속 싸우려는 속셈이다. 가드를 내려 허점을 보이고 상대 공격을 유도하는 복싱 전략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