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수영 ‘황금 세대’가 세계선수권 남자 계영 800m에서 0.10초차로 은메달을 땄다. 사상 첫 세계선수권대회 단체전 메달이다.

물살 가르는 황선우. /AP 연합뉴스

한국 대표팀은 17일(한국 시각) 카타르 도하 어스파이어돔에서 열린 2024 국제수영연맹 세계선수권대회 경영 남자 계영 800m 결선에서 양재훈(26), 김우민(23·이상 강원도청), 이호준(23·제주시청), 황선우(21·강원도청) 순으로 물살을 갈라 7분01초94 기록으로 터치 패드를 찍었다.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세운 아시아 신기록(7분01초73)엔 살짝 부족했다. 1위는 중국(7분01초84), 3위는 미국(7분02초08)이었다.

계영 800m는 한 팀 네 선수가 자유형으로 200m씩 헤엄친 시간을 합산해 최종 순위를 가리는 단체전 종목이다. 5번 레인을 배정 받은 한국은 양재훈이 8위로 시작했지만, 김우민을 거쳐 이호준이 순서를 마칠 때쯤엔 3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마지막 영자 황선우가 폭발적인 스퍼트로 순위를 한 단계 더 끌어올려 2위로 경기를 마쳤다.

한국 남자 계영 800m 대표팀(왼쪽)이 17일 황선우의 역영을 지켜보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이번 대회는 한국이 세계선수권에서 사상 첫 계영 메달을 딸 ‘적기’로 여겨졌다. 오는 7월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여러 정상급 선수들이 대회를 건너뛰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수영 강국 호주는 아예 남자 계영 800m에 불참했고, 영국과 미국은 ‘2진급’으로 선수단을 꾸렸다. 그리고 대표팀은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었다.

사실 계영 800m에선 뛰어난 선수 한두 명만 갖곤 결코 정상에 설 수 없다. 모두가 고르게 기량을 갖춰야 한다. 극소수의 ‘천재’에게 의존했던 한국 계영은 그동안 아시아권은 물론이고 세계에서도 별다른 존재감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이번 계영 결선에서 차례대로 순서를 책임진 양재훈(190cm), 이호준(184cm), 김우민(182cm), 황선우(187cm)는 모두 키 180cm가 넘는다. 예선에서 힘을 보탠 이유연(24·고양시청·182cm)도 마찬가지다. 팔다리가 길수록 터치와 영법 등 모든 면에서 유리하다. 과거 한국 계영 대표팀 평균 키는 대개 170cm 중·후반대였다. 그러나 이번 대표팀 체격은 서구 수영 강국과 견주어 봐도 결코 밀리지 않는다. 여기에 물 타는 능력도 갖췄다.

이런 황금 세대의 열정에 불을 붙인 건 호주 전지훈련. 이들은 대한수영연맹 ‘특별 전략 육성 선수단’ 일원으로 작년에 이어 올해 초에도 호주로 건너가 현지 선진 수영 지도자들 도움을 받으며 ‘지옥 훈련’을 소화했다. 매일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동했고, 야외 수영장에서 매주 6만m 헤엄쳤다고 한다. 웨이트 트레이닝 등 강도 높은 훈련도 받았다. 자연스럽게 체력과 끈기, 팀워크가 단단해졌다.

한국 수영 황금 세대가 올해 호주 전지훈련 당시 찍은 사진. 이호준(왼쪽부터), 황선우, 김우민, 양재훈, 이유연. /올댓스포츠

효과는 확실했다. 지난해 7월 후쿠오카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이들은 하루에 한국 신기록을 두 차례나 갈아치우는 역영을 펼치며 세계 6위(7분04초07)에 올랐다. 그리고 그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선 아시아 신기록(7분01초73)으로 우승하며 아시아엔 적수가 없음을 확인했다.

한국 계영 대표팀은 이날 세계선수권 결선에서 비슷한 성적을 내면서 마침내 한국 수영 사상 첫 단체전 메달이라는 새 역사를 썼다.

한국 계영 800m 대표팀이 17일(한국 시각) 카타르 도하 어스파이어돔에서 열린 2024 국제수영연맹 세계선수권대회 경영 남자 계영 800m 결선에서 은메달을 딴 뒤의 모습. 양재훈(왼쪽부터), 김우민, 황선우, 이호준. /로이터 연합뉴스

아울러 ‘막내’ 황선우는 이번 계영 은메달로 박태환(35), 김수지(26·이상 3개)를 넘어 한국 수영 역대 세계선수권 개인 통산 최다 메달리스트가 됐다. 그는 자유형 200m에서 2022년 부다페스트 대회 2위, 2023년 후쿠오카 대회 3위에 이어 이번 도하에서 1위를 차지하며 금, 은, 동메달 1개씩 총 3개가 있었다.

황선우는 소속사 올댓스포츠를 통해 “자랑스러운 우리 멤버들과 세계선수권대회라는 큰 무대에서 은메달을 따 뿌듯하다”며 “파리 올림픽에 가기 전에 좋은 발판이 마련됐다. 이 발판을 토대로 잘 다듬어가면 파리에서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이어 “1위 중국과 0.10초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줄일 수 있는 부분들을 잘 다듬겠다”고 강조했다.

앞서 주종목인 자유형 400m에서 정상에 오른 김우민은 “팀원들에게 피해가지 않게 죽을 힘을 다했다”면서 “단체전 첫 메달이라는 쾌거를 이뤄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호준도 “뛰어난 선수들과 레이스하면서 단체전 첫 메달을 따 영광”이라며 “최선을 다했고 0.10초로 진 부분은 아쉽지만, 우리를 더욱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했다.

2024 국제수영연맹 세계선수권대회 경영 남자 계영 800m 메달 팀. 금메달 중국, 은메달 한국, 동메달 미국. /EPA 연합뉴스

이번 세계선수권에서 원대한 가능성을 확인한 황금 세대는 이제 오는 7월 하계 올림픽이 열리는 파리로 향한다. 파리에서도 사상 첫 올림픽 단체전 메달에 도전한다.

한국 수영은 이번 도하 대회에서 금메달 2개(남자 자유형 200m·400m)와 은메달 1개(남자 계영 800m), 동메달 2개(다이빙 여자 3m, 혼성 3m)를 수확했다. 박태환이 홀로 메달 2개를 따낸 2007년 멜버른(자유형 400m 1위·200m 3위) 대회를 넘어 단일 세계선수권 역대 최고 성과를 거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