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당구 여자부 일인자 김가영이 9일 새벽 끝난 하이원리조트챔피언십 결승에서 난적 김보미를 세트스코어 4대2로 꺾고 PBA투어 사상 첫 5개대회연속 우승을 차지한 뒤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활짝 웃고 있다. /PBA투어


8일 밤 강원도 정선군 하이원리조트 그랜드호텔 컨벤션타워에서 열린 여자프로당구(LPBA) 2024-25시즌 7차대회 하이원리조트 챔피언십 결승. 6세트에서 마지막 11번째 득점을 뽑아내면서 자신보다 열다섯 살 어린 김보미(26)를 세트 스코어 4대2로 누르며 우승을 확정지은 김가영(41)이 큐를 번쩍 들며 활짝 웃었다.

‘당구여제’란 칭호가 붙은 김가영은 이날 프로당구투어(PBA)에 5개 대회 연속 우승이란 새 역사를 썼다. 2019년 출범한 PBA남녀부 통틀어 최초. 남자부에선 지지난 시즌까지 PBA투어를 휩쓴 프레데릭 쿠드롱(벨기에)의 4연속 우승이 최다기록이다. 김가영은 이날 우승으로 여자부 사상 처음으로 단일 시즌 상금 2억원(2억90만원)을 넘겼다. LPBA투어는 내년 1월22일 8차 대회, 그리고 3월에 왕중왕전인 월드챔피언십을 치른다. 김가영이 무적행진을 이어가면 시즌 상금 3억원도 가능하다.

김가영이 지금까지 치른 47개 대회에서 12차례 우승해 쌓은 총 상금은 5억4180만원. 가히 독보적이다. 김가영은 우승 후 “경기 중간 위태했는데 마무리를 잘할 수 있어 기쁘다. 연속 우승 기록에 대한 부담감이 없지 않았는데 계속 경기를 치르다 보니 이제는 그런 느낌에도 익숙해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올 시즌 7개 대회 중 첫 두 대회에선 64강 탈락이란 수모를 맛봤으나 3차부터 이번 7차까지 4개 대회를 휩쓸면서 30연승 행진을 이어갔다.

김가영은 “5연속 우승이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이뤄낸 것은 아니다. 올해 휴온스 챔피언십에서는 스롱 피아비에게 1,2세트를 모두 내줬다가 뒤집었던 적도 있고, 내 컨디션이 좋지 않아 고비를 맞은 적도 꽤 있다. 내 실력과 노력에 운까지 따라줬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번 7차대회 결승에서 맞붙은 김보미는 올 초 23-24시즌 왕중왕전인 월드챔피언십 결승에서 자신을 패배 직전까지 몰고갈 정도로 까다로웠던 상대다. 김가영은 이번 결승에서 1~3세트를 내리 잡아 사상 첫 결승 4대0 승리를 일궈내는 듯 했으나 4,5세트를 김보미에게 내주며 하마터면 흐름을 상대에게 내줄 뻔 했다.

김가영은 “출발이 좋았는데 중간에 갑자기 집중력을 잃었다. 득점할 상황에서 미스 한 것에 대해 너무 생각하다보니 전체 흐름을 읽지 못하고 흔들렸다”고 했다. 김가영은 1세트에서 상대에게 한 점도 내주지 않고 11-0 승리를 일군데 이어 2,3세트도 각각 11-6, 11-4로 가볍게 마무리했다. 하지만 4세트에선 3득점에 그쳤고, 유일하게 접전을 펼친 5세트에선 9-11로 졌다. 김가영은 6세트에서 다시 샷 감각을 찾으며 일방적인 경기를 벌인 끝에 11-1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사상 첫 우승에 도전했다가 결국 김가영의 벽에 막힌 김보미는 “(김)가영 언니는 연습량도 많지만 포켓볼을 오래 하면서 쌓은 내공, 그리고 큰 무대에서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이 대단하다”며 “당분간은 실력으로 이길 수 있는 여자 선수들이 없을 것 같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다.

김가영이 난공불락의 기세를 이어가자 ‘여자가 아닌 남자부에서 경쟁 시켜야 한다’는 일부 팬들의 목소리도 있다. 김가영은 이에 대해 “그럴 생각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제 실력이 아직 그 정도는 아니예요. 괜히 겉멋든척 뛰어들었다가 물 흐리고 싶지 않네요. 남자들은 애버리지(이닝당 평균 득점)가 아무리 못 쳐도 1.5이상인데 저는 아직 많이 부족해요. 내 나이가 적지 않기 때문에 목표를 무리하게 높게 잡지 않고 낮게 잡으면서 차근차근 끌어올리고 있어요.”

김가영은 PBA 출범 첫 시즌인 2019-20시즌 0.860이었던 애버리지를 계속 끌어올리며 올 시즌은 1.22를 기록 중이다. 올해 애버리지 1점대가 넘는 여자 선수는 김가영과 김보미 둘 뿐이다.

김가영은 자신에게 계속 도전장을 내는 후배들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번 결승상대인 김보미는 내가 3세트를 내리 따냈는데도 예전과는 달리 침착하게 치고 덜 흥분하더라고요. 많이 달라졌어요. 애버리지도 1점대더라고요. 저를 위협하는 요주의 인물이죠. 보미를 비롯해 기술적, 정신적으로 성장한 젊은 선수들이 몇몇 있어요. 당구를 치다 보면 상승세를 타다가도 갑자기 내리막길로 접어들 때가 있는데 그때를 잘 버텨내면서 자신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후배들이 그 정도로 성장하기 전까지는 지고싶은 생각 없어요. 저도 어린 나이가 아니기 때문에 지금 고삐를 늦추지 말아야죠.”